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한희정 시집 '목련꽃 편지'의 시조(4)

김창집 2022. 7. 6. 00:51

 

낯선 얼굴 스치듯

 

책 속에 단풍잎 하나

유성처럼 떨어지네

낯선 얼굴 스치듯 바람 같은 약속이었나

책갈피,

눈물로 찍힌

붉음 마음 보았네

 

언제쯤

사랑이었나 먼 길 돌아 내 앞에 서서

갈피갈피 증거처럼 검측하게 핏줄이 서며

바스락

주름진 손이

가슴 한쪽 어루네

 

 

*감천문화마을

 

산복도로

 

배가 따뜻해야 마음이 넉넉하다지

 

누추한 햇볕조차 기를 펴는 수정동

 

비탈길 순환버스가 바다 함께 태우고

 

뱃심 좋아 칠십 년을

이고 지고 올랐다는

 

뭐라카노 이 에미나이

말도 반반 구순 할매*

 

저 길 끝,

고향 가는 길

반쯤만 갔다 돌아오네

 

---

*부산 수정동에 사는 친구모친으로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임.

 

 

 

저기, 추자도

 

급물살 오롯이 견뎌 징검돌로 나 앉아

들어주던 사연만큼 이별도 많았더라

제주와 전라도 사이 사투리도 뒤섞여

 

갓 잡은 생선 뛰듯 짐작 없이 가슴은 뛰어

풍랑예보 오고서야 차라리 편해지는

애초에 고립쯤이야 순명으로 받들며

 

떠난 이와 언약 따윈 애초에 없었지만

눈 뜨면 아득한 거리, 또 그만큼 멀어지는

내 안에 머무는 너처럼 눈감아야 보인다

 

 

 

개복숭아 꽃 피다

 

진짜도 아닌 것이

구실도 못할 것이

 

시고모 탄식에도

눈칫밥 달게 먹던,

꽃분홍 양산을 쓰고

만삭처럼 걸었었지

 

열 달, 딱 한번만 배불러 봤으면 좋겠네

 

헛말인 듯

참말인 듯

기도처럼 되뇌던,

 

그믐밤

몰래 나갔던

그녀가 돌아왔다

 

 

 

물 위의 아이들

    -톤레삽 호수*

 

신들도 이곳에선 어쩔 수 없나 보다

물빛조차 황톳빛,

부레옥잠 뜨듯이

말보다 먼저 배운 건

흔들림을 견디는 것

 

고무대야 배를 타고

원 달라 원 달라

애절한 그 눈빛은 끝 모를 물속 같아

삽시간 나도 흔들려

아무 말도 못했지

 

달라 대신 받아 쥔 색연필을 쳐들며

무지개를 그리듯 수면 위로 흩어지는,

석양에

화엄의 꽃이

물비늘에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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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에 위치한 호수로 수상가옥이 많다.

 

 

                                                *한희정 시집 목련꽃 편지(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