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이애자 시집 '풀각시'의 시조(2)와 애기도라지

김창집 2022. 8. 17. 00:04

 

가을 안개

 

 

아흐렛장 아흐레를 허벅물 져 날랐노라

큰어멍 맺힌 속 부옇게 휘젓고 나면

등이 휜 세상살이도 방울방울 증류되어

 

 

 

 

 

오일장

됫박 쌀 팔아

남은 이문으로

 

새끼 앞앞 풀어 놓은

애기 머리통만한 수박

 

어머니

붉은 하루를

소리 없이

파먹었다

 

 

 

엄마와 재봉틀

 

 

노루발 외발도

엄마와 발맞추면

 

달깍달깍

힘든 걸음도

드르륵 달려가지요

 

혹시나

길 잃을까 봐

실을 꿰고 가지요

 

 

 

민달팽이의 길

 

 

어쩌다 엄마라는 족쇄에 맨몸으로 나와

따가운 시선 안고 새벽을 걸어 나간

미혼모 더딘 걸음의 맨땅이 맨 은사슬

 

돌아갈 수 없는 길에 선 한 줄 긋고 가네

벌거숭이 신상이라도 개인동의 묻지 않은

몸 하나 풀 곳 찾아서 더듬이를 세우네

 

 

 

칸나

 

 

댓돌에 찢긴 이마 빨갛게 투색된 시월

돌쟁이 들쳐 안고 혼비백산 달리던

어머니 맨발자국이 그 길 따라 찍혀서

 

 

 

                               * 이애자 시집 풀각시(한그루, 2022)에서

                                               * 사진 : 애기도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