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가시오름과 돈두미, 그리고 거린악

김창집 2002. 12. 17. 10:13
△일과리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시원히 트인 바다와 왼쪽 한라산 밑으로 드러나는 오름의 곡선을 즐기며서부산업도로를 달린다. 어제 비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잔설(殘雪)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중산간에 위치해 비교적 높은 녹고뫼, 발이메, 괴오름엔 머리가 허옇고, 길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새별오름, 이달봉, 정물오름, 당오름, 도너리오름엔 골짜기만 희끗희끗하다.

추사적거지에 도착하여 강 화백의 차를 기다리며 앞에 있는 돌하르방과 대정현성, 삼의사비를 돌아보았다. 성문 옆 어깨가 문드러진 돌하르방이 가엾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몸체도 가슴 부분으로 동강난 것을 시멘트로 붙여 놓았다. 그래 부상으로 제 구실을 못할까봐 홀로 성안에다 세워놓은 것일까? 이쯤 되면 우리들의 문화재에 대한 수준을 알만하다.

드디어 강 화백의 차가 도착했다. 김밥을 새로 싸가지고 오다보니 늦었다는 것이다. 장 선생이 모처럼 친정 동네에 왔다고 전화하기에 바쁘다. 차를 몰고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모슬봉 옆을 지나간다. 언제 저곳도 올라야 할 텐데, 군사 시설이 정상에 있기 때문에 기약이 없다. 일과리를 지나는데 이곳의 지명을 속칭 '날래'라고 하는 이유를 아느냐는 투로 변 총무가 질문한다. '날 일 자(日)'의 '날'과 '실과 과 자(果)'의 '과'에서 온 게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오창명 박사는 '일과(日果)'의 '日(날 일)'의 훈가자 '날'에다가 '果(실과 과)'의 '과'에 부음 'ㅣ'가 붙은 '괘'의 제주방언 '웨'의 음가자 표기로 풀이한다.

△가시오름에서의 술과 예술론

오름 중턱에 차를 세우고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오른쪽으로도 길이 나 있었는데 김종철 선생의 <오름 나그네>에는 말을 몰고 다녔다 해서 '말질'이라 한다고 되어 있다. 사면(斜面)에는 보리수나무가 듬성듬성 보이는데, 따 먹어보니 말라서 그런지 당도가 꽤 높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상수원 급수 탱크가 묻혀 있고 그것을 보호하는 보안등 시설이 보인다. 숲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볼래가 많다. 지금은 아무도 베어가지 않은 띠도 제법 많이 보인다. 7부 능선쯤 가서 모두들 멈췄다. 가시가 앞을 막아 진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원래 이 오름에 '가시오름', 또는 '밤남오름'이란 이름이 붙은 건, 과거 이 오름에 '가시나무'라고 부르는 너도밤나무과의 낙엽교목인 '물참나무'가 많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라 했으나 문제의 그 '물참나무'는 한 그루도 안 보이고, 그냥 가시가 많은 찔레덤불과 보리수나무, 그리고 꾸지뽕나무가 뒤엉켜 있다. 전정가위를 꺼내들고 이리저리 살펴가며 앞장서 길을 뚫고 올라갔다. 가시밭길이란 이런 곳을 두고 이름이리라. 한동안 사람들과 마소의 출입이 없었나 보다.

정상엔 소나무가 더러 보였다. 소나무 사이를 기어가는데 깊은 굴이 패여 있다. 일제 잔재의 소행이겠지 생각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송이가 흘러내려 막혀버렸다. 장 선생의 말에 의하면 어렸을 적에는 이 굴이 바다까지 뚫려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깊었다 한다. 그곳을 지나니 평지가 나타났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곳은 원래 평지가 아니었는데, 군과 관련된 시설을 하기 위해 포크레인 공사를 하다 만 곳이라 한다. 평지에는 띠가 깔려 있어 앉을 곳은 있는데 전망이 없어 답답해 보이고, 남쪽으로 돌아가 트인 곳을 찾아 쉴 자리를 만들었다.

앞에 바다가 보이고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늘 산방산 쪽에서만 바라봐서 그런지 이건 방향이 반대다. 왼쪽에 가파도, 오른쪽에 마라도가 있는 것이다. 바다는 잔잔하여 파도의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한 점도 없이 안온하고 평화롭다. 누구의 입에선가 생전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106.5m의 오름에서 왼쪽으로 의젓하게 솟아 있는 180m의 모슬봉을 부러운 듯 올려다보는데 옆에서 맥주를 내민다. 한 바탕 땀을 흘린 뒤여서 그런지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어제 마시다 다 못 먹고 가져 왔다는 구 박사님의 강화도 인삼주를 꺼내 굽을 보았고, 고 고문이 몽골 가서 기념으로 사온 마호이주도 땄다. 배추와 자리젓, 그리고 새록새록 맛이 나는 송 선생의 정성을 안주 삼아 인정이 넘치는 분위기를 즐겼다. 특히 갯나물 김치에 홀딱 반한 강 화백이 송 선생님의 요리법을 배우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거리낌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고 고문의 사진 강좌가 곁들여지고, 김 원장의 인생관과 예술 철학이 쏟아진다. 자신은 직업과 예술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와 달리 아마추어로서는 참신성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이야기가 공감이 갔다. 11시 50분. 서쪽으로 곧바로 내려오는데 겨울 소나기가 지나간다. 별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서둘러 차에 오른다.

