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넙거리오름과 사려니오름

김창집 2002. 4. 23. 13:23
△ 지금 제주도의 들판은 고사리의 천국

오늘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서는 ‘유채꽃 큰잔치’, 남제주군 남원읍 남조로 주변에서는 ‘고사리 축제’가 열리고 있다. 조그만 제주도에서 서로 의논해서 할 일이지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이 같은 날 행사를 한다고 야단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요즘 늘어난 것이 축제다. 지자제 이후, 굴뚝 없이 쏠쏠한 재미를 보는 산업이라고 너도나도 관광객 유치에 열 올리면서 별의별 축제를 다 만들어 놓았다. 남조로변 한 목장에 행사 본부를 설치한 고사리 축제 대회장은 많은 차량들이 몰려들어 벌써 고사리를 꺾노라 온 들판이 시끌벅적하다.

섬 들판은 고사리 세상이다. 봄이 깊어지면서 그곳이 목장이건, 밭구석이건, 가시덤불이건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머리를 쳐든다. 꺾고 꺾고 다시 꺾어도 솟아나서, 고사리는 아홉 형제라고 했다. 제주도에서는 겨울에도 무, 배추가 얼지 않고 청청하기에 산나물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지만 고사리나물만큼은 유난스럽게 밝힌다. 모든 제사나 차례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 아무리 바빠도 고사리 철에는 많이 꺾어다가 데쳐 말려 갈무리해 놓고 1년 동안 쓰게 되는 것이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것인들 긔 뉘 따헤 났나니.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은 고사리를 캐어 먹으면서까지 구차하게 생명을 부지했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나무랐다. 그걸로 보면 고사리만 먹고도 살 수 있는가 보다. 고사리는 언덕이나 낮은 산의 양지에서 자라는 양치식물로 봄에 갓 돋아난 것을 꺾어 데치거나 말려서 먹는다. 석회질이 많고 광물질도 함유되어 있어 뼈와 치아를 튼튼하게 한다. 뿌리줄기를 한약 이름으로 귈분(蕨粉)이라 하며, 민간에서는 이뇨, 통변, 부종, 통경, 해열제등의 약재로 쓰인다.

‘본초강목’에 보면, ‘고사리는 폭열을 없애며 이뇨에 좋다. 삶아서 먹으면 향미하나 오랫동안 먹으면 양기를 덜고 다리가 약해진다.’라고 하였다. 고사리가 정력에 안 좋다는 말은 비타민 B1을 분해하는 특수효소 아네우리나제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타민 B1이 거의 없는데다 비타민 B1을 파괴하는 효소까지 들어 있으므로 너무 많이 먹으면 비타민 결핍증인 각기병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남성에게 해롭다는 말은 이런 데서 비롯됐나 보다. 그러나 날로 먹지 않고 소금물에 삶아 물에 우린 뒤 조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고사리는 보통 파와 마늘을 다져넣고 참기름에 볶아 먹으면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부족한 비타민 B1과 지방을 보충할 수 있다. 그래서 들판에서 나는 쇠고기라고까지 부른다. 나물 외에도 햇고사리국,고사리장찌개, 육개장에도 그만이다. 마른 고사리는 쌀뜨물에 담가 삶으면 부드러워지고 빨리 퍼지며 영양 손실도 적다. 단백질과 섬유소가 특히 많고 칼슘과 칼륨 등 각종 무기질이 다른 나물에 비해 비교적 풍부해 공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좋은 식품으로 꼽히고 있다. 전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므로 뿌리를 채취해 고사리전분을 만들어 접착제로 쓰기도 했다

▲ 오름으로 가는 길의 복분자와 두릅나무

이쪽 남원읍의 넙거리, 사려니, 머체 그리고 거린오름으로 가는 길목엔 유난히 복분자와 두릅나무가 많다. 이상하게도 요즘 복분자가 제주 중산간에 많이 퍼지고 있다. 복분자술이 인기인데 대단위로 재배하여 술을 담가 팔면 그냥 감귤나무를 심는 것보다 훨씬 수익이 낫지 않을까? 이제는 영농도 머리를 써야 한다. 작년, 재작년 이곳에 와서 제법 쏠쏠하게 복분자 딸기를 맛볼 수 있었다. 복분자도 고사리마냥 거친 곳에서도 자라고 퍼지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경쟁력이 있겠다.

