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승철 시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의 시조(2)

김창집 2022. 7. 9. 00:14

*하늘말나리

 

축하, 받다

 

어머니 한 세상은 그믐밤 믐빛이었다

<43>이며, 녹내장

순명이듯 받아들고

손주놈 군사우편도 못 읽는 믐빛이었다

 

벚꽃 환한 봄 탓이리

외출도 봄 탓이리

몇 수저의 저녁상

그마저 물려놓고

화급히 성당 저 너머 사라진 숟가락 하나

 

잘 갑서, 잘 가십서아내의 기도 소리

이 봉투 저 봉투

그중에 어느 봉투

장모님 하늘나라 입학, 삼가 축하합니다

 

 

 

연애하러 가는 날

 

택일은 무슨 택일

못 이긴 척 가는 거지

 

조금 물때 고향은 들물 날물 멎는 시간

 

이 바다

인연 거두고

산에 드는

숨비소리

 

 

 

참나리꽃

 

달팽이 뒷간 같네

신제주 어느 골목

어찌어찌 해장국집 끌고 온 내 아내가

얼결에 씨도둑처럼 참나리 꽃씨 받아왔네

 

여름이면 화분에 슬그머니 올린 꽃대

잎새마다 까만 씨앗 하나씩 품어내어

어디다 내려놓을까

시멘트 바닥뿐인 걸

 

그 꽃씨 다시 받아 어딜 갔나 했더니

장모님 산소 곁을

불 지르고 있었네

철 이른 벌초를 와서

불 지르고 있었네

 

 

 

아내의 오늘

 

점심인지

저녁인지

밥 몇 술 넘겨놓고

 

밤 장사 할까 말까 역병 도는 저물녘

 

오늘은 반달 뜨려나

반쯤 문 연

달맞이꽃

 

 

 

합제合祭

 

큰형네 종교 따라 추도예배 드리는 저녁

홍동백서 그 말 대신 성경 한 권 뿐이네

절 한 번 올리지 못한 둘째 형의 저 묵언

 

아내는 아내대로 남몰래 성호 긋고

큰아버지 절집에서 어떤 예불 올릴까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창틀에 핀 초승달

 

 

       *오승철 시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황금알, 2022)에서

                                              * 사진 : 하늘말나리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