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산림문학' 2022년 가을호의 시

김창집 2022. 9. 24. 00:14

 

 

개다래나무 하얀 잎사귀 - 김내식

 

 

영주 소백산 국립 치유원길

두 시간 나란히 오르는 음습한 계곡

거기에 난데없이

 

개다래나무 잎사귀가 하얗게 변해

자잘한 꽃잎위로 불을 밝히니

벌 나비가 날아든다

백년 사위로

 

그 때, 한 무리의 장애아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가는 모정을 바라보며

두 모습이 하나로 겹쳐지는

환상이 떠오른다

 

먼 훗날 결실을 하게 되면

이제는 부모로서의 제 할일 다 했다며

다시 푸른 삶이되시기를

 

 

 

 

달맞이꽃 김귀녀

 

 

달 밝은

강둑길에

피어있는 달맞이꽃

 

우주를 안았다

 

성전 안에

무릎 꿇고

눈물자국 선명한

소망의 기도 올릴 때

 

하늘 아버지

빙그레 웃으셨다

 

 

 

 

솔숲 심상心象 김청광

 

 

솔숲

솔향기

솔바람

 

소란이 넘치는 세상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유혹

삭이지 못한 멀미 같은 것

그렇더라도 괜찮다

마음결 정갈히 가라앉히면서

 

대관령 골짜기

소광리 산자락

심산유곡深山幽谷 청정淸淨한 자태

그 고요한 뜻 무던히도

잘 지켜가고 있구나

 

솔숲

솔향기

솔바람

솔방울 여물어가네

 

 

 

 

폼페이의 아폴론 - 동시영

 

 

자연이 인공을 부수자

신들마저 모조리 부서져 내리고

부서지다만 몸 간신히 추슬러

홀로 서 있는 아폴론

 

신들 나라의 볼모 잡힌 패잔병

따르던 뮤즈도 음악도 없다

 

신화 따윈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구경이나 다니는 사람들을

멀고 먼 시간의 공간으로 모셔

인간들 시중들기에 골몰하고 있다

 

예언으로 미래를 보여주던 그가

기억으로 과거를 보여주고 있다

 

신전 옆 폐허에

요염을 그려 넣는 양귀비꽃은

사라진 그때를

가리다 보여주다

시간에 나부끼는 커튼이 된다

 

 

 

 

치자 안국희

 

 

제삿날 아침

무명실에 꿰어 말린

열매 하나를 떼어

따뜻한 물에 담그니

 

답답한 속 풀어헤치듯

진노랑 긴 고름으로

풀어내시네

 

끊어질 듯 이어지며

제 풀에 지친 몸이

다저녁이 되어서야

잠잠해지면

 

하얀 치자꽃으로 시집 와

노랑 열매로 쪼그라들어

황혼빛 물에 녹여진

어머니의 옛이야기

 

 

                     * 산림문학2022년 가을(통권 47)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