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서영아리의 가을 바람[2004. 9. 14.]

김창집 2004. 9. 1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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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새와 가을

 

 가을은 갓 피어난 억새의 하늘거림 속에서 시작된다. 태풍이 지나간 뒤, 아직은 정리되지 않은 구름이 흘러가는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 아래 수줍게 은빛 비늘을 파닥이면서 부는 바람 속에 몸을 송두리째 내맡긴 억새…. 가을이 되면 하얀 구름이 한가로이 떠있는 여유로운 푸른 하늘 아래 피어난 억새를 좋아한다. 이제 억새는 바람을 달래며 가을 들판을 지나 겨울을 날 때까지 고독(孤獨)의 몸부림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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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오름은

 

 가을엔 오름이 지독하게 고독을 타나 보다. 그 독백이 들꽃으로 피어난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그야말로 이름 없는 잡초 더미 속에 자라던 풀은 그 꽃을 피움으로써 존재를 나타내며 이름을 갖는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저마다의 빛깔을 내세우며 제나름의 독특한 향기를 풍긴다. 이 세상에 수없이 태어나고 죽는 사람들 중 제 나름의 향기를 풍기고 간 사람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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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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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레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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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톱풀

 

 

▲ 서영아리의 바위들

 

 서영아리의 바위들은 끼리끼리 모여 산다. 아무도 없는 산등성이에서 저들끼리의 밀어(密語)를 즐긴다. 그러면서도 어느 바위 하나 얼굴 붉힌 적이 없다. 그렇다고 누구를 흉보는 이야기도 아니고 짐작 삼아 하는 얘기도 아니다. 우리 인간들의 허울을 쓰고 깔깔대며 나누는 이야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누가 이 바위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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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금으로 대표되는 결실

 

 정금나무를 발견했다. 천천히 눈길을 더듬어 열매를 찾는다. 잎사귀 사이에 숨어 있는 파란 열매를 발견할 때만 해도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다시 돌아서서 무심코 바라본 나무에 매달려 여유롭게 익어가는 열매를 발견했을 때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 속에 숨어 까맣게 익은 열매를 발견했을 때의 경이로움이란? 계절의 변화는 이렇게 올 가을 결실을 천천히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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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는 길

 

 긴 숲길을 걸어 냇가에 앉아 쉴 때까지도 오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억새 밭을 지나 풀밭에 다다랐을 때 사방으로 드러나는 오름의 얼굴들. 그도 모자라 구름을 거느리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여기서도 우뚝 저기서도 우뚝, 다음엔 이곳에도 한 번 들러달라는 듯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하다 못해 달리는 차창 너머로 바뀌는 저들의 모습은 이미 오름의 계절이 와 있음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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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는 차창 너머로 찍은 어승생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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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관광도로를 달리며 새별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