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다시 태어나 천년, 우리 나라에서 제일 어린 섬 - 비양도

김창집 2002. 1. 9. 11:32
▲ 바다에 솟아나 1천 돌을 맞는 오름, 비양봉(飛揚峰)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고려 목종 5년(1002년) 음력 6월
평평하던 바위 섬 한 가운데에서 불기둥이 솟았다.
그로부터 닷새 동안 불구멍이 서너 개로 나눠지면서
솟아나온 쇄설물이 쌓여 오름이 되었다.
------ <동국여지승람> 권38

사람들은 갑자기 솟아난 산이 어디 먼 나라로부터
날아온 것이 아닐까 하여 그 이름을 비양도(飛揚島)라고 붙이고
이에 대한 전설을 만들어 놓았다.
'하루는 곽지리에 사는 한 임신부가 아침에 물을 길러 바닷가로 나갔는데
섬이 둥둥 떠오는 거라. 그 여인은 깜짝 놀라 "섬이 떠온다!" 하고 외쳤는데
이 소리에 섬은 모래를 내뿜으면서 지금의 자리로 날아가 버렸다나.'

제주시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차를 달려
애월을 지나 한담동산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며,
1시간 정도면 섬으로 건너가는 한림항에 이른다.
도항선 한양호는 09:00와 15:00에 비양도로 가고, 09:15과 15:15에 돌아온다.
15분 걸리며, 배삯 편도 일반 1,500원, 학생 900원.

동서 및 남북의 길이가 850m 정도의 원에 가까운 타원형 모양
한림항에서 북서쪽으로 5km, 협재리에서 북쪽으로 3km정도 떨어짐.
면적은 0.59㎢, 61가구에 현재 거주자는 48세대, 인구수는 110명 정도
제주도의 유인도 중에서 여섯 번째 큰 섬이다.
섬 한 바퀴 도는 데는, 걸어서 1시간 정도.

섬의 중앙에는 해발 114m의 비양봉이 약간 북쪽으로 치우쳐 있고,
2개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는데, 봉우리에는 무인 등대가 있다.
섬의 주변에 화산탄과 기이한 돌이 많아 수석가들 에게 인기
주변의 해역은 조류가 교차하는 지역으로 황돔, 농어, 한치, 옥돔, 뱅어돔 등
고급 어종이 많이 잡혀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천국.

△ 비양도, 갈수록 매력이 넘치는 섬

나는 멀리 비양도가 보이는 마을---애월읍 곽지리에서 낮이면 섬, 밤에는 등대불을 바라보고 가끔씩 전설(傳說)을 들으며 자랐다. 곽지리는 그 유물로 미루어 선사시대 1번지라고 할만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유물이 잘 남아 있게 된 계기가 비양도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다. 비양도의 수중 화산 폭발로 해일(海溢)이 일어나고 그 해일이 모래를 끌어올려 해변 마을을 덮쳐버렸다. 그로 말미암아 놀랜 주민들이 저 한라산 쪽 높은 지대로 옮겨 살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모래를 헤쳐 길을 만들면서 그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던 유물이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맨 처음 비양도에 간 것은 대학 시절 협재해수욕장에서 헤엄쳐서였다. 어디나 섬과 육지 사이에는 조류가 있게 마련이어서 그 조류를 통과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옹포에서 한 해녀가 뒤웅박을 짚고 헤엄쳐 가다가 물 속에서 커다란 암석을 발견하고 거기서 커다란 전복을 잡게 되는데, 그것이 고래였다는 것이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그 해녀는 돌아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슬픈….

나는 그 때 동료들과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썰물 상태여서 바다 가운데까지 걸어 갈 수 있었다. 보기엔 섬이 바로 손에 잡힐 듯 아주 가까워 보였다. 호기심도 동하고 해서 저기 충분히 헤엄쳐 갈 수 있겠다고 말하자, 친구들이 비웃었다. 그래서, 결국 내기를 하기에 이르렀고. 그래 좋다고 수영복 조그만 주머니에 돌아올 배삯에 해당되는 동전을 넣고 1시간 고생 끝에 포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다 가운데서는 바로 손에 잡힐 듯 했던 섬이 아무리 헤엄쳐 가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 서두르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하며 끈질기게 역영(力泳)한 것이 무사히 건넌 비결이었다.

다음에 찾아간 것은 새내기 교사 시절, 섬 가까운 마을 한수리 출신 이 선생님과 반 학생 둘을 데리고 고기잡이하러. 여름 방학이어서 허가를 얻어 초등학교 교실에 잠자리를 정하고 사흘 동안 고기잡이에 들어갔다. 포구 자갈돌을 뒤져 갯지렁이를 잡아, 대나무에 낚시 줄을 매어 바다에 던지면 놀래기나 보리멸, 졸락 같은 물고기가 쉬지 않고 달라붙었다. 또, 가지고 간 작살로 이 선생님과 내가 번갈아 가면서 바다 속으로 들어가 문어, 쥐치, 독가시치, 우럭 등을 잡아냈다.

