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제주인의 삶과 오름

김창집 2004. 1. 20. 16:28

생활 속의 오름(토론회 발제 내용)

 

(산수국)

 

[제주인의 삶과 오름 토론회]

 

 안녕하십니까. 탐라문화연구소와 한라일보사가 공동으로 오름에 관한 토론회를 준비했습니다. 오름은 신화와 전설을 간직한 채 오랫동안 제주인의 곁에 있었지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최근 오름을 방문하는 동호인 모임이 급속히 늘어나고, 오름을 생태관광 자원으로 이용하려고도 합니다. 한라일보사가 “한라대맥을 찾아서”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한편 오름이 파괴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오름이 제주인의 삶과 문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제주인들이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제주인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오름이 제주 문화 속에 올바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일시 : 2003년 12월19일(금) 오후 3시∼5시30분 
△ 장소 : 참사랑문화의 집(제주삼성초등교 옆) 
△ 주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Ⅰ부(15:00∼16:30) 주제발표 및 지정토론  
사회 : 강만생(한라일보사 사장)  
기조발표 : 제주인과 오름 - 윤용택(제주대 철학과 교수)  
발제 1 : 제주문화 속의 오름 - 신영대(제주관광대 교수)  
발제 2 : 생활 속의 오름 - 김창집(오름오름회 부회장)  
토론자 : 정광중(제주교대 지리교육과 교수) 서용건(제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     
       박찬식(제주대 사학과 강사)    현원학(환경운동연합 오름팀장)
       문용포(제주참여환경연대 생태교육팀장)  
 
 Ⅱ부 (16:40∼17:30) 자유토론  
사회 : 조성윤(탐라문화연구소장)

 

(옥녀꽃대)

 

1. 들어가는 말

 

 요즘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오름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오름에 오르기 위한 동아리들이 신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임의 자생단체여서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도내에는 줄잡아 약 180여 오름 동아리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의 유형을 보면, 우선 처음부터 오름에 오를 목적으로 결성된 동아리로부터 직장이나 지역 단위로 자연스럽게 조성된 동아리, 동창회나 친목회를 근거로 파생된 동아리, 심지어는 종친회에서 운영하는 오름 동아리가 있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오름 동아리들이 이렇게 불어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로 유추할 수 있으나, 생활의 여유를 갖게 되면서 레포츠 인구가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거기다가 건강에 관심이 많아져 걷기 운동이 붐을 이루면서 도심과 가까운 오름을 공원으로 만들어 산책로를 개설한 것도 오름 인구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오름 오르기가 더 매력적인 점은 현장에 접근하기가 용이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도로가 잘 정비되고 교통 수단이 좋아져 마음만 먹으면 어느 오름이든 4∼50분이면 갈 수 있다. 그리고, 오름에 오르는데도 등산처럼 장비가 필요하지 않고 힘과 시간도 덜 걸린다.

 

 오름에 가면 쉽게 자연을 접할 수 있고, 그 속에 철 따라 피어나는 아름다운 들꽃이 있어 더 찾게 되는 지도 모른다. 적당히 땀을 흘린 후 맛보는 정상 정복의 쾌감도 오름을 즐겨 오르는 요인이 된다. 게다가 368개의 오름은 저마다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하나하나 오르다 보면 더 많은 곳에 오르고 싶어진다. 그러면, 이들이 오름에 오르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오름오름회 회원과 오름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의 면담 결과를 통해 알아본다.

 

 

(서어나무)

 

2. 왜 오름에 오르는가

 

 (1) 건강을 위해서
 
 등산하는 사람에게 "왜 산에 오르는가?" 하고 물었을 때, "산이 거기 있으니까…." 하고 대답했다는 일화(逸話)는 너무 잘 알려진 얘기다. 오름에도 많이 오르다 보면 무작정 좋아져 주말에 오름 오르는 것을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어쩌다 볼일이 있어 한 주라도 오름 오르기를 거르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몸이 개운치 못하다는 오름 중독자(?)들도 더러 있다. 이렇듯 오름 오르기는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을 위한 레포츠로 자리잡았다.  

  

 현대인에게 있어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할만큼 정신 건강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일주일간 직장과 가정에서 시달린 사람들이 이들을 옭아매는 온갖 관계에서 벗어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자연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시 일주일간 버티어갈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오름을 대하고 있으면, 상사의 눈치를 볼일도 없고, 남에게 거북한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돈걱정에서도 잠시 놓여나 오로지 자연과 한 가지로 숨쉬면서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걷는 것이 몸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심장이 좋지 않은 사람이든, 고혈압인 사람이든, 비만인 사람이든, 이런 여러 가지 성인병 환자들에게 걷기를 권유하고 있다. 평소 시간이 없어 도심을 걷던 사람들은 자동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코스를 반복해서 걷는 단조로움이나 매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름 오르기는 권장할만하다. 등산처럼 배낭을 메지 않아도 되고, 장시간을 요하지도 않고, 험한 곳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 부담을 덜 수 있어 걷기 운동에 더없이 좋다.    

