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2 하반기 제19호의 시(1)

김창집 2023. 1. 5. 00:31

 

[초대시]

 

 

강을 거슬러 가는 배 - 강현덕

 

 

강을 거슬러 갈 배 한 척만 있다면

연어 떼 곁을 얻어 상류로 갈 거야

그 옛날 나 태어났던

물속 바위 찾으려고

 

폭포도 소용돌이도 오만을 거둬 주겠지

미처 낳지 못한 아이들을 낳으러 가니

윤슬의 끝없는 축복

나는 목이 멜 거야

 

저 강을 거슬러 갈 배 한 척만 있다면

힘찬 지느러미 배 한 척만 있다면

찬란한 산란을 위해

나 부서지러 갈 거야

 

 

 

법성암 - 공광규

 

 

늙은 어머니를 따라 늙어가는 나도

잘 익은 수박 한 통 들고

법성암 부처님께 절하러 갔다

 

납작 납작 절하는 어머니 모습이

부처님보다는 바닥을 더 잘 모시는 보살이다

평생 땅을 모시고 산 습관이었으리라

 

절을 마치고 구경삼아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법당 연등과 작은 부처님 앞에 내 이름이 붙어 있고

절 마당 석탑 기단에도

내 이름이 깊게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다니며 시주하던 절인데

어머니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어머니는 평생 나를 아름다운 연등으로

작은 부처님으로

높은 석탑으로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변새邊塞, 화살나무는 - 오종문

 

 

낮은 산등성이에 살 발라낸 시가 있다

그 길밖에 없다는 듯 허공을 붙들고 살며

시위를 떠나지 못한 절규하는 시가 있다

 

바람에

선동당하며

뻐꾹새가 목을 풀던

그 울음 받아쓰는 전쟁터 전사 같다

아니다 영웅과 같다

순교하는

투사처럼

 

변새 외재적 불빛 마음에 아스라하다

고요를 깨트리고 깨달은 의미처럼

과녁을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밥 벌다 이두의

 

 

가시로 덧문 걸어 아득히 멀기만 했던

 

너도 많이 그리웠구나 스스로 틈을 내어

 

한순간

! 다가오는

결곡한 얼굴 하나

 

단풍이 이룬 꽃밭 적요도 모로 눕고

 

날아든 박새 한 쌍 따스한 두 가슴이

 

달밤을

익히고 있다

비로소 가을이다

 

 

                             *혜향문학회 간 혜향문학2022 하반기(1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