사흘 동안 잡은 고기로 회를 뜨고, 굽고, 지지고, 매운탕을 해서 질리도록 먹었다. 또, 시간 나는 대로 비늘을 떨어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깨끗이 씻은 후 소금에 절여 바위에서 말렸다. 이튿날 그곳의 이장을 맡고 있는 이 선생님의 친구에게 술대접을 받았다. 포구에서 해녀가 잡아온 전복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그런데, 학생들이 전복을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고기를 직접 낚아서 안주를 하기로 하고 양동이에 바닷물을 떠다 도마와 칼과 초장을 갖다놓고, 술을 따라 손에 들고 포구 안 하얀 모래 위에서 노는 보리멸을 낚았다. 두어 마리가 한꺼번에 낚이는데,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세상에 고기가 얼마나 많아야 술 마시고 바다의 고기를 건져 올려 안주로 먹을까. 그러나, 이제는 전설이 돼버렸다.


▲ 다시 태어나 천년, 우리 나라에서 제일 어린 섬 - 비양도

다음에 비양도를 정식으로 탐사하러 간 것은 오름 모임에서였다. 내가 오름 모임에 가입한 뒤 맨 처음 1박 2일 답사간 곳이 비양도. 우선 민박집을 잡고 일행중 몇 사람이서 배를 빌려 낚시를 나갔다. 배를 타고 근해로 나가서 섬도 구경하고 주위 경치도 살피면서 1시간 정도 작업하면 초보자가 섞여 있어도 일행이 실컷 회와 매운탕을 해먹을 수 있는 고기를 낚을 수 있다. 돌아오면, 우선 허기진 대로 회를 떠서 술 한 잔 마시다가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비양봉 오름을 오른다. 등성이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등대가 있고 거기서 사방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등대 아래 서서 한라산 아래로 펼쳐진 여러 오름도 헤아리고 해안선을 바라보거나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조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등성이를 따라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며 낙조를 본다. 사진작가가 많은 모임이어서 그 도움으로 아마추어도 제법 쓸 만한 작품을 만든다. 돌아와 씻고 회합을 갖는다. 오늘의 소감, 내일의 일정 등이 주 내용이다. 회합이 끝나고 바다 바람이 그리우면 포구로 나간다. 낚시 채비를 하고 간 사람은 방파제 끝에 가면 제법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다.

방파제 끝 가로등 아래서 정담을 나누고 노래도 부르며, 서서히 몸이 식어질 무렵이면, 미리 예약해 놓은 배가 들어와 한치를 전해준다. 출출해진 터라 이곳에서 갓 잡아온 한치를 썰어 먹는 맛이란 제주도 한치가 왜 그렇게 이름 난 것인지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쯤이면 누워 잠을 청할 시간에 이른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간단히 세수를 하고 섬 일주에 나선다. 작년에 포장이 완료된 길은 산책하기에 알맞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마을이 끝나는 곳에 다섯 명이 다니는 비양분교, 그 다음에 신당(神堂)이 있다. 신당은 남자는 어부(漁夫), 여자는 해녀로 구성된 비양도민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곳이다. 사철나무가 신목(神木)인 이 당에는 많은 지전물색이 걸려 있다. 그 당을 넘어서서 조금 더 걸어가면 길쭉한 섬 속의 호수 '펄랑물'이 있다. 물론 밀물일 때 스며든 바닷물이지만 이곳에 철새들이 자주 나타난다. 어떤 때는 좀처럼 보기 힘든 새들도 발견된다.

그곳을 지나면 조그만 참나리 군락지가 있다. 그리고 나서, 해안가를 잘 살펴본다. 이곳을 잘 살피면 이 곳이 한번에 솟아 이루어지지 않은 섬임을 알 수 있다. 원래 바다에서 솟아난 검은 색의 현무암이 있는 바위섬이었는데, 그 위로 화산이 터지면서 용암이 흘러와 돌 위에서 굳어진 2중 구조를 살필 수가 있다. 그러므로, 북제주군에서 금년 음력 6월에 치르려는 '비양도 탄생 1천년 기념' 행사의 명칭을 재고해야 한다. 분명히 '재탄생', 또는 '다시 태어난'이란 말을 써야 할 것이다.

