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있을까

김창집 2004. 10. 7. 13:11

제5회 오름오름축제를 끝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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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속에서 푸는 스트레스

 

 온 도민의 축제인 탐라문화제 행사를 더욱 알차게 하고, 오름 축제를 엶으로서 제주도의 보배인 오름을 국내외에 바르게 알려, 행사에 참여한 분들에게 자연을 마음껏 즐기게 하면서 오름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한편,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데 행사의 목표를 두고, 지난 일요일 남제주군 표선면 좌보미오름과 백약이오름에서 열렸던 오름 축제는 154명이 참가하여 성황리에 끝났다.


 날씨가 행사를 좌우한다더니 행사를 축복하듯 오랜만에 활짝 개인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 모인 사람들은 가슴이 부풀어 제 세상을 만난 듯 모두들 흐뭇한 얼굴이다. 요즘 들어 오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느는 것은 생활 형편이 나아짐으로써 여유가 생겨 취미생활을 즐기며 건강을 다지려는 데 있다고 보아진다. 거기다 내가 밀려 나가느냐 네가 살아 남느냐 하는 절박한 일터에서 놓여나 자연 속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웃고 즐기다 보면 스트레스는 간 곳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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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름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이번 행사에는 오름이나 산을 찾는 다른 동아리 회원들이 많이 참가했다. 전국적으로 많은 회원을 가지고 카페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소백산 산악회나, 자연 생태 탐사를 하는 서귀포시청 동호회, 금년 8월에 정년을 맞은 선생님들의 모인 오름 동우회, 연중 어린이들에게 오름 학습을 담당하고 있는 제주문화포럼, 그밖에 다른 오름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이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등 평소 오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점을 감안, 오름 초입에 모여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에 '축제가 지속되기 위해서, 그리고 같이 참가한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오름을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고 운을 떼었다. 사실이지 이 축제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행사를 알리는 신문 기사가 나가고 이틀만에 목표했던 120명의 인원이 차버렸고, 여기저기서 압력이 들어와 차 1대분의 인원을 더 받기로 하고 160명을 채운 뒤, 다시 신청해 오는 분들에게는 다음을 기약하자며 설득하기에 땀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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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게 늘어선 사람과 오름이 어울림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앞장서 목장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삼삼오오 짝을 지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원색의 물결은 초록과 어울려 너무 아름답다. 사실 오름을 오를 때는 많아야 20명 정도가 알맞은데, 여럿이 같은 곳을 지나다보면 속 무른 흙 위에 자란 풀들이 죽고 그 곳에 빗물이 흐르면서 패이기 시작하여 훼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를 벌인 좌보미와 백약이는 널리 알려져 있는 오름이라 남제주군에서 능선을 따라 길을 잘 정비해 놓았다.


 오름에게는 미안했지만 1km 이상 늘어선 행렬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오름 사랑의 정신을 심어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꽉 차간다. 4개의 봉우리가 끊어질 듯 이어진 좌보미오름의 주봉(主峰)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려오기를 기다려 잔디가 좋은 알오름에 모여 평소 이들이 듣지 못했을 이야기들, 이를테면 제주섬와 오름의 생성, 오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이제 막 오름을 오르기 시작한 나이 많은 선배들을 위해 오름 오르기와 인생에 대한 담론까지, 내용을 줄이느라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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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름 오르기는 우리 인생과 비슷해   

 

 오름 오르기는 우리 인생살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처음 오름을 오르는 사람은 앞선 사람들이 주변 오름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이름을 말하는 것이라든지, 보이는 족족 나무와 들꽃 이름을 꿰는 것을 보면서 언제면 나도 저 경지에 오르게 될까 하는 생각에 일면 부럽고 존경스러워 부지런히 기록하고 외며 다닌다. 하지만 그것이 그것 같고 헷갈려 도무지 자신이 없다. 이것은 우리가 어렸을 적 세상을 알아가면서 겪었던 그것과 비슷하다.


 그 후 오름이 하나둘 눈에 익어가고 들꽃이 눈에 들어올 때부터 주변의 사물을 인식하게 되고, 그 재미를 느낀다.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고 이제 그것을 즐기게 되면서부터는, 지금쯤 어디가면 무슨 꽃이 피어 있을 테고, 어디에 가면 무슨 열매가 익었겠지 하고 가보면 신기하게도 꼭꼭 들어맞는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세상의 묘미를 알고 모든 일에 자신이 붙는 인생이 중년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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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달인(達人)의 경지를 즐기는 기간은 불행하게도 짧다. 어느 듯 산에 오르는데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그제야 자신의 능력의 한계와 도달한 위치를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눈앞에 엄연히 버티고 있는 봉우리의 위대함을 비로소 깨닫고 나면, 자신이 오른 그 위치에서 내려올 일만 남는다. 사람에 따라 오르는 것보다 내리는 것이 더 힘들다는 얘기도 있지만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 백약이오름에서 들려주는 들꽃 이야기

 

 점심은 오름 초입 목장 한 구석에 간이 뷔페로 마련했다. 중산간에 위치한 모 부락 부인회가 운영하는 곳에서 차린 것이어서 1회용 그릇을 쓰지 않고 음식도 자연식품 위주였는데 모두들 흐뭇해했다. 따뜻한 밥도 맘에 들었고 양하라든지 고등어조림, 마늘장아찌 같은 것이 인기가 있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옆에 마련된 실험장에서 화산 폭발로 오름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었는데,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큰 관심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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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약이오름에 오르는 길에는 억새의 은빛 물결이 우리를 반겼다. 예로부터 백 가지 약초가 자라 '백약(百藥)이'라고 했는데, 오랫동안 철조망 울타리를 두르고 마소를 가두어 놓음으로써 많은 식물들이 멸종되었다. 지난번 왔을 때 보이던 도라지꽃은 이미 지고 섬잔대, 쑥부쟁이, 오이풀, 이질풀, 한라부추, 쥐손이풀이 한창인데, 아직 물매화, 자주쓴풀, 꽃향유는 피지 않았다. 들꽃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아이들을 상대로 퀴즈를 내어 상을 주었다.


 주변의 오름 이름을 하나하나 말하면서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니, 마치 화산이라도 터진 것처럼 봉우리 위로 구름이 흐른다.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그렇다고 탄성을 지르는 이도 있다. 오늘 산길을 걸으면서 참가자들을 살펴보니 아름다운 들꽃과 넓게 펼쳐진 들판의 은물결 억새꽃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오랜만에 맞은 자연을 마음껏 즐기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돈만 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훼손하려 드는 사람이 있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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