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노로오름과 붉은오름(2001. 3. 25.)

김창집 2002. 12. 17. 11:16
△ 안개 속 요란스런 개구리의 사랑 노래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했기 때문에 좀 늦은 시각에 출발했다. 1100도로변에 무자비하게 세워 놓은 삼형제 큰오름의 중계탑 철골이 보기 싫어 2km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운다. 이 때 시각이 09시 30분. 배낭을 챙겨 숲으로 막 들어서는 순간, 화들짝 놀란 노루가 뛰어간다. 미안했다, 괜히 놀라게 해서…. 우리 15사람의 출현에 무척 당황한 듯 황급히 시야를 벗어난다. 우리가 가는 곳이 노로오름이고 보면 저들의 영역을 무단 침범한 셈이 아닌가. '노로'는 '노루(獐)'의 고어이자 제주말이다. 이쪽 드넓은 숲과 노로오름을 포함한 그 언저리가 워낙 넓게 펼쳐져 있어 노루가 서식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제주조릿대가 질펀하게 깔려 있다. 4∼50년 전만 해도 해발 8백 고지 이상에만 드문드문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얼마나 번식력이 강한지 이제 웬만한 오름을 다 점령해 간다. 어느 선까지 내려갈 지 걱정이다. 병충해도 없고 노루도 먹지 않아, 이게 시방 식물의 보고(寶庫) 한라산을 야금야금 잠식해가고 있다. 키가 작고 뿌리가 엉키기 때문에 조릿대 밑에는 다른 식물이 쉽게 발붙이지 못한다. 과거 흉년에는 조릿대에 보리알 같은 열매가 달려 구황(救荒, 먹을 것이 떨어져 굶을 때 구제해주는) 식물 노릇을 했다 하나, 요즘은 열매 달리는 것도 못 보고 아무짝에 쓸모 없다.
이곳은 20여 년 전까지 표고 밭이어서 아직도 길이 잘 남아 있다. 오소리가 무엇을 파먹었는지 곳곳에 흙을 헤쳐 놓았다. 겨우내 굶었던 배를 채우느라 봄이 되자마자 굴속에서 나왔을 터. 배설물도 보인다. 일순간 갑자기 안개가 숲으로 밀려든다. 오늘 아침 비로 황사를 깨끗이 씻어내려 대기가 맑았었는데, 이제 봄을 알리는 안개가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숲에서는 일제히 개구리들이 노래를 한다. 너무 많아 소란스러울 정도다. 표고 재배하며 나무를 담가놓기 위해 곳곳에 파놓은 못이 거의 허물어지는 단계인데도 이곳에 이렇게 많은 개구리들이 남아 있다니. 가까이 다가서자 발소리에 놀란 개구리들이 일제히 소리를 멈추고 재빨리 물 속으로 숨는다. 벌써 알을 많이 낳아 놓았다. 짝짓기를 하는 놈들을 방해한 것 같아 괜히 쑥스럽다.

▲ 안개 속에서 벌인 때 이른 밥 파티

안개는 가시(可視) 거리를 10m로 좁히고 우리를 한데 묶어놓는다. 산에서의 안개는 어떤 때는 바로 앞사람도 구분 못할 정도로 심하다. 그래서 산행할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앞사람과 거리를 좁힌 채로 계곡을 지난다. 여름이면 경치가 볼만하겠다. 커다란 진달래 나무에 봉오리가 터질 듯 부풀어 있다. 여기저기 표고용 참나무와 서어나무를 베어버린 자리에 쓸모 없이 삼나무를 심어 놓았다. 일본에서 건너온 삼나무는 이제 제주도 곳곳에 안 보이는 데가 없을 정도로 퍼져버린 것이다.
잠시 후 제법 넓은 잔디밭이 나왔다. 주변엔 아그배나무가 묵은 열매를 매단 채로 서서 군락(群落)을 이루었다. 하얗게 꽃이 피면 볼만하겠다. 재작년 여름 볼레오름 중턱에서 너무 고와 넋을 잃고 바라보던 아그배나무 꽃이 생각난다. 앞서가던 일행은 방향 감각을 잃었는지 지도와 컴퍼스를 꺼내 길을 찾는다. 이 곳을 다녀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길을 찾아 나섰으나 확실치가 못해서 거기서 안개가 걷힐 때까지 쉬기로 했다. 10시 반. 싸고 간 것을 내 놓는데, 약밥이 나오고 유부초밥이 나오고, 김밥까지 다 나온다. 어쩔 수 없이 때 이른 점심밥 파티를 벌일 수밖에.
우리 오름 회원들은 원래 점심을 싸지 않고 주변에 있는 시골 마을에 가서 싸고 푸짐한 향토 음식을 즐긴다. 산에서 취사를 금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도시락 싸는 수고를 덜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집에 제사가 있거나 혹은 어떤 연유로 해서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여러 회원들에게 베풀기 위해 싸온다. 회원들을 위해 일부러 장만해 오는 경우도 있다. 구 박사 사모님의 유부초밥과 가정과 김 선생의 약밥이 대표적인 예이다. 회원들이 하도 맛있게 먹는 걸 생각하며 열심히 만든다. 가끔은 담가 놓은 술도 등장한다. 산복숭아나 상동, 쑥, 송순, 오미자나 오가피 등 오름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직접 담근 것이다.

