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아 솟아라, 섬아 솟아라
오늘날 우리나라의 보물단지이며 ‘환상의 섬’ 제주도는 언제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생각해 보면 너무도 궁금하고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구 혹성 46억 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수십억에서 수억 년 전인 선캠브리아에서 고생대에 이르는 사이에 한국 본토인 한반도에는 벌써 지질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제주도는 불과 150만 년 전만 해도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었다.
신생대 제3기인 수천 만 년에서 수백 만 년 전, 즉 마이오세에서 플라이오세에 이르는 가운데, 가까운 일본 남서부 지방의 큐슈과 서남 혼슈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던 화산 활동에 힘입어, 봄을 맞아 설레는 소녀의 젖가슴처럼 바다 속에서 남몰래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지구상에 인류의 조상이 출현하던 시기인 약 164만 년 전을 전후해 빙하성 해수면 변동에 힘입어 드디어 서귀포 쪽에서부터 서서히 바다 위로 솟아오른다.
그리고 이곳에도 홍적세(洪績世)가 찾아든다. 홍적세는 세계적으로 기후가 한랭한 시기이며, 고위도 지방이나 높은 산악지역에는 빙하가 발달되어 빙하시대라고도 한다. 이 시기에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바다 속에 있던 서귀포층과 성산포층, 안덕면 화순리층, 성산읍 신양리층 등의 퇴적암층이 드러나면서 바닷물이 침식 작용을 거듭해 오늘날 제주도의 윤곽이 이루어졌다. 이 사이에 얼음이 녹았다 다시 어는 간빙기(間氷期)가 서너 차례 있어서 바다 위로 솟았다 가라앉기를 계속했을 것이다.
▲ 꿈틀꿈틀, 조용히 시작 되는 화산 활동
이제까지 서서히 솟아오르던 지각에 균열이 생겨 그 속으로 몰려든 마그마가 지층을 뚫고 지상으로 솟구쳐 나온다. 드디어 화산 폭발이 시작된 것이다. 크게 다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화산 활동을 통하여 오늘날 제주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지금 해수면 아래에 분포되어 있는 현무암류로부터 산방산의 조면암까지가 제1분출기에 솟아난 것들이다. 이것들을 측정해본 결과 94∼120만년쯤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의 제주도의 모습은 지금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엉성했으리라.
퇴적암류 상부에서부터 적어도 10여 회 이상의 화산 분출에 의하여 바닷가에 형성된 현무암은 서부의 대정읍과 고산리 일대, 동부의 표선리 일대에 널리 분포되며 거의 평평한 저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현무암류의 분출 시기는 측정 결과 60만 년 전 중기 풀라이오토세의 초기에 행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분출기 마지막으로 나온 조면암류는 서귀포와 중문 일대에 분포되어 있으며, 서귀포 동부의 정방폭포 주변에서도 적어도 2회의 분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제주도 지하수를 담는 현무암이 분출하고 만장굴도 형성되었는데, 지금과 비슷한 해안선을 이루게 되었다.
플라이스토세 중기, 약 50만 년 전에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일어난 화산 활동은 제주도를 비로소 완벽한 대지상의 섬으로 만들었으며, 이들 화산암류는 제주도에서 가장 넓은 지표 지질을 구성하고 있다. 제4기 동안에 그리고 마지막 빙하기 최성기였던 2만년에서 1만5천년 전까지 지구는 빙하의 역사였으며, 또한 지구상에 현대인이 출현하던 시기이다.
▲ 여기저기서 시뻘건 불덩어리를 쏟아내는 화산 폭발
제3기에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화산 폭발이 진행되어 남북해안의 저지대와 중산간지대의 경사가 아주 완만한 한라산 산록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제4기에는 시흥리 현무암, 성판악 현무암 등이 해안까지 흘러내렸고, 이어 한라산 정상부 주변에 분포하는 한라산 현무암이 분출한 뒤, 한라산 조면암 질안산암의 분출로 해발 고도 1,750~1,950m에 한라산 산정 서반부에 남아 있는 종상화산체가 형성되었다.
이 제4기인 약 10만 년 전부터 2만5천년 전에 이르는 시기의 제주도는 사방 곳곳에서 매일 밤 솟아오르는 시뻘건 불덩어리로 꽤 볼만 하였을 것이다. 마치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처럼 여기저기서 화산 폭발 소리와 솟아오르는 불덩이로 정신없었을 테니까.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라산의 화구는 그 두께 때문에 압력을 받아 점점 메워져 가고, 그곳 주화산구로 나와야 할 마그마가 땅거죽이 약한 곳곳으로 팍팍 뚫고 나오게 되어 기생화산이 생겨나는데, 그 때 분출된 화산재가 쌓인 것이 오늘날의 오름이 된 것이다.
마지막 빙하기에 제주도와 한반도 그리고 동중국해와 황해는 생물과 인간의 이동이 가능한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당시 해안선은 제주도 동쪽에 위치하여 일본과의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대한해협을 통해서 한반도와 일본이 이어져 우리나라의 육상 동물들이 일본으로 이주 전파되었으며, 이러한 빙하의 소장에 의한 해수면 변동으로 만들어진 환경은 제4기를 통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을 지도 모른다.
▲ 불과 천년 전에도 화산이 폭발했던 기록이
동국여지승람 제38권에 의하면, 고려 목종 5년(1002) 6월에 바다에서 화산이 분출되어 용암이 4개 분출구에서 5일 동안 솟아 나와 흘러넘치다 그쳤는데, 유출된 용암은 기와돌과 같았다는 기록과 5년 뒤(1007년)에 또 서산(瑞山)에서 화산이 분출되어 고려 조정에서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를 보내어 조사한 결과 땅이 울리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으며, 산이 움직이고 운무와 같은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여 사방이 어두워 6일간이나 계속되다 걷힌 후에 보니 산 높이가 백여 장이나 되고 주위가 40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과 천년 전에도 오름에서 화산 폭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빙하기가 쇠퇴하여 수심이 지금의 수준에 도달했을 무렵인 5∼6천년 전 지금의 해안선과 비슷하게 되었을 때부터 제주도에 패총이 이루어진다. 이로 미루어 해안선 가까이 얕은 바다에 널려져 있었을 조개들과 육상의 수렵 활동에 의한 짐승이 한반도로부터 옮겨온 이들의 주 식량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가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때인 것이다.
오름은 그 솟아날 때의 힘의 세기와 마그마의 분출량으로 모양이 정해진다. 또 솟아오를 때의 지형이나 기후도 그 모양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368개의 오름은 똑 같이 생긴 것이 하나도 없다. 비와 눈이 내리면서 화산재가 식어져 표면이 부식되고 나서 식물이 자리를 잡게 된다. 제주도가 오름 하나 없이 밋밋한 들판에다 가운데 휑하니 한라산만 솟아있다고 생각해 보면 영 재미없는 섬이 되었으리라.
<사진> 위는 천년 전에 솟아오른 비양도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고, 아래는 한라산의 노을 모습을 담은 것으로, 모두 사진작가 서현열의 작품 '내가 사랑하는 제주'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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