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2022년 겨울호의 시(1)

김창집 2022. 12. 31. 01:43

 

무등이왓에선 강덕환

 

무등이왓에선 고르닥헤나십주

느나 엇이 우알 엇시

하나 족으나

시민 신 냥 엇이민 어신 냥

식게 파제 후제 반 태우듯

골로로 콧징ᄒᆞ게 ᄂᆞ낭 살아나십주

 

무등이왓디선 누게광도 ᄒᆞᆫ디라나십주

날 우쳐가민 어가라

장항 덕어주곡

주제기 비 와가민

물에 끗어불카부덴

날래 채왕 담아주멍

모다들엉 수눌어나십주

 

여진머리오름으로

벳이 과랑과랑 돋곡

절울이오름으로 터러질 때ᄁᆞ장

이 무등이왓디선

좁씨 삔디 조 나곡

콩씨 삔디 콩 나멍

감도 싱금도, 맴도 빔도

데몃당 거둠도 ᄒᆞᆫ디

고르닥ᄒᆞ게 살아나신디

 

와망박작 사삼시국에

간 날 간 시 몰르게

그 사름덜 가로각산 삐어졍

어디덜 가부러신고 원

 

 

 

큰 별 하나가 김경훈

   -서재 김윤수 선생님을 저승 상마을로 보내며

 

 

한평생 아픈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큰 별 하나가 하늘에 아로새겨졌다

저 자신 아픈 육신을 벗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미여지벵디 지나 서천꽃밭 지나

하늘에 닿았다

전설 따라 흐르는 미릿내 그 어딘가쯤

그 자신 전설이 되어 빛나고 있다

전생 팔자 궂은 신의 형방 심방이 되어

온갖 수모 굴욕 다 이겨내고

세상사 어두운 악연 훌훌 풀어내다

그 자신 단골들 인연 접고

저 청한 하늘에 밝은 별이 되었다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는 큰 별이 되었다

 

 

 

신과 사냥꾼 김광렬

 

 

신이 하늘에 그물을 놓아

새를 잡는다면

사냥꾼과 무엇이 다르랴

 

사냥꾼이 하늘 길 잘 닦아

새를 풀어준다면

어찌 신과 다르랴

 

신과 사냥꾼의 차이는

가엾은 것을

얼마나 긍휼히 여기느냐

하는 마음에 달렸는데

 

긍휼한 자는

새의 앞길을 열어주고

흉포한 자는 그물을 친다

 

 

 

아들의 연인 김대용

 

 

그 아이는 혹시 산이나 바다 중 어디를 더 좋아하는지

들판에서 비바람을 맞아 보았는지 라고 하면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흔들고 몇 년 아르바이트 해서 영화에서 본 그곳을 가고

싶어 하는지 배낭지고 유레일패스 사고 호스텔에 자며 26

이하는 무료인 일요일을 기다려 미술관이나 박물관 찾아보는

계획을 세워 보았는지 공원벤치에서 빵조각 치즈 한 쪽에 생수병

오렌지로 차린 점심을 먹고 훌훌 먼지 털며 다시 배낭 매었던

그런 아이는 아닌지 벌레 먹은 사과를 도려 먹을 줄 알고 상한 귤

오려 먹고 남은 반찬 다 모아서 비빔밥 잘 만들고 강아지 좋아하고

거리의 고양이에게 몰래 사료 가져다주고 비오는 일요일 날은

김치전 부쳐 먹고 영화 몇 편 보다 자는 그런 아이는 아닌지

기름진 치킨 튀김 먹고 비 오는 거리를 만보 걸어갔던 그런 아이는

아닌지 혹시 곱게 물든 낙엽을 책갈피에 끼워두는 그런 아이는

아닌지 다 읽은 책들이나 낡고 유행 지난 옷가지들은 자전거에

실어 아름다운 가게로 보내는 그런 아이는 아닌지

 

 

 

입소기(入所記) - 김병택

    -로빈슨 크루스에 빗대어

 

 

정박 중인, 커다란 배로 다가갈

튼튼하고 변변한 뗏목 하나는

햇빛 가릴 나무 한 그루도 없었다

 

젊은 가슴 속에는 느닷없는

공격에 대비할 칼 같은 마음만

단단히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하루에 출입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희미한 발자국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아무도 몰래 들어와서

염탐을 끝낸 사람의 흔적이었다

 

무인도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저절로 빠르게 달려오는 불안은

대강 헤아려도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가급적 양식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매일 연구를 계속할 요량이었지만

 

앞으로 자주 만나야 할 소장이

독재 권력자와 유사하다는 소문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잘못된 시대에는 흔했던 일이라고

 

그나저나 우리에겐

입소 기간을 무사히 지키는 것이

마음속에 유일하게 품은 희망이었다

 

 

               * 계간 제주작가2022년 겨울호(통권 7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