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목동 포구에서 본 제지기오름)
△ 겨울비 속의 연가(戀歌)
이틀째 추적거리는 겨울비에도 불구하고
오름에 지독히 미쳐버린 여섯 사람이 있었다.
이름하여 우리 오름오름 모임의 회장, 부회장, 총무와 고 고문
그리고 구 박사와 김 선생.
2년 전이던가?
추적거리는 빗속을 뚫고 출발하여
개오리오름(견월악)에서 맞이했던 그 눈발…
그 눈 속에서 몸서리칠 정도로 황홀했던 그 추억…
내심으로는 그런 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고
10m 앞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운무(雲霧)와 비가
현실을 일깨워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보다도 더 지독한 사람들이 있었다.
견월악 조금 지난 곳 옛 도로에 4∼5대 승용차를 세워놓고
물장오리로 가려는지 완전무장하고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위험할 텐데 하면서도 말릴 개재가 못되어
우리만 교래리 쪽으로 빠져 남조로에 들어섰을 때 비로소
시야가 드러난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지만…….
적막한 가슴
물기 빠진 몸
겨울산을 어찌 눈치챘을까
외로움
큰 소리로 버석일까봐
분별없는 사람
미리 내색할까봐
이틀씩이나
비를 뿌려 안부 묻더니
오늘은 진종일
바람 불어 길을 틔운다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그냥
조금 추우면 추운 대로
가랑잎 한 장씩 나누어 덮고
풍경 소리나 얻어듣다가
환한 세상 내려앉으면
법당 좋고
부처까지 영험한
이왕이면
가슴에 꽉 찰
절 한 채씩 찾아서
작정 없이 헤맨들
발부리부터
물오르지 않으랴
--- 이문지 『겨울비』전문
('행운'이란 꽃말을 가진 자금우 열매)
▲ 섶섬의 파수꾼, 제지기오름
남조로를 달리다 말고 내려 의논했다.
서북풍의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서귀포 쪽
공원으로 꾸며져 있는 제지기오름엘 가보는 거다.
거기 가면 겨울 바다와 섬과 상록수가 우릴 반겨 주겠지.
서귀포시 보목동 산1번지.
표고 94.8m 비고 85m 둘레 1,012m 넓이 77,023㎡ 밑지름 342m.
마을 포구 동편에 자리잡은
포구 앞 바다 1km 지점에 위치한 섶섬(숲섬)과 마주보고 있는 오름.
조면암질 화산암과 일부 화산쇄설성 퇴적층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인 모양은 용암원정구(lava dome)의 형태.
북사면은 완만한 등성이가 뻗어 내리면서
여러 갈래로 얕게 패어 있고,
남사면은 매우 가파른 벼랑을 이루며 중턱에 바위굴과 절터가 있는.
'용암원정구'는 화산 활동으로 분출한 용암이
넓게 흐르지 못하고 화구상이나 주위에서 굳어져서 생긴 용암 언덕인데
오름 곳곳에 해송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울퉁불퉁 바위들이 노출되어 있다.
옛날 절이 있었다 해서 절오름,
일명 제지기오름 또는 제제기오름이라고도 하는데
제지기(제제기)가 무슨 뜻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절과 절을 지키는 절지기가 살았다기로 붙은 이름은 아닐는지?
남쪽 따뜻한 곳에 위치해 있어
지금 잎과 줄기가 시들어야 할 들풀들이
싱싱한 채로 그냥 있다 계절을 잊고.
하늘타리, 마, 고사리류, 모시풀, 고들빼기, 여뀌…….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상록수들
사스레피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 보리밥나무, 보리장나무
돈나무, 까마귀쪽나무, 왕모람나무, 식나무, 녹나무
나무에 오른 줄사철, 마삭줄, 일엽초, 인동초, 남오미자…….
아직도 잎을 다 떨구지 못한 낙엽수들
예덕나무, 누룩나무, 천선과나무, 팽나무, 찔레나무
섬쥐똥나무, 누리장나무, 말오줌떼, 국수나무
나무에 오른 청미래덩굴, 노박덩굴, 으름덩굴, 칡…….
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그늘의 식물군들
석위, 장딸기, 백량금, 자금우, 털머위, 팔손이나무.
아직 들국화가 피어 있는데, 벌써 제비꽃이 피기 시작하고
쑥과 망초, 개불알풀꽃은 이제 막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덜 시든 다양한 식물군이 조그만 몸집에 가득 차 있다.
계요등, 댕댕이덩굴, 도깨비바늘, 쇠무릎풀, 파리풀
산박하, 괭이밥, 수크렁, 억새, 띠, 원추리
솔새, 산수국, 사위질빵, 방동사니, 조개풀…….
(섶섬 남동쪽 낚시 포인트 '자리여')
▲ 겨울 바다 그리고 섬을 바라보며
밀레니엄의 일출을 보게 하기 위해 마을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공원으로 만들었다는 제지기오름 정상엔 소나무가 많이 뽑혔고
동서 양쪽에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동쪽으로 환히 트인 겨울 바다를 바라본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海風)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혼령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김남조 『겨울 바다』전문
멀리 지귀도가 누운 채로 인사를 한다.
가파도처럼 구릉 없이 평평한 이 섬은 초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동서의 길이가 남북의 길이보다 약간 긴 타원형을 이루며
암석은 주로 현무암으로 구성되었다.
