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도 봄 바다
우도 봄 바다가 윤슬로 울 때가 있다
단 한 번 본 적 없는
상군해녀 내 고모
육지로 물질을 가도 숨비소리 남아 있다
한반도 해안선 바다
다닥다닥 붙은 해녀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는
그렇게 댓마지기 땅 넘실넘실 우도 땅콩
원정물질 끝내고 언제쯤 돌아오려나
오늘은 일곱물이라 바릇잡이 좋은 날
물결이 돌아든 섬에
고모님 불러본다
♧ 벌초
팔월 초하룻날은 어머니 찾아간다
저지오름 치맛자락 흘러내린 봉분 하나
분화구 미쳐 못 돌고 절만 하고 돌아선다
♧ 배춧국 올려놓고
새벽녘 비몽사몽 출근하는 5․16도로
오락가락 싸락눈 가다말다 싸락눈
간호사 삼십 년이면 저도 깜빡 나도 깜빡
그렇게 하루 종일 써내려간 간호일지
때 아닌 구급차소리 내 남편 휴대폰소리
화급히 섞인 그 소리 저도 깜빡 나도 깜빡
아차!
그랬구나
배춧국 올려놨구나
가스레인지 삼발이에 들러붙은 냄비바닥
우리 집 화재경보기 너도 깜빡했구나
♧ 돌림병 도는 날
이제는 보고 싶다,
그 말조차 잊었다
성산마을 경란이, 혼자가 된 문실이
돌림병 도는 하늘에 그 이름을 묻는다
♧ 스트레스
이럴까
또 저럴까
자꾸만 망설인다
요즘 들어 수간호사 머리가 빙빙 돈다
MRI 영상으로도 볼 수 없는 그 머릿속
쉽게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이 세상아
석양에 물들어가는 바닷물은 붉기도 해라
그러게, 스트레스도 오늘은 옛 벗만 같다
오일장 좌판에 길에 누운 생선들
나도 한 번 저렇게 큰대자로 뻗어볼까
그리운 장바구니 속 선택된 물건처럼
* 윤행순 시집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 (문학과사람, 2022)에서
* 사진 : 마삭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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