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부
초여름 지리산과 외박을 했습니다.
녹색군단 싣고 왔던
칠선 계곡 물소리가
밤새껏
군 트럭 가듯
시동을 켰습니다.
한라산 철쭉빛을 산역하고 왔습니다.
통화권 이탈에 있는
지리산 새소리만
안부를 건네주는지
비명 같은 저 호출부호

♧ 로터리 울보
늘상 빈 지게로
무얼 지고 싶었을까
지게꾼들 틈에서도
왜 짐 한 번 안 졌을까
로터리 녹는 눈발도
불쌍해서 너는 운다
제주시 칠성통길, 국자로 뜬 그 골목을,
너는 돈다, 돌지 않는 세상의 한 귀퉁이에
흩뿌린 밥알들 같은 바람꽃도 피워낸다
누가 탐라주성 이곳에 와 부렸을까
북두칠성 살던 터에 전원을 다시 켜면
매립된 칠성통 바다, 창창 살아 출렁일까
새우젓 냄새 같은 이 남루의 그리움을,
너는 안다, 끝까지 연대보증 서주듯이
이 저녁 화살기도로 역병 같은 불빛 쏜다.

♧ 겨울 귤밭
귀한 것일수록
버리는 마음가짐
눈 내린 날은 장끼도
터를 잡고 우는데
외면코 등을 돌리면
하늘 끝에 머무는 노을.
머물지 못하는 세월
나뭇잎 흔들고 갔다.
바다 가까운 담 밖에
지치도록 쳐진 가지
오늘밤 뉘 무덤가에
별빛 한창 푸르겠다.

♧ 사고 싶은 노을
제주에서 참았던 눈
일본에 다시 온다.
삽자루 괭이자루로
고향 뜬 한 무리가
대판의 어느 냇둑길
황소처럼
끌고 간다.
파라, 냇둑공사 다 끝난 땅일지라도
40여 년<4·3땅>은 다 끊긴 인연일지라도
내 가슴 화석에 박힌 사투리 쩡 쩡 파라
일본말 서울말보다
제주말이 더 잘 통하는
쓰루하시*, 저 할망들 어느 고을 태생일까
좌판에 옥돔의 눈빛 반쯤 상한 고향하늘
‘송키**, 송키 사압서’ 낯설고 언 하늘에
엔화 몇 장 쥐어 주고
황급히 간 내 눈님아
한사코
제주로 못 가는
저 노을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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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하시 : 일본 대판에 있는 쓰루하시(鶴橋)는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제주도민들이 <평야천>공사를 위하여 노역을 갔다가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곳이다.
**송키 : ‘야채반찬꺼리’의 제주어.

♧ 항아리
애초 설레임이
한 획으로 금이 갔다.
한낱 외로움이야
비워내면 그만인 걸
설움이
만월이 되어
가슴으로 차오르는 한.
묵묵히 삼대 째를
견디어온 살붙이여
어머님
제주 바람은
칼끝보다 아파 와요
세월이
약이라지만
병도 되는 금 하나.
* 오승철 시조집 『사고 싶은 노을』 (태학사, 200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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