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안개
아흐렛장 아흐레를 허벅물 져 날랐노라
큰어멍 맺힌 속 부옇게 휘젓고 나면
등이 휜 세상살이도 방울방울 증류되어
♧ 입
오일장
됫박 쌀 팔아
남은 이문으로
새끼 앞앞 풀어 놓은
애기 머리통만한 수박
어머니
붉은 하루를
소리 없이
파먹었다
♧ 엄마와 재봉틀
노루발 외발도
엄마와 발맞추면
달깍달깍
힘든 걸음도
드르륵 달려가지요
혹시나
길 잃을까 봐
실을 꿰고 가지요
♧ 민달팽이의 길
어쩌다 엄마라는 족쇄에 맨몸으로 나와
따가운 시선 안고 새벽을 걸어 나간
미혼모 더딘 걸음의 맨땅이 맨 은사슬
돌아갈 수 없는 길에 선 한 줄 긋고 가네
벌거숭이 신상이라도 개인동의 묻지 않은
몸 하나 풀 곳 찾아서 더듬이를 세우네
♧ 칸나
댓돌에 찢긴 이마 빨갛게 투색된 시월
돌쟁이 들쳐 안고 혼비백산 달리던
어머니 맨발자국이 그 길 따라 찍혀서
* 이애자 시집 『풀각시』 (한그루, 2022)에서
* 사진 : 애기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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