두릅나무는 보통 참두릅과 가시두릅으로 나뉘는데, 이 또한 고사리나 복분자처럼 험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다. 누가 심어놓지 않드라도 제 스스로 번식하며 저절로 자란다. 그것도 순이 날 때마다 계속 따 버려도 살아남아 퍼지는 걸 보면 그 생명력이 불가사이 하기까지 하다. 두릅나무는 식물 분류학상 인삼, 가시오갈피와 같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 관목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골고루 분포하며, 이른 봄철 산야에 자생하는 모든 두릅나무의 어린순을 채취 식용하고 있다.

두릅나무는 산채로써 뿐만 아니라 귀한 약용 식물이기도 한데, 두릅순이 피어나기 전에 뿌리 및 줄기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린 것은 예로부터 한방에서 총근피, 총목피라 하여 당뇨병 및 신장병의 묘약에 사용해온 생약재이며, 잎과 열매 등은 건위재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늦가을에 채취할 수 있는 열매로 담근 과실주는 민간요법에서 자양강장, 건위정장, 식욕증진 등에 효험이 높은 약술 제조에 사용되었던 귀중한 생약 재료이기도 하다. 한약재인 독활의 새순인 땅두릅과는 구별이 된다.

최근 국내외 연구결과에 의하면 두릅나무 뿌리에서 추출된 약리적 유효성분의 분리 및 작용에 관한 연구 결과 얻은 물질을 당뇨병 쥐에 경구 투여 결과 알록산(Alloxan)으로 유발시킨 흰쥐의 고혈당 억제 작용과 정상 쥐의 혈당강하작용을 나타냄으로써 당뇨병 치료 작용이 있음이 보고 되고 있다. 그 결과로 두릅나무를 원료로 당뇨병에 대한 신약 개발은 물론 한방의 생약재로 수요가 증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도 두릅나무 뿌리의 추출물이 지질과산화 억제효과에 강한 활성을 나타내어 위 손상 및 위궤양에 대한 억제작용이 있었으며, 그밖에 여러 유효성분이 밝혀졌다.

두릅은 이른 봄 피어난 어린순으로 다른 산채류에는 없는 특유의 향과 쌉쌀한 맛, 통통하게 살찐 육질과 같은 질감 등으로 조화를 이룬 우수한 식미를 지닌 고급 산채인데 특히 비타민 A가 풍부하여 콩나물의 6배, 오이, 고구마의 2배가 들어 있으며, 민간에서는 충치에 좋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식욕증진, 감기, 이뇨, 신경통, 두통, 류머티즘 등에 쓰이며, 독특한 향기와 쓴맛이 식욕을 증진시킨다. 단백질과 당질이 많이 들어 있으며 비타민 C와 B1외에 칼슘, 칼륨, 디아스타제, 타닌산등이 조금 들어 있다.

약효가 있는 것은 뿌리줄기 부분으로 말려서 생약 재료로 쓰기도 한다. 발한, 보온, 이뇨작용이 있으며 감기 초기나 통풍에는 줄기를 갈아서 즙을 마시면 효과적이다. 두릅즙을 계속 마시면 두통, 신경통, 류머티즘 등에 도움이 되며 강장제의 역할도 한다. 그리고 봄에 나오는 새순을 잘라 나물이나 회로 먹으면 두릅의 독특한 향기와 쓴맛이 식욕을 증진시켜 준다. 잎사귀까지 가시가 촘촘한 이 두릅나무 또한 연구 개발하여 감귤 대체 작목으로 좋지 않을까?

