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승철 시집 '사고 싶은 노을'의 시(2)

김창집 2022. 12. 2. 00:58

 

안부

 

 

초여름 지리산과 외박을 했습니다.

녹색군단 싣고 왔던

칠선 계곡 물소리가

밤새껏

군 트럭 가듯

시동을 켰습니다.

 

한라산 철쭉빛을 산역하고 왔습니다.

통화권 이탈에 있는

지리산 새소리만

안부를 건네주는지

비명 같은 저 호출부호

 

 

 

로터리 울보

 

 

늘상 빈 지게로

무얼 지고 싶었을까

지게꾼들 틈에서도

왜 짐 한 번 안 졌을까

로터리 녹는 눈발도

불쌍해서 너는 운다

 

제주시 칠성통길, 국자로 뜬 그 골목을,

너는 돈다, 돌지 않는 세상의 한 귀퉁이에

흩뿌린 밥알들 같은 바람꽃도 피워낸다

 

누가 탐라주성 이곳에 와 부렸을까

북두칠성 살던 터에 전원을 다시 켜면

매립된 칠성통 바다, 창창 살아 출렁일까

 

새우젓 냄새 같은 이 남루의 그리움을,

너는 안다, 끝까지 연대보증 서주듯이

이 저녁 화살기도로 역병 같은 불빛 쏜다.

 

 

 

겨울 귤밭

 

 

귀한 것일수록

버리는 마음가짐

 

눈 내린 날은 장끼도

터를 잡고 우는데

 

외면코 등을 돌리면

하늘 끝에 머무는 노을.

 

머물지 못하는 세월

나뭇잎 흔들고 갔다.

 

바다 가까운 담 밖에

지치도록 쳐진 가지

 

오늘밤 뉘 무덤가에

별빛 한창 푸르겠다.

 

 

 

사고 싶은 노을

 

 

제주에서 참았던 눈

일본에 다시 온다.

삽자루 괭이자루로

고향 뜬 한 무리가

대판의 어느 냇둑길

황소처럼

끌고 간다.

 

파라, 냇둑공사 다 끝난 땅일지라도

40여 년<4·3>은 다 끊긴 인연일지라도

내 가슴 화석에 박힌 사투리 쩡 쩡 파라

 

일본말 서울말보다

제주말이 더 잘 통하는

쓰루하시*, 저 할망들 어느 고을 태생일까

좌판에 옥돔의 눈빛 반쯤 상한 고향하늘

 

송키**, 송키 사압서낯설고 언 하늘에

엔화 몇 장 쥐어 주고

황급히 간 내 눈님아

한사코

제주로 못 가는

저 노을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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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하시 : 일본 대판에 있는 쓰루하시(鶴橋)는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제주도민들이 <평야천>공사를 위하여 노역을 갔다가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곳이다.

**송키 : ‘야채반찬꺼리의 제주어.

 

 

 

항아리

 

 

애초 설레임이

한 획으로 금이 갔다.

 

한낱 외로움이야

비워내면 그만인 걸

 

설움이

만월이 되어

가슴으로 차오르는 한.

 

묵묵히 삼대 째를

견디어온 살붙이여

 

어머님

제주 바람은

칼끝보다 아파 와요

 

세월이

약이라지만

병도 되는 금 하나.

 

 

                                * 오승철 시조집 사고 싶은 노을(태학사, 200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