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동백
밀항 간 할아버지 끝내 둥지 따로 트셨다
삼백예순날 광목수건 머리에 질끈 동여
난간에 잠시 걸쳤던 외할머니 짧은 생
마음 깎아 고독사孤獨寺 절 한 채 지으셨다
스스로에게 입힌 내상을 다스리려다
외고집 화근이 되어 더 큰 그늘 만드시고
힘을 잃고 나서는 눈빛은 온화해져
이따금 할아버지 동박새로 앉았다 가면
북받친 하얀 속울음이 마당귀를 적셨다
♧ 돗걸름 내는 날
통시담 허무는 소리 단잠 허무는 소리
꽤액 꽥 자릿도새기 과꽃 뭉개는 소리
어머니 달그락달그락 달빛 허무는 소리
탁탁 깻단 타는 무쇠솥 매운 눈물
빨갛게 짓무른 삼 촉짜리 알전구 따라
희뿌연 곤밥 냄새가 어둠을 뜸들이던
♧ 하늘이 솔짝
-일곱 살
어머니 쌀가게 쌀 한 줌 솔짝 담아
서문다리 건너다 헛디뎌 쏟은 주머니
싸락눈 발악이 풀어 어린 죄를 묻으셨다
어머니 쌀가게 오 원짜리 솔짝 꺼내
사탕가게 기웃대다 뒤집힌 오 원의 누명
둥근 달 슬며시 띄워 어린 죄를 감싸셨다
♧ 일과리 개양귀비
외지인이 살다간
빈 마당에 풀이 덤벙
주홍빛 립스틱
엄마 몰래 갖고 와선
까르르
동네 꼬마들
돌려가며
바르고 있네
♧ 바다와 바닥
하늘이 묵지 대고 바다를 베낀 걸까
바다가 묵지 대고 하늘을 베낀 걸까
짙푸른 곤룡포 자락 금박 입힌 밤바당
자리 하나로 한자리하지 않았더냐
방어 하나로 한철 방어하지 않았더냐
그 많던 자리도 방어도 북상 중이라는구나
가파도 혼 끝 잡고 마라도 혼 끝 잡아
둥글게 몰아가고 둥글게 몰아오면
멸치떼 구덕 하나쯤 모슬포 인심이었다지
송악산 무릉리 지나 신도 앞바당까지
환해장성 돌을 쌓는 돌고래떼 앞세워
해지는 모슬포 바당 황룡포를 펼치자꾸나
* 이애자 시집 『풀각시』 (한그루, 2022)에서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1) (0) | 2022.09.07 |
---|---|
강영은의 PPE 산수국 통신의 시(3) (0) | 2022.09.06 |
김신자 시조집 '난바르'의 시조(2) (0) | 2022.09.02 |
강영은의 PPE '산수국 통신'의 시(2) (0) | 2022.08.31 |
이애자 시집 '풀각시'의 시조(4) (0) | 2022.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