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메, 산세미오름 답사기[2003. 6. 1.]
(아침에 출발점에서 찍은 보리장나무 열매)
▲ 제1회 제주MBC 라디엔티어링 대회
연인이나 가족, 또는 친구끼리 자연 속을 걸으며 라디오 생방송과 음악을 즐기는 라디엔테어링 대회가 있었다. 지난 달 우리 학교 소풍날, 나더러 행사를 치를 만한 마땅한 장소를 물색해 달라고 하길래 '제주 비전 열린 이야기'를 진행하는 이정헌, '시선 집중 제주입니다'의 지건보, 두 아나운서를 데리고 비자림에서 잃어버린 다랑쉬마을을 거쳐 아끈다랑쉬오름으로 미리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은 다랑쉬오름 옆을 지날 때 전파 방해로 방송이 깨끗하지 못해 어떨까 했는데, 이번에 가까운 곳 제주시 애향운동장에서 오등봉을 왕복하는 약 7km의 길 위에서 행해지게 된 것이다.
사실 이 길은 과거 제주시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소풍 코스로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누구나 찾기 쉽고 차를 둘 곳이 있어 좋은데, 단점은 차량이 많이 오가는 연삼로를 가로질러야 하는 것과 길이 아스팔트여서 걷는데 부담이 된다. 나는 이 행사의 생방송에 출연하도록 요청돼 있어 8시에 오바로 나가 바리메로 떠나는 오름 회원들을 배웅하고 집에 머물러 있다가 10시 20분에 방송국으로 나갔다.
(지금 제주 산야에서 절정에 이른 인동덩굴 꽃)
10시부터 12시까지 이어지는 생방송을 치르노라 방송 스텝진이 야단들이다. 현장에서는 현장대로 행사를 진행하고 인터뷰를 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서, 작가의 인도를 받아 스튜디오로 조용히 들어갔다.3년 전 6개월 동안 이곳 스튜디오에서 일요일 오후 6시에 방송되던 '제주 사람 어떻게 살았을까'를 조선희 씨와 공동 진행한 바 있어 익숙한 곳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생방이어서 두 번이나 들락거리며 얘기하느라 긴장감에 손에 땀이 난다.500여 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에서는 5개의 퀴즈가 차례로 나가 참가자들이 답을 차례로 종이에 적은 뒤 최종 목적지에서 추첨 시상하며 다함께 노래부르기, 게임, 축하공연과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되었다. 내가 한 일은 제주의 오름에 대한 설명과 오등봉에 관한 얘기, 진행 도중 주변 환경 설명, 퀴즈 문제 출제 등이었다. 이런 행사는 MBC 각 지역 방송에서 실시하여 커다란 호응을 받아 이곳에서 처음으로 열린 것인데,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스님의 밥그릇을 닮았다는 바리메 분화구의 일부)
▲ 버꾸기 소리 들으며 오른 바리메
11시가 되어 풀려난 나는 변 총무를 집으로 불렀다. 변 총무는 9시까지 야근을 했기 때문에 오름 팀과 합류하지 못해, 방송이 끝나고 나하고 같이 가기로 약속된 상태였다. 전화를 넣어보니 일행은 아직도 바리메 정상에 있었고, 물이 고여 있는 금오름으로 가서 사진을 찍은 다음 한수리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라 했다. 그러면 우리도 바리메에 오른 후 오후에 합류하려고 마음먹고 그냥 오르자니, 배가 고파 도치돌 가든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니, 1시다. 위로 올라가 서부관광도로를 가로질러 납읍공동목장 식당을 넘어선다. 그 곳 시멘트 포장길로 가면 바리메 서쪽 홍골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고, 더 가서 위로 난 길을 가면 남쪽 족은바리메 사이로오르는 길이 나온다. 차를 세우고 1시20분에 시계 반대 방향으로 북쪽 정상으로 오른다. 풀밭에는 봄구슬붕이가 별처럼 빛나고, 개망초, 개민들레, 등심붓꽃도 거든다.
