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 강을 거슬러 가는 배 - 강현덕
강을 거슬러 갈 배 한 척만 있다면
연어 떼 곁을 얻어 상류로 갈 거야
그 옛날 나 태어났던
물속 바위 찾으려고
폭포도 소용돌이도 오만을 거둬 주겠지
미처 낳지 못한 아이들을 낳으러 가니
윤슬의 끝없는 축복
나는 목이 멜 거야
저 강을 거슬러 갈 배 한 척만 있다면
힘찬 지느러미 배 한 척만 있다면
찬란한 산란을 위해
나 부서지러 갈 거야
♧ 법성암 - 공광규
늙은 어머니를 따라 늙어가는 나도
잘 익은 수박 한 통 들고
법성암 부처님께 절하러 갔다
납작 납작 절하는 어머니 모습이
부처님보다는 바닥을 더 잘 모시는 보살이다
평생 땅을 모시고 산 습관이었으리라
절을 마치고 구경삼아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법당 연등과 작은 부처님 앞에 내 이름이 붙어 있고
절 마당 석탑 기단에도
내 이름이 깊게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다니며 시주하던 절인데
어머니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어머니는 평생 나를 아름다운 연등으로
작은 부처님으로
높은 석탑으로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 변새邊塞, 화살나무는 - 오종문
낮은 산등성이에 살 발라낸 시詩가 있다
그 길밖에 없다는 듯 허공을 붙들고 살며
시위를 떠나지 못한 절규하는 시矢가 있다
바람에
선동당하며
뻐꾹새가 목을 풀던
그 울음 받아쓰는 전쟁터 전사 같다
아니다 영웅과 같다
순교하는
투사처럼
변새 외재적 불빛 마음에 아스라하다
고요를 깨트리고 깨달은 의미처럼
과녁을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 밥 벌다 – 이두의
가시로 덧문 걸어 아득히 멀기만 했던
너도 많이 그리웠구나 스스로 틈을 내어
한순간
툭! 다가오는
결곡한 얼굴 하나
단풍이 이룬 꽃밭 적요도 모로 눕고
날아든 박새 한 쌍 따스한 두 가슴이
달밤을
익히고 있다
비로소 가을이다
*혜향문학회 간 『혜향문학』 2022 하반기(제19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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