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롭게 지어놓은 대만에서 이름난 절 룽산쓰)
◎ 2003년 10월 5일(일요일) 흐린 후 맑음
▲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준다는 옛절 룽산쓰 ①
저녁을 기대하라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결국 간 곳은 철판구이집이었다. 이왕이면 면(麵)의 천국 타이페이 중화면집을 찾아 간장으로 간을 한 진하고 매운 국물 맛의 홍샤오(紅燒) 뉴러우몐(牛肉麵)을 맛본다든가 소금으로 간을한 담백한 맛의 칭둔(淸燉) 뉴러우몐을 맛보는 것도 좋고, 돼지갈비가 턱 얹어 나오는 파이구몐, 대합으로 국물을 낸 방몐, 새우로 국물을 낸 단쯔몐, 닭의 넓적다리를 얹은 자지몐, 그도 저도 아니면 만두가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면을 맛보는 기회가 없어 섭섭했다.
아쉬운 대로 소고기나 돼지고기, 양고기나 사슴고기를 적당량 넣고 여러 가지 야채를 곁들여 갖고 가서 볶아달라고해서 중국 술 한 잔과 곁들여 먹는 것으로 혀를 달랬다. 다음에 찾은 곳은 우리가 사흘 동안 묵는 기린호텔 곁에 있는 절 룽산쓰(龍山寺). 모든 신과 불상이 한 자리에 모여 있어 어떤 소원이나 고민도 들어준다는 영험한 명사찰로 1738년에 창건되었으며, 본전에 본존관음보살을 비롯해, 보현과 문수 등 불교의 부처님들을 모시는 타이베이에서는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이다.
절이라 하지만, 허우뎬(後殿)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關羽)와 이름난 문제(文帝), 텐상성무(天上聖母), 주성냥냥(註生娘娘) 등 도교의 신들도 모셨다. 관음보살의 영검이 신효해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검은 옷을 두른 여성들이 조용히 독경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룽산쓰에서 소원을 빌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이들이 섬기는 여러 신들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무슨 고민이건 다 들어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어 타이완 전역에서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다. 또한 이곳은 관광 필수 코스로 알려진 곳이라 타이완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원이기도 하다. 2001년 4월부터 2년 동안 대규모 개장 공사가 끝난 산뜻한 모습의 절로 들어가는 순간 향을 태우는 연기가 매캐하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주변 주민들을 생각해서 많이 태우지 않는다고 했지만 많은 사람이 찾다 보니 조금씩 태우는 연기만으로도 이 정도인가 보다. 동행했던 불교 신자들이 무언가 열심히 빌고 있어 나도 마음속으로 여행의 안전을 기원했다.
원래 이곳은 텐상성무를 모시는 작은 사당이었다. 어느 날 여행을 하던 한 상인이 이곳을 지나게 되었을 때, 잠시 소변을 보려고 머리에 걸고 있던 부적을 빼서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숲 속에 들어가 볼일을 봤다. 볼일을 다 본 상인은 그만 깜빡 잊고 부적을 그곳에 걸어둔 채 그 자리를 떠났다. 밤이 되자 '안해 용산사 관세음보살(安海龍山寺觀世音菩薩)'이란 부적이 빛을 발하는 것을 인근 주민들이 발견해 이곳에 사찰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사찰을 지으려면 배산임수가 있는 곳이 관례였는데, 이 곳은 연못은 있었지만 산이 없었다. 그래서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점을 쳐본 결과 이곳에도 사원을 지을 수 있다는 결론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말에 토지 소유자도 기뻐하며 토지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걸 만회라도 하려는 듯 산문 안에 인공 폭포를 만들어 놓았다.
(밖에서 바라본 룽산쓰 지붕 처마의 모습)
▲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준다는 옛절 룽산쓰 ②
한쪽에는 본존과 관음보살의 영험한 능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군 비행기에 의해 폭격을 받은 사건'이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새겨 걸어놓았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 룽산쓰는 관음보살의 공덕을 받으려 하기보다 공격 때마다 피난소 같은 장소로 쓰이곤 했는데, 경보가 울리면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경내에 모여 폭격을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평소라면 30∼40명 정도가 모여 숙박을 하던 경내였는데 웬일인지 두통과 복통이 일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네 집에 가버렸고, 7∼8명 정도만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마저 평소에 없던 모기가 기승을 부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경내는 텅 빈 상태였다. 그때, 미군 폭격기 B29가 날아와 이곳을 총통부로 잘못 알고 이 절에 샤오이탄(燒夷彈)을 떨어트렸다. 폭격기는 그 날만 유독 레이더망을 피해 수면 위를 아슬아슬하게 비행해 왔기 때문에 경계경보도 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룽산쓰는 돌기둥까지 파괴되었지만 희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목조로 된 관음보살도 연좌에 앉은 채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이 사건으로 룽산쓰 관음상은 더욱더 두터운 신망을 얻어 참배객들에게 추앙 받게 되었다.
일반에게는 07:00부터 비교적 늦은 시각인 22:00까지 개장하고 있다. 일본이 중국을 점령했던 시절에는 유독 도교에 대한 탄압이 심했다. 도교에 관련된 모든 서적을 압수해서 파기해 버리는 분서갱도 사건도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피난처를 찾아 도교 관련 서적을 보관해 달라고 사찰의 스님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래서, 도교에 관련된 많은 서적들을 사찰에 숨김으로 해서 안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찰이 이곳 룽산쓰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본토인들은 불상만이 아니라 자신이 숭배하는 신(神)들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다.