△ 족은노로오름 정상의 꽃 무덤

식사가 끝나자 누가 무슨 요술 부린 것처럼 안개가 걷히었다. 먼저 붉은오름에 오르려 계획했는데, 안개 때문에 안 보여 노로오름에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그래 먼저 노로오름에 들르고 나오는 길에 붉은오름에 오르기로 하고 앞장서 걸었다. 노로오름은 남북으로 길게 두 봉우리가 이어지면서 북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능선이 길게 뻗쳐 있는 오름이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노루가 한 마리 죽어 있다. 머리 부분은 고기가 모두 뜯긴 채 뼈만 남아 뒹굴고 있다. 털가죽과 다리가 썩은 상태로 보아 지난겨울에 죽은 게 틀림없는데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 일행들이 모두 궁금해했으나 알 길이 없다.
옛날 트럭이나 딸딸이(경운기 엔진 같은 것을 이용해 농사에 편하도록 만든 차)가 다녔을 법한 길이 누워 있는 산을 따라 나란히 뻗쳤다. 그 길옆에는 대부분 삼나무를 심어놓아 그 때문인지 물이 고여 진흙탕이 되었다. 그런데 이 노로오름 기슭에는 오래된 무덤이 꽤 있는 편이다. 지금이야 차를 타고 등산하듯 쉽게 올라와서 벌초하고 가면 되지만 옛날에는 어떻게 했을까. 두 번째 나타난 세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길로 접어들어 조금 가다 다시 왼쪽으로 뚫린 길을 찾아 비스듬히 오르니, 얼마 안 되어 족은 노로오름 정상이 나타났다.
전파를 중계하는 탑을 세웠던 시멘트 네 기둥이 흉측하게 남아 있다. 산에 중계탑을 세우는 것이 조금 미안하니까 넓적한 중계판에다 '자연보호'라 페인트로 써넣는다. 너무나 역설적인 이런 탑은 지금도 몇 개의 오름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남쪽으로 그 시설을 보호하던 철조망이 남아 있어 왼쪽으로 돌아서야 정상에 이를 수 있었다. 11시 반.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자리에는 김씨 할머니 무덤이 있었다. 더 이상 잔디가 자라지 않아서 그랬는지 벌초한 흔적이 없다. 그래도 곱게 조성된 무덤의 봉분(封墳)에는 잔디 키와 나란히 철쭉이 곳곳에 박혀 있다. 그 꽃봉오리가 촘촘한 것으로 보아 이 꽃이 피 면 예쁜 꽃 무덤이 되리라. 표석(標石)에는 '노루 장(獐)'의 뜻을 빈 한자어로 오름 이름을 장악(獐岳)으로 표기하였다.
무덤가에 앉아 주위를 살피니 작고 옅은 보랏빛 제비꽃이 눈에 띈다. 서너 송이씩 짝을 이루면서 여러 곳에 피어났다. 여기는 해발 1,029m. 이곳 정상에서 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봄이 낮은 곳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다시 안개가 끼어 큰 노로오름 정상을 바라볼 수 없다. 큰 오름은 여기보다 조금 높은 해발 1,070m 되는 곳이다. 몇 년 전 맑은 봄날 그 곳에 올랐을 때, 사방에 펼쳐진 오름과 바다에 떠 있는 배가 하도 인상적이어서 '산엔 오름 바다엔 배'라는 글을 썼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하늘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주어진 여건에 따르기로 했다. 무리해서 그곳에 오른들 사방이 안 보이면 그만이지 않는가. 오늘 이곳에 오른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자며 내려온다. 12시 5분.

