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국 - 강상돈
머리를 말아 올린 이웃집 소녀 같은
수국이 피어 있다, 남국사 돌담길에
비단결 고운 빛깔로 몸치장하고 있는
♧ 숲의 문장 – 김윤숙
수려한 문체로 빛을 내는 자작나무 숲
발바닥 뜨겁게 재촉하던 연유 있네
바람길 돌려세우며 얼비치는 봄볕마저
‘천 개의 눈빛’들이 되비치는 거울엔
상처도 무늬 되어 서로에게 묻는 안부
또 한 겹 그 길을 찾아, 우거진 퇴고 흔적
♧ 성소를 훔쳐보다 - 문순자
노랑턱멧새인가
곤줄박이 녀석인가
가끔은 농약도 치는 감귤나무 가지에
손녀딸 밥사발만 한 새집 하나 생겼다
몇 번의 날갯짓이 둥지를 완성했을까
이끼와 지푸라기 솜털로 차린 신방
저들의 성소를 엿보는
내 몸이 저릿하다
삐이삐 찌르찌르
밥 한술도 못 줬는데
그럼에도 탈 없이 부화를 끝냈는지
올여름 가마솥더위 달구는 저 새소리
♧ 8월 마지막 날 – 장승심
입추 처서 약속한 듯
서로 만나 기약했나
길고 긴 여름 끝자락
감나무잎 사~알~랑
지구가
잠시 조는 사이
바꿔치기 하는 바람
♧ 봄, 엿보다 - 장영춘
바람처럼 왔다가
사나흘 살더라도
피우리라,
꽃 피우리라
물관부로 실어 나르던
저것 봐
바람꽃 한 송이
얼린 손 내미는 거
어제 놓아버린
핏줄 마른 다짐들이
또다시
꽃 앞에서
속수무책 무너지고
게으른 발자국 털며
출렁이며 오는 봄
♧ 보길도 서시 – 김영란
떨어져 더 꽃다운
동백이 한창이네요
바람 멎자 떠나려는 마음 먼저 떠나서 세상 밖 동백꽃 그 오솔길 흙 향기 외롭고 고단한 어깨 어루만져 주네요 세상이 날 버리면 나도 세상 버려야지 속마음 훌훌 털며 주저앉고 말았네요
구름이 기다린 듯이
능선을 덮네요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 2022 제1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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