△ 넙거리오름에서 만난 새우난초와 뱀

삼나무가 잡목에 뒤섞여 오름을 온통 뒤덮고 있었는데, 사이사이 햇볕을 받은 잡목은 초록색 잎이 완연하다. 두릅나무는 많지만 벌써 싹은 모두 따 가버린 상태다. 일행들은 길섶에 솟아오른 고사리를 꺾노라 야단들이다. 길가에서 보는 제비꽃 색이 신비하기까지 하다. 남원읍 한남리에 자리한 표고 436.6m, 비고 102m, 둘레 1,874m의 이 오름은 멀리서만 그 윤곽이 뚜렷하게 보일뿐 실제 그 오름에 오르면서는 숲에 가려 도무지 그 윤곽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꼭 우리네 인생살이 같다.

숲으로 진입하면서부터 나도은조롱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희귀식물인 ‘나도은조롱’은 박주과리과에 속하는 상록성 덩굴식물로 7~8월에 황백색꽃이 피는데, 이 부근 거린악이나 이곳 넙거리, 사려니오름에서 자주 목격된다. 이 오름에서 작은 개체도 여러 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군락지임이 틀림없다. 구체적인 학술 조사가 요구된다. 나타날 때마다 ‘나도은조롱!’ ‘나도은조롱!’ 하면서 회원들의 귀에 익숙하게 각인되도록 했다. 문헌에 서귀포 섶섬과 전남 거문도에서만 자란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지금까지 자생지가 확인된 적이 없어 식물학계가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새우난초, 벌써 노란 꽃이 피기 시작한 금새우난초와 아직 꽃봉오리만 맺혀 있는 그냥 새우난초가 여기저기 보인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희랍어로 ‘아름답다’와 ‘꽃’의 합성어로 그 이름을 지었을까? 높이 50cm의 다년생 초본으로 남부지방 산지 숲 속 그늘에서 자생하는 이 새우난초는 자주색, 흰색, 담자색이 섞여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10여개의 꽃이 15cm정도로 달라는데, 이따금씩 환상적인 빛을 띤 변이종이 나타난다. 다음 주말(20~21일)에는 전시회가 열린다는데 반드시 가볼 생각이다.

소등 같은 등성이를 타고 억새와 청미래덩굴이 우거진 곳을 따라 동쪽으로 정상을 찾아간다. 시야를 가리는 것은 역시 삼나무다. 곳곳에 사스레피나무, 동백나무, 참식나무, 꾸지뽕나무도 섞였다. 이쪽 등성이에서면 저쪽이 높아 보이고, 저쪽 등성이에 서면 이쪽이 높아 보이고, 삼나무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데다 삼각점은 찾을 수 없고, 정상이다 싶은 곳 나무가 없는 데를 찾아 앉아서 잠시 쉰다. 나무 너머로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물오름, 미악산, 각시바위, 고근산까지 늘어서 있다. 지귀도와 섶섬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빽빽이 우거진 삼나무 숲을 따라 굼부리로 내려갔다. 삼나무 사이 조금이라도 하늘이 보이는 곳은 가시덩굴이 우거져 가는 길을 막는다. 앞장서서 내려가다 잠시 새우난초를 보고 있는데, ‘뱀이다!’ 하는 외침과 함께 일행이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진다. 겨울잠에서 깬지 오래되었는지 날래게 사라져버린다. 이놈들도 옛날에는 자주 만났는데, 요즘은 생태계가 파괴돼서 잊을 만하면 이따금씩 나타나곤 한다. 나오다 보니 들어갔던 길이다. 두 오름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가다가 왼쪽 삼나무를 벌채하며 만든 길로 사려니오름으로 향한다.

