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의 시작

김창집 2004. 1. 20. 16:23

 

 

(1997. 7. 26. '족은드레오름'에서. 뒷줄 오른쪽 첫 번째가 필자)

 

 지금은 '다음 칼럼'에 오름 이야기를 4년 동안 실으면서 지방지에 이름까지 내건 오름 소개를 맡아 1년 넘게 쓰고 있지만, 정작 이런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회원끼리 보고 형식의 글을 내는 소식지에 실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둘째 주 일요일과 넷째 주 토요일에 정기 오름답사를 실시했는데, 출발하기 직전에 글 쓸 사람을 정하기 때문에 글쓰는 것이 부담이 되어 못 나오는 분도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을 하는 나로서는 이것저것 따질 이유 없이 오름에 다녀오면 그냥 썼다. 플로베르가 모파상에게 글쓰기 훈련을 시킬 때 창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의 옷차림에서부터 표정까지 묘사하는 훈련을 시켰듯이 나는 나 자신에게 오름에서 새롭게 보고들은 것을 묘사해 보도록 하는 훈련을 시켰던 셈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글을 못써 끙끙대는 분들을 위해대신 열심히 써 올려 소식지를 읽으면서 그 오름에 대해 다시 복습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글이 하나둘 늘어남에 따라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이왕 써놓은 것 회원만 읽고 버리기엔 아까운 감이 들어 칼럼에  올려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려고 시작한 것이 이번에 200호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되돌아보니, 너무 부족하고 어떤 때는 바쁜 핑계로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올리게 된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머지 않은 장래에 활자화하는 계기가 있으면 잘 다듬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맨 처음 썼던 '오름 이야기'를 선보인다. 독자 여러분의 질정(叱正)을 바라며….       

 

 

(1999. 1. 알밤오름. 뒷줄 왼쪽으로 네 번째가 필자)

 

▲ 이름답지 않게 큰 '족은드레오름'

 

[1997년 7월 26일 '토요일' 오후 3시 맑음]

 

 "오름 위에 부는 바람? 거 벨혼 디(별스러운 곳)도 다 있져." 하고 중얼거리며 멀어져 가는 택시를 뒤로하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 문손잡이를 돌려보니, '데깍'(꽉 잠겨서 미동도  않는 모양). 아뿔싸! '영업 시간은 5시부터'라, 이거 내가 잘못 알았나? 둘째 일요일 오전 9시와 넷째 토요일 오후 3시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름에 오른다는데, 그렇다면 '벳이(볕이) 과랑과랑호민(쨍쨍 내리쬐면)' 아니 가는가?

 

 낙심하면서 내려오는데, 강영봉 교수 부부가 도착한다. 그러면 그렇지. 그때부터 하나 둘씩 모여들어 소식지를 읽으며, 비양도 다녀온 사진을 감상하다, 3시 40분까지 모여든 20여 회원이 5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어리목으로 향했다. 오늘 오를 곳은 '족은드레오름'이다. 어디선지 모르게 케이블카 설치 운운한다 해서 현장을 한번 올라 보기로 한 것이다. 오늘 산행에는 외지 손님이 한 분 끼었다. 조선일보 '스포츠 레저' 최영태 기자로, 요즘 한창 관심거리로 떠오르는 오름을 특집으로 다루기 위해 노루를 찍는 사진작가 서재철 씨와 우리 '오름나그네'의 취재를 겸해 부랴부랴 아침에 도착했다고 한다.

 

 

(1999. 6. 20. 동거미오름. 뒷줄 오른쪽으로 세 번째가 필자)

 

 어리목 광장에 오면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아래쪽의 '어승생오름'과 위쪽의 '족은드레오름', 그리고 남쪽 숲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 자락. 풀밭을 지나 숲길을 통해 흘러오는 맑은 물소리 등은 노루가 뛰놀지 않아도 정취가 넘친다. '아흔아홉계곡'으로 길게 뻗어 내려간 '족은드레오름'은 이름과는 다르게 높고 길어서 카메라에 전혀 잡히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둘레가 3 ,201m이며, 넓이가 685,355㎡라니까.

 

 간단히 짐을 나누고 출발 준비를 서두르는데, 김홍식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소장이 다가와 어리목 광장에서부터 수로(水路)를 따라 설치하기 시작한 모노레일에 대하여 소개한다. 내용인 즉, "앞서 많은 예산을 들여 한라산에 유실된 토사 복구 작업을 실시했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이 운반비였다. 그렇지만 많은 물량을 운반하지 못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그래서 예산을 절감하면서 효과적인 운반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모노레일이다. 이 레일은 보통 과수원에 설치하는 것으로써, 폭이 그리 넓지 않아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고, 웬만한 눈에도 사용할 수 있으며, 앞으로 부상당한 등반자 수송에도 기여할 것."이란다. 그런데 어조가 어찌 좀 그랬다.

 

 

(2003. 5. 11. 오름나그네 선생을 모신 나그네궤.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필자)

 

 시간은 흘러 4시 20분. '족은드레왓'이라는 어리목 광장을 가로질러, 동쪽 숲으로 들어가 보니 철조망이 둥그렇게 뚫려 있다. 10여m 더 들어가니 큰 철제 덫과 표적이 보인다. 덫은 들개를 잡기 위해 시험적으로 설치한 것이고, 표적은 들개가 노루나 등산객을 헤치는 것에 대비해 석궁(石躬) 사격을 연습하던 곳이라는 서재철 씨의 설명이다.