△돈두미오름을 지나 방어가 있는 점심

다음 오를 곳은 영락리에 있는 돈두미이다. 일주도로를 따라 5분이나 달렸을까, 한길 왼편 바닷가 쪽에 나지막하게 보이는 소나무 언덕이 바로 돈두미오름이다. 표고 42m의 오름이어서 그런지 군데군데 밭을 조성해 놓았다. 우거진 소나무 사이에는 무덤들이 널려 있었는데 꽤 치장한 것으로 보아 지맥은 좋은 곳으로 생각되었다. 광주 김씨 묘 같은 것은 오래기도 하였고 무덤의 크기가 엄청나다. 동자석도 닳고닳았지만 나름대로 품위를 지키고 있다. 땅이 질고 밭이 이어져 있어 바닷가 언덕까지 가지 못하고 돌아섰다. 비석에는 돈두악(敦頭岳, 豚頭岳)으로 새겨져 있다.

밭 옆으로 경운기가 다니는 도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일부 밭은 도로에다 농사를 지어버려 신발에 진흙을 잔뜩 매달고 나와 억새 그루에 문질러 닦고, 모슬포 항으로 차를 달렸다. 오늘은 대정읍에 왔으니까 겨울에 이곳에서 많이 잡히는 방어를 한 마리 사먹어 주는 것도 이곳 어민들을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두 중간쯤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부두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달려나와 반갑게 맞는다.

수족관에는 그리 크지 않은 방어 몇 마리만이 무료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요즘 눈이 많이 온 뒤로는 많이 잡히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2.5kg 정도 되는 것을 하나 골라 식사까지 주문했다. 요즘 비싸서 회 맛본지도 오랜데 오늘은 실컷 먹게 되나 보다. 오름 오르면서 즐거운 일의 하나는 때 맞춰 그 지역의 향토 음식을 즐기는 일이다. 사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오름 식구들이 모두 좋아한다. 특히, 미식가로 알려진 김 원장님의 음식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먹으면 더 맛이 나는 것 같다.

△신영물의 오좌수행적비와 마지막으로 들른 거린악

식사가 끝나고 나오다가 속칭 '신영물'을 찾았다. 바닷가에서 솟아오르는 이 용천수는 예로부터 물맛 좋기로 유명하다는데, 지금도 수량이 풍부했고 빨래터도 꽤나 넓었다. 물이 흘러나오는 곳에는 '오좌수행적비(五座首行蹟碑)'가 버티고 서 있다. 사연인 즉, 조선 고종23년(1886)에 왜놈들이 몰려와 모슬포 앞바다의 풍부한 해산물을 마구 채취하다가 물이 떨어지면 이 물에 와서 물을 마구 퍼가는가 하면, 아낙네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이것을 보다 못한 이 고장 출신의 피끓은 다섯 젊은이들이 이들과 맞서다가 왜놈들의 칼 아래 무참히 살해되었다. 이 사실을 안 조정에서는 이 젊은이들에게 좌수(座首) 벼슬을 추증(追贈)하였기, 이를 기려 비를 세운 것이다.

신영물을 나서니 시계는 벌써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날씨도 흐리고 시간도 너무 늦어 제주시로 넘어 가는 중에 동광에 있는 거린악이나 들르자는 제안이 있어 서부산업도로로 달렸다. 동광검문소 조금 못 미쳐 왼쪽으로 나지막이 누워 있는 두 개로 갈라진 오름이 거린악이다. 길에 차를 세우고 곧바로 오름엘 오른다. 군데군데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표고가 298m이나 비고가 68m밖에 안 되어서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서 보니 북쪽으로 또 한 갈래의 오름이 있었는데, 나뉜 부분이 좀 애매하기는 하나 분명히 하나의 화산체로 보인다. 그러나, 산의 모습과 번지, 이름도 다르다. 지금 우리가 오른 곳은 거린오름으로 동광리 산94번지, 북쪽으로 보이는 것은 북오름으로 동광리 산93번지다. 면적은 작지만 북오름이 314m로 16m 더 높다. 거린악은 또 하나 있다. 오름 식구들이 여러 차례의 등정 끝에 성공한 남원읍 한남리 깊숙이 앉아 있는 산 높고 물 맑은, 작년 초여름 복분자의 추억이 깃들여 있는 오름….

비를 머금은 안개가 일어나 사방의 조망이 쉽지 않다. 서쪽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 보았다. 무덤이 하나 있는데 비문에는 마보악이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을 새겼다. 굴헝을 지나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군데군데 드러난 화산재나 화산탄으로 보아 이 오름도 다른 오름에 비해 나이가 덜한 것으로 보인다. 멀리 서쪽에 보이는 나무가 제법 많은 넙게오름 정상 이동 전화 중계탑이 볼상 사납다. 북쪽으로 보이는 남송이오름과 도너리오름에게 눈짓으로 다음을 약속하며 하산했다. 산행이 수월해서 그랬을까, 오늘은 유난히 즐겁고 아기자기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