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다래나무 하얀 잎사귀 - 김내식
영주 소백산 국립 치유원길
두 시간 나란히 오르는 음습한 계곡
거기에 난데없이
개다래나무 잎사귀가 하얗게 변해
자잘한 꽃잎위로 불을 밝히니
벌 나비가 날아든다
백년 사위로
그 때, 한 무리의 장애아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가는 모정을 바라보며
두 모습이 하나로 겹쳐지는
환상이 떠오른다
먼 훗날 결실을 하게 되면
이제는 부모로서의 제 할일 다 했다며
다시 푸른 삶이되시기를
♧ 달맞이꽃 – 김귀녀
달 밝은
강둑길에
피어있는 달맞이꽃
우주를 안았다
성전 안에
무릎 꿇고
눈물자국 선명한
소망의 기도 올릴 때
하늘 아버지
빙그레 웃으셨다
♧ 솔숲 심상心象 – 김청광
솔숲
솔향기
솔바람
소란이 넘치는 세상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유혹
삭이지 못한 멀미 같은 것
그렇더라도 괜찮다
마음결 정갈히 가라앉히면서
대관령 골짜기
소광리 산자락
심산유곡深山幽谷 청정淸淨한 자태
그 고요한 뜻 무던히도
잘 지켜가고 있구나
솔숲
솔향기
솔바람
솔방울 여물어가네
♧ 폼페이의 아폴론 - 동시영
자연이 인공을 부수자
신들마저 모조리 부서져 내리고
부서지다만 몸 간신히 추슬러
홀로 서 있는 아폴론
신들 나라의 볼모 잡힌 패잔병
따르던 뮤즈도 음악도 없다
신화 따윈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구경이나 다니는 사람들을
멀고 먼 시간의 공간으로 모셔
인간들 시중들기에 골몰하고 있다
예언으로 미래를 보여주던 그가
기억으로 과거를 보여주고 있다
신전 옆 폐허에
요염을 그려 넣는 양귀비꽃은
사라진 그때를
가리다 보여주다
시간에 나부끼는 커튼이 된다
♧ 치자 – 안국희
제삿날 아침
무명실에 꿰어 말린
열매 하나를 떼어
따뜻한 물에 담그니
답답한 속 풀어헤치듯
진노랑 긴 고름으로
풀어내시네
끊어질 듯 이어지며
제 풀에 지친 몸이
다저녁이 되어서야
잠잠해지면
하얀 치자꽃으로 시집 와
노랑 열매로 쪼그라들어
황혼빛 물에 녹여진
어머니의 옛이야기
* 『산림문학』 2022년 가을(통권 47)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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