 

 숲에 들어서면서부터 정상까지 바닥은 온통 제주도 특산인 '제주조릿대'로 덮여 있다. 화본과(禾本科) 식물인 이 제주조릿대는 10∼18㎝까지 자라며, 줄기는 3∼4㎝로 녹색을 띤다, 긴 타원형의 잎은 너비 15∼20㎜고, 뒷면에 다소 털이 있다. 이 조릿대는 과거 본도에 구황식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6∼7년마다 한번씩 꽃이 피어 밀알과 같은 열매가 달리는데, 이 열매가 녹말 자원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저러나 이것이 너무 번성하여 본래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니,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주조릿대 위에 쌓인 눈)

 

 서재철 씨가 '제민일보'에 [제주의 명목(名木)]을 연재할 때, 심심찮게 큰 나무를 발견한 곳이 있어 그곳을 둘러보려고 바로 정상으로 향하다 보니, 급경사의 연속이다. 큰 나무 때문에 시계(視界)가 막혀 어느 정도 올라왔는지도 모르고, 조릿대 때문에 발 디딜 곳을 가늠하기 힘들어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3분의 2쯤 올랐을까, 앞장 선 서재철 씨와 따라 오는 회원들을 잇는답시고 중간에서 걷다 보니 두 그룹 사이에서 홀로 떨어지게 되었다.

 

  "…김(종철) 선생님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평생 오름을 오르다 가셨을까? 한참을 생각해봐도 햇병아리 머리로는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오름은 '오르다'의 명사형이어서 '오르라'고 있는 것이라는 정도로 이해하고 보자. 그래도 무작정 올라서는 의미가 없다. 보이는 나무 이름이라도 열 개 이상 조사하고 가야지…. 오를수록 단풍나무가 많네. 이 오름은 가을철이 제격이겠다."

 


 

(가을 오름의 여왕 '물매화')

 

 우리말로 '줴피낭'이라고 부르는 초피나무를 만났다. 파란 열매를 따서 냄새를 맡으니 향긋하다. 이는 운향과의 낙엽 관목으로 연한 잎을 따서 향미료로 쓰는데, 정말 자리물회와는 궁합이 잘 맞는다. 학교가 있는 월평동에 씨앗을 따다 모종을 놓은 곳이 있어, 다섯 그루를 얻어다 옆집에 하나씩 나눠주고 울안에 세 그루를 심어 두었다가 눈독 들이는 제자에게 뽑아 주고 나니, 지금은 딱 한 그루 남았다. 윤노리나무를 보며 옛날을 떠올린다. 소 몰 때 회초리며 마당질할 때 도리깻열은 물론 도끼자루 같은 농기구나 자재 도구에 꼭 필요한 나무였다. 분재로도 그만이다.

 

 줄기가 붉은 빛을 띤 소나무가 뿌리로부터 가지가 뻗쳐있어 정상이 가까워졌음을 실감케 한다. 흑오미자 넝쿨에 오미자가 달려있는지 확인하고 나니 정상이다. 5시 40분. 다른 산이나 오름 같으면 개활지가 되어 사방을 조망하며 정상에 서 볼 텐데, 이건 끝까지 살갗 보이기를 거부하는 여인처럼 겉옷과 속옷으로 무장하여 정복을 용납치 않는다.

 


 

(술을 담거나 차의 재료가 되는 남오미자)

 

 몇 살이 된 주목인지 세 그루가 정상에 빽빽이 둘러쳐 있어 다가서지 못하고 서쪽에 서 있는 꽝꽝나무를 헤치고 한라산 자락과 그 위에 있는 구름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북동쪽으로 조금 내려오니 작은 분화구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 둥그렇게 산담을 두른 무덤이 하나 있다. 그곳에 모여 수박을 먹으면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옆에 한라산 상부에서 자라는, 우리 나라 특산 식물인 '섬매자나무'(또는 '섬매발톱나무'라고도 함)가 서 있다. 잎사귀 쪽 가지에 달린 세 쌍의 가시가 정말 날카로워 매 발톱 같다. 산담 밖으로 나 있는 조팝나무를 닮은 식물이 '금방망이'라 했지만 향기가 심상치 않다.

 

 그래, 어떻게 여기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외국의 경우든 우리 나라의 경우든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곳을 보면, 바위와 벼랑의 구조 때문에 위험하여 올라가기 힘든 데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오름은 마음만 먹고 운동 삼아 걸으면 1시간 정도로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앞으로 즐기는 관광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는데, 오름 오르기 이벤트를 마련하여 코스에 오름을 넣어 오르게 함으로써 골프를 즐기듯 자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지 않을까.

 


 

(2001. 1. 1. 둔지봉 해맞이. 뒷줄 가운데 파커 모자가 필자와 아들)

 

 김 선생님의 '오름나그네' 3권에 의하면, 오름의 한자 이름은 금봉(金峰)이며, 옛지도에는 소두리봉(小頭里峰, 족은두리오름)으로 나타나 있다고 했다. 화구 없는 원정구(圓頂丘)로 서사면은 어리목 광장에 면해 있고 남사면은 급경사를 이루며 동어리목골'을 내리지른다. 북녘 자락에 열 가닥으로 뻗친 등성이는 아흔아홉골을 형성하여 서쪽 끝에 '골머리'의 바탕을 이루고, 계곡에 천왕사라는 절과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 하니, 가을쯤에 Y계곡 쪽으로 올라 천천히 즐기면서 아흔아홉골로 내리는 코스를 답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3. 11. 30. 물찻오름. 제일 뒤가 필자)

'오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인의 삶과 오름  (0) 2004.01.20
아는 길도 물어 가라  (0) 2004.01.20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0) 2004.01.20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  (0) 2004.01.20
안개 속으로 떠나다  (0) 200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