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나무 숲
홀로 선
삼나무 고목
아직은 본 적 없다
좁은 땅 뿌리 내려도
웃으며 함께 산다
언제나
이웃을 닮아
곧다
그리고 크다
♧ 저녁 바다
저무는 노을빛이
그토록 고운 것은
가야 할 때를 알아
돌아섬이 아니런가
하루를
다 들여 놓고
문도 닫지 않는 바다
창문까지 닫아걸고
숨길 게 많은 사람들
돌아선 뒷모습에
노을이나 앉아줄까
섬동백
떨어져 더 붉은 뜻
짐작이나 할까, 못할까
♧ 어떤 소감
화려한 조명보다
더 빛난 소감 한마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줍게 받고 나선
대본이
성경이라는
윤여정의 영화 인생
최고보다 최중最中이
내 삶의 목표라고
사전에 없는 말이 이토록 감동일까
시조도
이처럼 쓰면
비움의 실천인 걸
♧ 어느 슬픈 이야기
일곱 살 손자 녀석
오늘따라 시무룩하다
웬일이니?
품에 안는
포근한 할미에게
오늘은 슬픈 일 있어요
할머니가 2등이에요
엄마가 1등인 걸
이제야 깨달았나
그래도 미안했던지
베개 들고 곁에 와서
귓속말
이 세상 할머니 중
우리 할머니가 1등이야
♧ 다시 오리 선암사
승선교 아래 서서
강선루 바라보면
물 아래 비친 모습
바로 내가 신선일까
뒤에 선
미인 그림자
속인되고 말아라
대웅전
굽은 솔 밑
해우소에 걸린 근심
정호승* 통곡하다
뭘 깨닫고 시를 썼나
나 또한
참다 울음 터지면
다시 오리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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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해우소에는 정호승 시인의 시 ‘선암사’가 걸려 있다.
* 고성기 시집 『이제는 다리를 놓을 시간』 (한그루, 202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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