▲ 김통정 장군 최후의 격전지 붉은오름

우리가 내려와 붉은오름과 노루오름,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세 갈래 길에 이르렀을 때 또 한 번 기적이 일어났다. 구름과 안개 때문에 안 보이던 오름들이 또렷이 드러났다. 오늘 계획된 오름을 오를 수 있다고 기뻐하며 일행은 다시 붉은 오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13시 25분. 얼마 안 가 표고밭 관리사 터에 도착했다. 그곳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거의 폐허로 변해 있었다. 다시 삼나무 숲 제주조릿대를 헤치며 눈앞에 거대하게 솟은 붉은오름을 향해 곧바로 나아간다.
전해 오는 얘기에 의하면, 1273년(고려 원종 14년) 2월 조정에서 보낸 김방경과 원나라 장수들로 구성된 여몽연합군은 김통정이 버티고 있는 항파두리 토성을 공격한다. 그 세력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 두 달이 못되어 그만 항파두리 토성은 함락되고 김통정은 남아있는 70명의 부하를 이끌고 후퇴하여 이곳에서 최후 결전을 벌인 곳이다. 그 때 치열한 싸움으로 이곳이 피로 물들었기 때문에 붉은오름으로 불려졌다 하나 사실인지 알 길이 없고,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또 아래에 조릿대가 무성하여 붉은오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오름에 진입하기 전 꽤 깊은 계곡. 그곳에는 흰색 노루귀가 무리 지어 피어있다. 이른봄에 추위를 이기고 피어난 꽃이라서 그런지 청초하다.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어 진짜 노루귀를 닮았다. 미나리아재비과 다년생초인 노루귀는 보통 산의 나무 밑에 자라는데, 봄에 어린잎을 나물로도 쓴다. 민간에서는 전초를 8∼9월경에 채취하여 큰 부스럼이나 종기(腫氣)의 약재로도 사용한다. 이 밖에도 깡충깡충 뛰어가는 귀엽고 날렵한 노루를 연상하며 이름 붙인 들꽃들 중에는 '노루발', '노루삼', '노루오줌', '노루참나물' 등이 있다.
바로 오르는 것이 매우 가파른 관계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길이 비교적 느슨한 곳을 찾아 오른다. 여기도 제주조릿대가 무성하다. 조릿대를 밟으며 나무 사이로 바스락거리며 오른다. 중간쯤 오르니 이곳도 가파르고 길이 거칠다. 앞장서 가시밭길을 헤쳐 얼마 전 몇 사람이 스쳐갔을 법한 길을 찾느라 진땀이 흐른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먼저 간 사람의 고충이 어떠했을까. 세상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겠는가.

△ 이곳 산골짜기에도 봄이 여신이

능선은 조금 트이어 있어 나무 사이로 주위가 보인다. 오늘 우리가 갔던 노로오름이 길게 누워 있다. 족은오름 정상에선 전혀 안 보이던 큰오름 정상이 완연히 드러나 있었다. 족은오름 정상과 얼마 안 떨어진 곳이다. 이상하게 일정이 바뀌고 시간이 조금 엇갈려 오르지 못한 것을 보면 인연(因緣)이란 것이 정말 있는 것이 아닐까. 옷자락 스치는 것이 어찌 대수로운 일로 보아지는가. 시간과 장소와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여러 가지 조건을 확률로 따져본다면 인연은 정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3시 05분. 1,061m 정상에서는 한라산 쪽이 환하게 드러나 탁 트인 대기 속에서 마음껏 사방을 조망할 수 있었다. 바로 코앞의 살핀오름을 위시해서 나란히 늘어선 삼형제오름. 남쪽으로 이슬렁오름과 볼레오름, 그리고 한라산 정상인 부악(釜岳)까지 모두가 제자리에서 넉넉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에는 꽝꽝나무가 비교적 많다. 감탕나무과의 상록활엽관목인 이 나무는 비교적 높은 지대에 분포되어 한라산 기슭에 많이 자란다. 바로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래로 내려오면서 서어나무·엄나무·들벚나무·때죽나무를 만났는데, 모두 봄 준비를 위해 부지런히 봄눈을 부풀리고 있었다. 이게 이런데 촉촉한 땅에는 어떤 변화가? 조릿대가 없는 곳을 자세히 살핀다. 있다. 분명히 솟아나 있었다. 그래. 이거야. 거기에는 곰취가 잎사귀를 내놓고 10원 짜리, 100원 짜리, 500원 짜리 동전만큼씩 자라 있었다. 드디어 이 산 기슭에도 아무도 몰래 봄의 여신이 다녀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