지귀도는 수심이 깊고 낮은 지형이 엇갈려
다금바리, 벵에돔 같은 많은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일설에 모 종교 단체에서 사들였다는 이 섬은
남원읍 공천포에서 5.3km, 낚싯배로 30분 정도 걸린다.

(안개로 가려진 섶섬의 모습)
▲ '용이 되기를 소원하던 뱀'의 전설을 안고 있는 섶섬(森島)
보목 포구에서 남서쪽으로 3km쯤 떨어져 있는 섶섬은
섬 자체가 하나의 오름이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라산이나 여느 오름들보다 훨씬 먼저 솟아나
180여종의 각종 희귀 식물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오직 이 섬에서만 볼 수 있다는
일명 넓고사리인 파초일엽은 천연기념물 제18호.
돌돔, 참돔, 다금바리, 감성돔, 뱅어돔 등이 잘 낚이며
산호초가 아름다워 수쿠버 다이빙의 최적지로 알려진 곳
정상에 올랐던 감격을 되살리며 전설을 생각한다.
옛날하고도 아주 먼 옛날, 섶섬에는 큰 뱀이 살고 있었데.
그 뱀은 용이 되려다 못된 뱀이었데.
그 뱀은 언제고 용이 되겠다는 바람을 갖고 살았데.
뱀은 매달 정월 초하룻날과 여드렛날이면 용이 되기 위해
용왕에게 끈질기게 기도를 드리기 3년,
어느 날 용왕이 기도에 감응하여 뱀에게 말하였데.
"네 정성이 기특하여 내가 이제 너를 용이 되도록 해주겠다.”
뱀은 기도가 효험이 본다고 생각하며 기뻐 어쩔 줄을 몰랐데.
"저기, 섶섬과 지귀도 사이에 구슬을 숨기어 두었다. 그래 네가
그것을 찾아내면 바로 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용왕은 뱀에게 용이 되는 비결을 은밀히 알려주었데.
그날부터 뱀은 용왕의 말대로 숨겨둔 구슬을 찾으려고
두 섬 사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데.
뱀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백년 동안이나 그 구슬을 찾기 위하여 애를 쓰다가
구슬을 찾지도 못한 채 뱀은 죽고 말았데.
그 후부터 비가 내리려면 섶섬에 늘 짙은 안개가 끼곤 하였데.
그건 바로 죽은 뱀의 혼이 안개가 되어 서리는 것이래.
(아직도 제지기 오름에 피어 있는 들국화)
▲ 비를 맞으며 오른 가세오름(袈娑峰, 加時峰)
남제주군 표선면 토산리 산 2번지 일대
표고 200.5m 비고 101m 둘레 2,365m 넓이 373,099㎡ 밑지름 771m
아무리 기다려 봐도 비가 그칠 기세가 아니어서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오르는 곳이 풀밭으로 돼 있는
가세오름을 하나 더 오르기로 하였다.
남원 입구 새로 뽑은 길로 가다가 도로공사로 길이 막혀
겨우 16번 중산간도로를 찾아 표선으로 향한다.
"가시오름 강당장 집의 / 싀콜방애 새글러간다."
노동요 해녀 노래에 등장하는 강당장(康當長)의 욕심을 논하며.
인색하기로 이름 났던 부자 강당장이
황소 백 두를 부리고 싶은 욕심으로 박접했던 지관을 끌어들여
좋은 자리로 조상 무덤을 옮긴답시고
멸망지지(滅亡之地)로 이묘(移墓)하여 당대에 망했다는 고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으로 다가온다.
오름 북쪽을 지나는 월지동에서 세화리로 가는 도로에서
가시리로 빠지는 세거리를 지나 150m쯤 가서
목장으로 들어가는 철조망 문을 열고 들어가
무덤을 지난 곳에 차를 세우고는 비옷으로 무장하여 오른다.
두 봉우리가 남북으로 나뉘어 보는 위치마다 모양이 다르다.
세화리 쪽에서 보면 사다리 꼴 모양이고,
토산리 쪽에서는 영락없이 열여덟 처녀의 통통한 젖무덤이다.
지난봄엔 우리를 보고 감시원이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오늘은
능선 가운데 산불감시초소가 혼자서 비를 맞고 있다.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마치 가세(가위)처럼 생겼다는 데서
가세오름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는데는 동의할 수 없고,
무덤 자리가 가사장삼형(袈娑長衫刑)이란 풍수지리설에 의해
가사(袈娑)가 변해 가세오름이 되었다는 게 설득력이 있다.
풀은 다 말라버리고 가끔씩 쑥부쟁이와 물매화의 자취가 남아
오름 나그네들을 반겨 맞는다.
우리가 오르는 동쪽 사면을 제외하고는 소나무가 빽빽한데
그 사이에 이동통신기지국의 커다란 안테나가 부끄럽다.
비 때문에 안부에 있는 샘에는 가보지 못하고
북봉으로 올라 눈앞에 펼쳐진 오름들을 살핀 후
다시 멀리 있는 매오름을 바라보며 내려온다.
넓은 벌판은 거의 귤밭으로 조성되었는데,
반은 비닐 하우스로 한라봉 아니면 하우스 감귤이렸다.
다시 남쪽 봉우리를 향해 철조망을 넘고
소나무 아래로 가시넝쿨 우거진 거친 풀숲을 헤쳐 다다른 곳
정상임을 알리는 삼각점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다가선 오름 북망산(北邙山)과 토산봉,
결국 우리의 삶은 무덤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꼴이 아닌가?
[2002. 12. 7. 온종일 비]

(서쪽에서 바라본 가세오름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