 

(산골무)

 

 (2) 사람과 자연을 만나기 위해서

 

 '오름에 사람 만나러 간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오름 회원 중에는 오름보다는 모인 사람들이 좋아 더 자주 나오게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매일 직장에서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아니 그보다는 형편이 어려운 직장에서 시달린다는 느낌을 갖고 근무하는 경우에는 사무적으로 대하는 사람에게서 인간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말도 눈치를 보아가며 해야하고 고객에게나 라이벌 관계의 동료들에게 지극히 계산된 언어 구사를 하다 보면, 부담 없이 속에 있는 말을 터놓을 상대를 만나기 어렵다.

 

 집에서도 부모나 아이들 때문에 할 말 안 할 말 가려서 해야 하고, 양가 쪽 처지를 생각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선에서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때 직장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한 친구를 만나 오름에 오르며 이야기를 한다면 정말 마음놓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아무 이해 관계없는 사람들이 공통적인 화제를 놓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를 솔직하게 이해하고 동지애를 느끼기에 이른다.

 

 자연을 만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다람쥐 체 바퀴 돌 듯 주어진 생활에 몰두하다 보면, 하늘을 쳐다볼 여유도 없고 계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게 바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 이상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지금 거리를 걷거나 시장에 가보면 계절과 상관없이 꽃이나 야채, 과일들을 볼 수 있어 계절의 감각도 잊은 지 오래다. 그러나, 오름에 올라 철 따라 피고 지는 들꽃들에게서 계절을 느끼고, 푸른 하늘에 눈을 씻으며, 온갖 생물들과 호흡한다면 어느덧 자연에 동화되게 마련이다.

 

 

(조뱅이)
 
(3) 공부하기 위해서

 

 자연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름은 최고의 배움터요, 연구 대상이 된다. '오름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하는 화두(話頭)로 시작해서 화산과 지질 구조, 지하수를 다루는 지구 과학의 차원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오름에는 어떤 생물이 살고 있을까'를 살피는 생물학의 범주를 찾을 수도 있다. 특히, 한라산을 비롯한 수많은 오름들에서 희귀식물을 찾거나, 변이종이나 멸종 위기의 동식물을 찾아 연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더 나아가 요즘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환경오염과 환경보전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오름이 쥐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문·사회 과학 분야도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지리, 자연환경, 산업, 국토개발과 환경보전을 연구하는 사회 분야나 문화재, 무덤 양식, 돌 문화, 신앙 등의 역사나 전통 문화 분야라든가, 언어와 문학 분야의 지명 연구나 설화 연구까지 다양하다. 특히 초·중·고등학생들을 대동한다면 현장 학습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름오름회에는 회원 중 교사가 제일 많다. 먼저 자신이 알고 지도에 임하려는 것이다. 더불어 오랫동안 오름에 다녀서 오름에 많은 지식을 쌓은 회원도 있고, 식물학을 전공한 회원도 있으며, 문화재에 일가견을 가진 회원도 있다.

 

 (4) 예술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자연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발견한다든지 자연을 소재로 이루어 놓은 예술 작품은 많다. 따라서, 오름 모임에는 사진작가, 화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 예술가들이 참가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작가인 경우가 그 중 많은데, 신인작가인 경우 선배에게 묻거나 서로 의견 교환을 하면서 현장에서 도움을 얻고 있다. 그런 활동의 결과는 전시회를 통해 발표되기도 하고, 홈페이지나 카페, 칼럼 등을 통해 발표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참가하는 경우에도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 기행문 쓰기 등 활용만 한다면 좋은 학습장이 될 것이다. 

 

(산딸나무)

 

 

 3. 나오는 글

 

 오름 오르기는 이제 대중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오름으로 몰리고 있다. 더욱이 도외로까지 알려지게 되면서 관광 코스로도 각광 받고 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이번에는 오름의 훼손이 걱정이다. 잘 알다시피 오름은 대부분 송이라고 하는 끈기 없는 화산쇄설물이 쌓인 것이기 때문에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관계 당국에서도 별다른 대책 없이 표지석이나 세우고 인터넷을 통해 선전하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자연이란 일단 훼손이 되면 복원하는데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오름들인 경우 미리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어승생악이나 별도봉, 사라봉, 고근산 등 산책로를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오름을 보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르내림에도 불구하고 크게 훼손이 안 되고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한다면 해결책이 얼마든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굼부리처럼 개인이 관광지로 관리하고 있는 오름이 갈수록 볼거리가 많아지고 보전이 잘 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쪽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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