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이애자 시집 '풀각시'의 시조(5)

김창집 2022. 9. 4. 00:27

 

 

백동백

 

 

밀항 간 할아버지 끝내 둥지 따로 트셨다

삼백예순날 광목수건 머리에 질끈 동여

난간에 잠시 걸쳤던 외할머니 짧은 생

 

마음 깎아 고독사孤獨寺 절 한 채 지으셨다

스스로에게 입힌 내상을 다스리려다

외고집 화근이 되어 더 큰 그늘 만드시고

 

힘을 잃고 나서는 눈빛은 온화해져

이따금 할아버지 동박새로 앉았다 가면

북받친 하얀 속울음이 마당귀를 적셨다

 

 

 

 

돗걸름 내는 날

 

 

통시담 허무는 소리 단잠 허무는 소리

꽤액 꽥 자릿도새기 과꽃 뭉개는 소리

어머니 달그락달그락 달빛 허무는 소리

 

탁탁 깻단 타는 무쇠솥 매운 눈물

빨갛게 짓무른 삼 촉짜리 알전구 따라

희뿌연 곤밥 냄새가 어둠을 뜸들이던

 

 

 

 

하늘이 솔짝

     -일곱 살

 

 

어머니 쌀가게 쌀 한 줌 솔짝 담아

서문다리 건너다 헛디뎌 쏟은 주머니

싸락눈 발악이 풀어 어린 죄를 묻으셨다

 

어머니 쌀가게 오 원짜리 솔짝 꺼내

사탕가게 기웃대다 뒤집힌 오 원의 누명

둥근 달 슬며시 띄워 어린 죄를 감싸셨다

 

 

 

일과리 개양귀비

 

 

외지인이 살다간

빈 마당에 풀이 덤벙

 

주홍빛 립스틱

엄마 몰래 갖고 와선

 

까르르

동네 꼬마들

돌려가며

바르고 있네

 

 

 

바다와 바닥

 

 

하늘이 묵지 대고 바다를 베낀 걸까

바다가 묵지 대고 하늘을 베낀 걸까

짙푸른 곤룡포 자락 금박 입힌 밤바당

 

자리 하나로 한자리하지 않았더냐

방어 하나로 한철 방어하지 않았더냐

그 많던 자리도 방어도 북상 중이라는구나

 

가파도 혼 끝 잡고 마라도 혼 끝 잡아

둥글게 몰아가고 둥글게 몰아오면

멸치떼 구덕 하나쯤 모슬포 인심이었다지

 

송악산 무릉리 지나 신도 앞바당까지

환해장성 돌을 쌓는 돌고래떼 앞세워

해지는 모슬포 바당 황룡포를 펼치자꾸나

 

 

                                         * 이애자 시집 풀각시(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