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축하, 받다
어머니 한 세상은 그믐밤 믐빛이었다
<4․3>이며, 녹내장
순명이듯 받아들고
손주놈 군사우편도 못 읽는 믐빛이었다
벚꽃 환한 봄 탓이리
외출도 봄 탓이리
몇 수저의 저녁상
그마저 물려놓고
화급히 성당 저 너머 사라진 숟가락 하나
“잘 갑서, 잘 가십서” 아내의 기도 소리
이 봉투 저 봉투
그중에 어느 봉투
‘장모님 하늘나라 입학, 삼가 축하합니다’

♧ 연애하러 가는 날
택일은 무슨 택일
못 이긴 척 가는 거지
조금 물때 고향은 들물 날물 멎는 시간
이 바다
인연 거두고
산에 드는
숨비소리

♧ 참나리꽃
달팽이 뒷간 같네
신제주 어느 골목
어찌어찌 해장국집 끌고 온 내 아내가
얼결에 씨도둑처럼 참나리 꽃씨 받아왔네
여름이면 화분에 슬그머니 올린 꽃대
잎새마다 까만 씨앗 하나씩 품어내어
어디다 내려놓을까
시멘트 바닥뿐인 걸
그 꽃씨 다시 받아 어딜 갔나 했더니
장모님 산소 곁을
불 지르고 있었네
철 이른 벌초를 와서
불 지르고 있었네

♧ 아내의 오늘
점심인지
저녁인지
밥 몇 술 넘겨놓고
밤 장사 할까 말까 역병 도는 저물녘
오늘은 반달 뜨려나
반쯤 문 연
달맞이꽃

♧ 합제合祭
큰형네 종교 따라 추도예배 드리는 저녁
홍동백서 그 말 대신 성경 한 권 뿐이네
절 한 번 올리지 못한 둘째 형의 저 묵언
아내는 아내대로 남몰래 성호 긋고
큰아버지 절집에서 어떤 예불 올릴까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창틀에 핀 초승달
*오승철 시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 (황금알, 2022)에서
* 사진 : 하늘말나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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