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강영은의 PPE 산수국 통신의 시(3)

김창집 2022. 9. 6. 00:01

 

쇠소깍, 남쪽

 

소가 드러누운 것처럼

각이 뚜렷한 너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남쪽은

날마다 흔들린다

 

창을 열면 그리운 남쪽,

살청빛 물결을 건너는 것을

남쪽의 남쪽이라 부른다면

 

네 발목에 주저앉아

무서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서움보다 깊은 색, 살이 녹아내린

남쪽은 건널 수 없다

 

눈이 내리면 너도 두 손을 가리고 울겠지

눈 내리는 날의 너를 생각하다가

북쪽도 남쪽도 아닌 가슴팍에

비애를 떠올린다

 

흑해의 지류 같은 여자를 건너는 것은

신분이 다른 북쪽의 일,

 

구실잣밤나무 발목아래 고인 너는 따뜻해서

용천수가 솟아나온 너는 더 따뜻해서

 

비루한 아랫도리, 아랫도리로만 흐르는

물의 노래, 흘러간 노래로 반짝이는

물의 살결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아직도 검푸른 혈흔이 남아 있는 마음이

무르팍에 이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독한 사랑처럼

먼 바다로 떠나가는 남쪽

 

누구에게나 전설은 있지, 중얼거려 보는

내 얼굴의 남쪽

   

 

 

 

으악새

 

 

  으악새 슬피 우는, 종결형의 가을이 매번 찾아왔으므로 나는 으악새가 호사도요, 흑꼬리도요, 알락꼬리마도요 같은, 울음 끝이 긴 새 이름인 줄만 알았다

 

  한라산의 능선 길, 하얀 뼈마디 숨겨진 길을 걸으며 억새의 울음소리를 잠시 들은 적은 있지만 내 몸의 깃털들 빠져나가 바람에 나부끼는 유목의 가을, 능선의 목울대를 조율하는 새를 보았다

 

  生에 더 오를 일이 남아 있지 않다고, 농약 탄 막걸리를 목구멍에 들이 부었다는 작은 외삼촌, 한라산 중턱에 무덤 한 채 세운 그를 만나러 앞 오름 지나던 그 날, 차창 너머 햇빛에 머리 푼 으악새,

 

  출렁이는 몸짓이 뼈만 남은 삼촌의 손가락 같았다 어깨 들썩이며 우는 삼촌의 아으, 희디흰 손가락, 그날 이후 손가락만 남아 손가락이 입이 된 새를 사랑하게 되었다 으악새 둥지를 내 몸에 들였다

 

 

 

어머니는 내게 바다를 보여 주셨다

 

 

답답하실 때나 속상하실 때 기쁘실 때도

어머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셨다

바구니 가득 캐어오던 게나 고동 같은

그것들을 캐던 시간들만은 아닌

어머니의 눈동자 속 출렁이는 바다

어머니는 그 바다 멀리

무엇을 찾고 계셨던 걸까

밀물 들 무렵부터 나도 차츰 출렁이는 것이

어머니의 바다가 고스란히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막막한 그리움조차 썰물처럼 빠져나간

도시의 불빛 아래 서면 세상은 그대로

어머니의 바다였다

어느 외딴 섬의 무인등대처럼

나는 얼마나

홀로 껐다 켜지기를 반복했던가

소금막 갯바위 위에 앉아

등 푸른 파도를 후려치시던 어머니,

뼛속 깊이 울음 우는 파장(波長)으로

내 몸의 물길 터주시던 어머니

급물살을 타시는데

메마른 등의 투명한 물살 따라

어린 멜처럼 출렁이는 내게

어머니는 바다만 남기시고

어디로 어디로 자맥질 하시려는가

 

 

                *강영은의 PPE(poem, photo, essay) 산수국 통신(황금알,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