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라산 둘레길
한라산 둘레길은
‘제주-목포’ 뱃길 같다
길 따라 파도 따라 둘레둘레 둘레길
물 봉봉 억새의 물결
오름이냐 섬이냐
가도 가도 8부 능선 박음질 하듯 걷는 길
일제강점기 병참로 나도 따라 돌아들면
산노루 울음도 가끔 괭이질 소리로 들린다
이 땅에 누가 놓친 동전 한 닢 주워들 듯
그렇게 놓친 길을 주워든 가을 끝물
울어본 가슴만 골라 또 울리는 단풍아

♧ 구름 멱살
어젯밤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렇다고 어떤 일 오늘 아침도 없었는데
서귀포 칠십리 벌판에 각시바위 올라섰네
이름에 홀렸을까
쌍바위에 홀렸을까
고해성사 할 때도 감춰뒀던 말들을
낱낱이 안다는 건가 그런 건가 아닌가
그런 건가 아닌가, 이 몹쓸 각시바위
맑디맑은 바다에 물고기가 노닌다고?
간간이 구름이 와서 멱살 잡다 가는 바위

♧ 집자리 별자리
대체 어느 곳으로 ‘돌아가셨다’ 하는 걸까
어머니 아버지 계신 가족묘지 한켠인가
고향산 국자로 걸린 북두칠성 한켠인가
별자리 돌아들 듯 돌아든 집자리들
어느덧 일곱 번째 거처마다 별 아닐까
한 생애 침점 친 길이 별의 길은 아닐까
대체 어느 곳으로 ‘돌아가셨다’ 하는 걸까
멀쩡한 사람 하나 어쩌자고 울려놓고
초저녁 마을 어귀에 서성대곤 하는 걸까

♧ 담뱃대더부살이
부정도 부정하면 긍정이 된다는데
서울의 섬 난지도야,
서울로 간 난지도야
버리고 버려진 섬에 돋아난 더부살이꽃
한 삽의 제주억새에 기어이 따라 나와
꽃이로되 꽃 아닌 척 향기마저 없는 척
야고의 또 다른 이름
담뱃대더부살이
누이야 서울의 밤,
미싱공 내 누이야
고향도 오래 뜨면 섬이 되지 않을까
억새에 억세게 기대,
한강의 불빛에 기대

♧ 새미소오름
아깝기사 가을 햇살 줘도 받지 않겠네
금억새 물결 따라 흘러든 섬의 안쪽
이 생엔 사랑 같은 거
다시 받지 않겠네
오름에 대못질하듯 박혀있는 십자가
나도
그리움도
그 위에 매어달면
네 죄는 네가 알렸다
삿대질하는 구름
*오승철 시조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더 그리울 때가 있다』(황금알, 202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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