(룽산쓰에서 향을 사루며 소원을 비는 신도들)
사실은 대만인들의 신(神)은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 자신이 존경하는 모든 것은 신이 될 수 있다. 불교의 부처도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도 삼신할미도 대만에서는 신으로 존재한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시험을 잘 보게 하기 위해 신에게 빌고,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연인들은 사랑을 관장하는 신에게 소원을 빈다. 향은 약 30㎝ 정도 길이의 가는 것과 서양의 시가처럼 굵은 향을 사용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한꺼번에 20여 개씩을 사용하다 보니 경내에서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이다. 한동안 대만인들은 사찰의 경내에서 지전(紙錢)을 태우면서 기원을 했다.
이런 이유로 사찰에 화재가 자주 발생했는데 지금의 대웅전도 화재로 인하여 새로 중건한 것이다. 대웅전의 천장을 보면 그 당시에 도교 관련 서적을 숨겨 놓았던 흔적을 볼 수 있다. 룽산쓰의 대웅전 기둥을 살펴보면 화강암으로 승천하는 용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는데, 너무 똑 같아 꿈틀거리는 것 같은 예술품으로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그런데 룽산쓰는 시주를 받지 않는 사찰이어서 모든 예물은 가져 온 사람이 회수하여 가져가야 한다. 원래는 24시간 개방했었는데, 지금은 밤 10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더운 지방인 이곳은 갈 곳 없는 노인들이나 노숙자들이 자주 찾아들어 북적거리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조심해야 한다. 가까운 곳에 야시장이 있어 더욱 어수선하다.
(사람들이 붐비고 있는 야시장 골목)
▲ 관광객을 위해 조성해놓은 관광 야시장
룽산쓰를 나온 우리들은 가이드를 보내고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화시졔 관광예스(華西街觀光夜市)로 갔다. 초저녁이어서 지역 주민과 관광객으로 초만원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는 곳으로 가보니 뱀과 자라의 쇼를 하고 있다. 사진을 찍었다가 곤란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감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하고, 겨우 잡으려고 내놓은 비단구렁이와 어느 여인이 들고 선전하는 구렁이를 몰래 찍었다. 듣기에는 이곳 대만코브라의 독액, 생혈, 정액 등을 팔기도 하고 대부분은 구워 먹거나 탕으로 먹는다. 아줌마가 한창 신나게 설명하고 나자 이곳의 젊은 연인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주문하고 들어가 앉는다.
나는 혹시나 길을 잃은 사람이 없을까 어정대고 있었으므로 혼자서는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커다란 뱀가죽 벗기는 것만 보고 돌아왔다. 꼭 보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곳 대중 음식을 먹는 셈치고 구이 몇 점 못 먹어보고 온 것이 두고두고 미련이 남는다. 간판이 있는 입구까지 돌아보며 우리 나라 특히 제주시에는 왜 이런 야시장이 없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곳 타이페이 시에는 사방에 이런 야시장이 7군데나 된다고 한다.
이런 곳이 있으면 주민들이 장사를 해서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고, 관광객들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 밤 시간에 자유롭게 그곳의 문화를 접할 수 있고, 또 많은 주민들도 편하게 이용할 것이다. 여러 음식점의 좌판 위에는 싱싱한 물고기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먹을 것과 요리의 재료로 쓰일 각종 고기의 부위를 늘어놓았다. 오늘은 특별하게 고기를 먹어서 더 들어 갈 배가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음에 혹 이런 곳에 오게되면 미리 가이드에게 건의해서 원하는 사람은 적당히 먹어두도록 해야겠다.
(비단구렁이를 들고 선전하고 있는 뱀집 아줌마)
이른 시간임에도 이곳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곳곳에 안마를 하는 곳이 있어 일행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아직 안마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어서 다른 곳에 그 시간을 써야겠다 싶어 혼자서 마구 돌아다녔다. 먹는 것 이외에도 의류와 장식품을 파는 포장마차로부터 귀금속, 애완 동물, 가전제품, 아이디어 상품, 골동품, 간단한 관광기념품,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파는가 하면, 금붕어 잡기, 총 쏘기, 장난감 집어내기 등 재미있는 놀이도 있다. 한 코너를 지나가는데 거기에서 번쩍 눈에 띄는 것이 있어 주저앉아 요모조모를 살펴본다.
우리 나라 같으면 박물관에 들어가 있어야 할 정도인데 이곳에서는 골동품 취급을 받는다 싶어 한 금동불상을 보면서 집에 있는 조카가 생각났다. 불심이 유달리 강한 조카를 위하여 이런 것은 통상 깎는 것이 아닌데도 100냥을 에누리해서 샀다. 중국 사람은 움직이는 것은 하늘의 비행기, 땅의 차, 바다의 배를 빼고는 모두 먹는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을 요리의 재료로 쓴다. 내가 대만에 오면서 먹어보고 싶었던 것은 뱀구이와 썩은 두부로 만든 초또우프라는 요리였다. 언젠가 이 두 가지에 대해 써놓은 글을 읽은 기억 때문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의 입맛을 빌리면 뱀 구이는 닭고기 맛과 비슷했고, 초또우프는 거의 발 땀 냄새 수준이어서 거부감이 있었지만, 막상 한 입 먹어 보니 구수하고 감칠맛이 났다고 했다 졸리고 피곤해서 미리 몇 사람 그것을 먹을 희망자를 파악하여 작전 계획을 세우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며 불상만 만지작거리며 돌아왔다. (계속)
(야시장 어느 과일 가게의 모습)
♬ 왕량(光良)의 '제1차(第1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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