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윤행순 시집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의 시조(3)

김창집 2022. 7. 7. 00:34

*마삭줄 꽃

 

우도 봄 바다

 

우도 봄 바다가 윤슬로 울 때가 있다

단 한 번 본 적 없는

상군해녀 내 고모

육지로 물질을 가도 숨비소리 남아 있다

 

한반도 해안선 바다

다닥다닥 붙은 해녀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는

그렇게 댓마지기 땅 넘실넘실 우도 땅콩

 

원정물질 끝내고 언제쯤 돌아오려나

오늘은 일곱물이라 바릇잡이 좋은 날

물결이 돌아든 섬에

고모님 불러본다

 

 

 

벌초

 

팔월 초하룻날은 어머니 찾아간다

 

저지오름 치맛자락 흘러내린 봉분 하나

 

분화구 미쳐 못 돌고 절만 하고 돌아선다

 

 

 

배춧국 올려놓고

 

새벽녘 비몽사몽 출근하는 516도로

오락가락 싸락눈 가다말다 싸락눈

간호사 삼십 년이면 저도 깜빡 나도 깜빡

 

그렇게 하루 종일 써내려간 간호일지

때 아닌 구급차소리 내 남편 휴대폰소리

화급히 섞인 그 소리 저도 깜빡 나도 깜빡

 

아차!

그랬구나

배춧국 올려놨구나

가스레인지 삼발이에 들러붙은 냄비바닥

우리 집 화재경보기 너도 깜빡했구나

 

 

 

돌림병 도는 날

 

이제는 보고 싶다,

그 말조차 잊었다

성산마을 경란이, 혼자가 된 문실이

돌림병 도는 하늘에 그 이름을 묻는다

 

 

 

스트레스

 

이럴까

또 저럴까

자꾸만 망설인다

요즘 들어 수간호사 머리가 빙빙 돈다

MRI 영상으로도 볼 수 없는 그 머릿속

 

쉽게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이 세상아

석양에 물들어가는 바닷물은 붉기도 해라

그러게, 스트레스도 오늘은 옛 벗만 같다

 

오일장 좌판에 길에 누운 생선들

나도 한 번 저렇게 큰대자로 뻗어볼까

그리운 장바구니 속 선택된 물건처럼

 

 

                 * 윤행순 시집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  (문학과사람, 2022)에서

                                                  * 사진 : 마삭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