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신자 시조집 '난바르'의 시조(2)

김창집 2022. 9. 2. 01:06

 

 

세탁

 

 

당산봉 봄이 오면

엉알에 홀로 앉아

세 치 혀 길게 빼어

바닷물에 헹구고

샛말간 혀의 속살 위해

갯바위에 널어야지

 

안할 말 시샘의 말

불쑥불쑥 하던 입

어떤 날은 거친 욕

무심코 날리던 혀

당산봉 따스한 봄날

헹구고 말려야지

 

 

 

수선화, 괴다

 

 

그리운 이름 하나 땅속에 묻었다

건듯 부는 바람이 뭇별을 건너와서

담벼락 기대앉아서 그대 얼굴 그린다

 

꽃 필 날 기다리며 사랑 하나 심었다

세상에다 그리움 한가득 들어차면

그 사람 바튼 숨으로 달려나와 줄까요

 

해와 달이 번갈아 수없이 날 밀어내도

꽃봉인 듯 가만가만 기다려 있을게요

찬바람 휘몰아쳐도 장승처럼 버티며

 

괸다는 건 그 사람의 온기를 데우는 일

바람이 물고 있는 떨림도 다 읽으면

어쩌면 내 가슴 왼편에 괴어 있을 수선화

 

 

 

접신

 

 

부디 내게 와 주렴 사연 품고 오롯이

매일 밤 말의 사원 지웠다가 허물기

내 몸에 스밀 때까지 온밤을 반복하네

 

시님이 와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면

한 문장 두 줄 되고 두 줄이 석 줄 되고

어쩌다 내 집이 되면 눈물처럼 고웁네

 

 

 

홍시

 

 

가을 하늘 몇 자락 오가며 머물더니

어머니 둥근 마음 저리 익혀 놓았네

간밤에 어느 노래방 벌겋게 울다간 듯

 

막내딸 어린 응석 오냐오냐 하시며

긴긴 세월 자식 생각 뒤척이던 어머니

지상의 그리움들도 하늘을 향합니다

 

몇 닢이 남지 않은 이파리 거느렸네

바람이 사라지듯 구름이 지워지듯

하늘로 올라간 어머니, 눈물만 주렁주렁

 

 

 

나도 풍란

 

 

환상숲 거닐다가 얻어온 나도풍란

뿌리는 연약해도 수줍은 듯 고개 숙여

거실에 엎드려 뻗고 갖은 침묵 삼키네

 

이제야 되찾았나 그리운 은빛 향기

머들길 오래 걸어 어깨가 기울어진

그 속은 못 보더라도 틀림없는 내 가슴

 

바람이 솔솔 불며 피워내는 꽃이래요

내 안에 이는 바람 어떻게 알았는지

활활활 향기 날리며 피어난 나도 풍란

 

그대도 바람으로 내 생각 하신다면

그래요 나도풍란 맞아요 너도 풍란

한여름 삼복더위에 세상 덮는 이 향기

 

 

                                   *김신자 시조집 난바르(좋은땅,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