▲ 사려니오름 정상의 바위들의 행렬

이곳 삼나무 숲은 곳곳에 벌채를 하기 위해 가로 세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늘지고 기름진 땅이어서 그런지 나무가 잘 자랐다. 원래 있었던 나무숲은 계곡을 따라 늘어섰는데, 그 아래로 꽃을 싱그럽게 품은 천남성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계곡과 이어지는 곳에 이르렀을 때, 노랑괴불주머니 무리가 보인다. 자주괴불주머니는 흔한데 노랑괴불주머니는 드문 편이다. 아직 꽃을 피우진 않았지만 노란빛이 선명한 채로 꽃봉오리가 송글송글 맺혀 있다. 그 주위로는 현호색과 함께 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현호색은 대개 습기가 있는 산 속에서 높이 20센티미터 정도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이른 봄 다른 꽃보다 앞서서 피고 일찍 시들어 버리는 현호색은 꽃의 모양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양귀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길며 세 갈래씩 두 번 갈라지며, 잎의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분백색을 띤다. 3~5월에 연한 붉은 자주색의 꽃이 피는데, 줄기 끝에 대여섯 송이가 총상으로 달린다. 꽃잎은 4장이고 꽃은 한쪽으로 넓게 퍼지며 거(距)의 끝이 약간 밑으로 굽는다.

이 풀은 작고 일찍 피어 사람의 관심을 그리 끌지 못하지만 중요 한약재로 쓰여 왔는데, 특히 부인혈(婦人血)을 원활하게 하는 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양귀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현호색은 모르핀에 견줄 정도로 강력한 진통 작용이 있어 현대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약재다. 우리나라의 현호색은 중국의 원호(元胡)와는 다른 식물이지만 임상에서는 같은 용도로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배하지는 않으나 과거 보리농사 수확 뒤에 보리밭에 자라던 현호색을 수집하여 약재로 사용한다.

조그만 계곡을 지나는데 조록나무와 동백나무가 섞여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계곡 옆으로 하여 난 길을 가는데, 혼효림이 나타난다. 주로 참식나무와 구실잣밤나무, 참꽃나무, 때죽나무 등이 콩짜개덩굴을 가득 매달고 늘어서 있다. 정상으로 가면서 엄청나게 크고 오래된 구실잣밤나무를 만났다. 특히 이 지역의 오름은 정상에 커다란 암석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데 지각 변동 때 지표에 나와 있던 것들이 화산에 의해 이 꼭대기까지 올려진 것과 타지 않은 용암덩어리가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려니오름은 ‘사랭이오름’으로도 불리며, 한자로는 사련이악(四連伊握)이라고 음을 빌려 표기된 것이 보인다. 등어리에 뿔들을 매단 스테고사우어 종류의 공룡 등허리랄까 삼나무로 가리워졌지만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방불케 하는 오름이다. 이런 오름을 오를 때는 능선 남쪽 보다는 능선 북쪽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따뜻하고 햇빛이 비치는 곳일수록 가시넝쿨이 많고 그늘진 곳은 높고 바람이 많아 작은 나무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길을 뚫기가 수월하다. 음양의 이치랄까, 인생길과도 비유된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굴도 형성되었고 거대한 암석의 빚어내는 기괴한 모양과 돌 속에 박힌 나무뿌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며 즐겼다.

숲이기 때문에 여기가 정상인가 하고 올라보면 저 쪽에 더 높은 바위가 있고, 그러기를 몇 차례, 드디어 진달래가 수 놓아진 정상에 올라서서 고개를 늘이고 사방을 조망한다. 건너 편에 몇 번 오른 적이 있는 거린오름을 확인하고 나서 자리를 보고 앉아 가져온 음식들을 내놓고 입가심을 한다. 정상에 앉았지만 표고 523m, 비고 98m, 둘레 2,154m 되는 오름의 실체를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우리는 마치 신선인 양 우리만의 시간을 즐기며 속세에서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나누고 돌아왔다. 남원읍에 온 김에 공천포에 가서 제주 특미 해삼 물회를 즐기고, 오는 길에 거기서 합류한 이창현, 김영임 교수 부부와 함께 오름(붉은오름)을 하나 더 오르게 되었다. <2002. 4. 14.>

△ 동반자 : 김세엽 고길홍 강부언 구웅서 김정림 김봉선 변신규 우태헌 유인심 김숙희 김동한 이창현 김영임(13명)

<사진> 위는 현호색이고, 아래는 금새우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