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의 시(7)

김창집 2022. 12. 5. 04:16

 

 

삼나무 숲

 

 

홀로 선

삼나무 고목

아직은 본 적 없다

좁은 땅 뿌리 내려도

웃으며 함께 산다

언제나

이웃을 닮아

곧다

그리고 크다

 

 

 

저녁 바다

 

 

저무는 노을빛이

그토록 고운 것은

 

가야 할 때를 알아

돌아섬이 아니런가

 

하루를

다 들여 놓고

문도 닫지 않는 바다

 

 

창문까지 닫아걸고

숨길 게 많은 사람들

 

돌아선 뒷모습에

노을이나 앉아줄까

 

섬동백

떨어져 더 붉은 뜻

짐작이나 할까, 못할까

 

 

 

어떤 소감

 

 

화려한 조명보다

더 빛난 소감 한마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줍게 받고 나선

대본이

성경이라는

윤여정의 영화 인생

 

최고보다 최중最中

내 삶의 목표라고

사전에 없는 말이 이토록 감동일까

시조도

이처럼 쓰면

비움의 실천인 걸

 

 

 

 

어느 슬픈 이야기

 

 

일곱 살 손자 녀석

오늘따라 시무룩하다

웬일이니?

품에 안는

포근한 할미에게

오늘은 슬픈 일 있어요

할머니가 2등이에요

 

엄마가 1등인 걸

이제야 깨달았나

그래도 미안했던지

베개 들고 곁에 와서

귓속말

이 세상 할머니 중

우리 할머니가 1등이야

 

 

 

다시 오리 선암사

 

 

승선교 아래 서서

강선루 바라보면

물 아래 비친 모습

바로 내가 신선일까

뒤에 선

미인 그림자

속인되고 말아라

 

 

대웅전

굽은 솔 밑

해우소에 걸린 근심

정호승* 통곡하다

뭘 깨닫고 시를 썼나

나 또한

참다 울음 터지면

다시 오리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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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해우소에는 정호승 시인의 시 선암사가 걸려 있다.

 

 

               * 고성기 시집 이제는 다리를 놓을 시간(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