(절정을 치닫고 있는 찔레꽃)
푸르름 속에 금이 간 것처럼 흙이 무너진 곳은 일제 때 금괴를 묻고 갔다는 말을 듣고 헤집었던 흔적이다. 어디선가 뻐꾸기 우는소리를 들으며 울창한 숲으로 들어갔다. 갈매기난초가 대를 밀어 올려 얼마 없어 필 기세다. 초피나무 향기를 맡고 기어오르기를 20분. 드디어 북쪽 능선으로 오르는데 성공했다. 분화구가 스님의 밥그릇인 바리와 같다고 하여 바리메란 이름이 붙었는데, 진짜 그렇게 유추된다. 산체가 크고 남쪽 봉우리가 높아 멀리서 봐도 듬직한 이 오름은 시골 우리집에서 바로 보이기 때문에 나는 이 오름을 우러르며 자랐다.
오름 실제 높이가 213m나 되고, 그 둘레는 4,694m나 된다. 태양열 집열판과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정상으로 가니, 서쪽 벌판에는 포크레인 수십 대를 동원하여 골프장 공사가 한창이다. 이러다가는 제주가 골프장 천국이 될 것 같아 괜스레 우울해진다. 나비가 앉아 있는 것처럼 하얗게 핀 산딸나무 꽃 위로뻐꾸기 울음소리 서럽다.
(산세미오름과 김수 장군 비, 그리고 물먹으러 온 말)
▲ 공부하며 오른 산세미오름
제2횡단도로 한밝저수지에서 납읍공동목장으로 난 산록도로를 따라가다가 한라산 쪽을 잘 살피면 '천아오름 신엄공동목장'이라는 돌간판이 있다. 시멘트 도로로 들어가면 바로 김수(金須) 장군 못이 있고, 커다란 기념비가 보인다. 광산김씨로 고려시대의 문신이었던 그는 영암부사로 나갔다가 1271년(원종 12) 진도에서 패한 삼별초가 제주로 들어가 계속 저항하자, 안찰사(按察使) 권단의 명으로 200명의 관군을 이끌고 와서 제주를 지켰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전사하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건데, 삼별초 김통정 장군과 김수 장군이 이끄는 관군과의 싸움의 성격의 모호하다. 원나라 때문에 동포끼리 칼을 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건 아무래도 아이러니라 할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크지 않은 못은 생태계가 단조롭다. 여러 무덤 중 제일 안쪽에 위치한 김수의 무덤을 보면 고려시대 무덤을 양식을 짐작할 수 있다. 임금의 내키지도 않은 명을 거역할 수 없어 먼 이곳까지 와서 싸우다 전사한 한 장수의 무덤 앞에서 나라가 개인에게 어떤 존재인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나와서 100m쯤 되는 곳 탁 트인 풀밭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제주의 보통 무덤 양식과 다른 산세미오름의 어느 무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오름이 크든 작든 숲이 우거지든 밋밋하든 간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오름은 계절마다 다르고, 하루 중 어느 때, 또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오르느냐에 따라 다르다. 비고 102m의 산세미오름(山心峰, 三山岳, 삼산이오름)을 경치를 즐기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오른다. 오르기에 앞서 여기저기에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갯취를 만났다. 이상하게 동부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이곳 주변 오름과 벌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직 복분자 딸기는 익지 않았지만 멍석딸기가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서너 알 따서 새콤한 맛을 즐기며, 정상에서 서쪽으로 가다가 한라산을 향해 누워 있는 무덤군에서 남서쪽으로 빠지면 비자나무 숲이다. 과거에 제법 많았었는데 정원수로 캐가 버렸다는 후문이다. 본 팀들이 천아오름 계곡으로 가고 있다는 보고에 결국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깊은 계곡은 깨끗한 물이 철철 넘치고 숲은 울창하다. 여기서도 물 흐르는 소리 사이사이로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저 놈이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놓고 저렇게 우는 것은 분명 여름이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숲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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