북쪽으로 돌아가는 곳에 '애기 업은 돌'[負兒石]이 있다. 용암 굴에 흘러들어 생긴 기둥이 북풍의 거친 파도가 굴을 무너뜨려 버렸기 때문에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엄마가 애기를 업고 있는 모습 같아서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곳에는 그런 용암기둥이 또 하나 보이고 해안선이 심하게 침식 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쪽 해안가에서 자갈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세 가지 형태가 보인다. 하나는 원래 있던 검은 현무암돌, 하나는 화산탄, 다른 하나는 용암이 현무암과 어울려 굳어진 것이다.


△ 화산 박물관의 최적지, 그냥 드러나 있는 벌거벗은 화산의 모습

많은 지질학자들은 이곳을 화산 박물관의 최적지로 꼽는다. '탑상용암', '거북형 또는 돌고래형 화산탄' 등으로 소개되고 있는 세계 최대(?)의 화산탄이 널려있고, 근래에 길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화산탄을 모아 놓았다. 또 '애기 업은 돌' 같은 용암 기둥이 노출된 채로 남아 있는가 하면, 게다가 용암이 흐르는 모습을 살필 수 있는 마모되지 않은 돌들을 발견된다. 이곳의 오름 비양봉(일명 가재봉)은 본섬에 있는 다른 오름의 나이가 최소 2만5천 살인데, 비해 1천 살밖에 안된 역사시대의 기생화산이다.

돌아다니다가 물이 빠져 있으면 바위틈이나 밑을 뒤져 게나 제주도에서 보말이라 불리는 고둥을 잡는다. 돌아오면 민박집에는 보통 꽃멸치로 끓여 놓은 멜국(멸치와 호박 또는 어린 배추를 넣고 끓인 국)이 기다린다. 꽃 멸치는 통통하게 알을 밴 멸치로 기름지고 맛이 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채비를 차리고 오름 탐사를 나선다. 나서는 길목에는 가끔 노랑 무궁화인 황근(黃槿) 꽃을 목격할 수도 있다. 오름 길에는 꿩이 날고 흑염소가 놀고 소가 풀을 뜯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 연출된다.

오름은 남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쉽게 오를 수 있다. 억새와 띠가 자라고 있는 비탈길에는 소나무를 심어놓은 곳도 있고 가끔씩 보리수나무가 야생인 상태로 자라고 있다. 능선에 다다라 깔때기 모양의 분화구를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돈다. 이곳에는 수리대가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제주 오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식생을 살필 수 있다. 그 중에 하나 특이한 것이 이곳에만 자라는 비양나무다.

비양나무는 쐐기풀과의 낙엽관목으로서 줄기는 곧추 서고 높이 2m 정도로 자라며, 작은 가지는 가는데 암자색을 띠고, 어린 가지에는 가는 털이 있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고, 잎은 얇고 윗면은 약간 거칠며 뒷면은 백색의 선모(綿毛)가 밀생하거나 없으면, 길이 5∼10cm, 폭은 2∼4cm이고, 마르면 검게된다. 주맥은 3개이고 뒷면이 융기한다. 꽃은 이른봄에 피며 자웅이주이다. 본종은 따뜻한 곳에 자라는데 일본의 남쪽 섬에 분포한다. 비양나무 자생지는 제주도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양봉은 두개의 분화구가 따로 펼쳐진 희귀한 쌍분화구 화산인데, 화산탄 등 화산분출물이 섬 곳곳에 널려 있다. 섬 주변에는 천연동굴과 '시스택(Sea-stack)'으로 불리는 용암바위 원형이 잘 보존돼 지질학자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다. 등대가 있는 정상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보니까 나무와 풀이 자라지 않아 화산쇄설물인 송이가 그대로 드러나 보기 흉하게 벗겨져 있어 당국의 조치가 요구된다. 서쪽으로 나아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냥 다시 돌아 내려오는 것이 좋다.

비양도에 가면 전복죽보다는 오분작이죽이나 보말죽을 먹어보고 온다. 민박은 비양도 홈페이지에 들어가 미리 예약하며, 아예 배를 빌리는 일에서부터 식사 메뉴, 금액까지 절충해서 들어가는 것이 좋다. 나는 요즘 가족 단위나 학교 부서 단위로 1박2일 동안 단합대회 형태로 자주 간다. 토요일 오후에 출발하여 다음 날 오후 배를 타고 나온다면 딱이다. 근래에는 답사 팀을 이끌고 다녀왔다. 답사 때는 배 승선 정원이 적기 때문에 대형 버스 1대에 탈 수 있는 인원이 적당하다.

바다와 오름이 있고, 화산(火山) 공부도 할 수 있으며, 맛있는 먹거리가 풍부한, 낭만의 섬 비양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미리 메일 주시면 기꺼이 동행해 드리리다.


▲비양도 홈페이지 <제주의 마을>
http://www.cheju.go.kr/vill/menu/menu_frame.cgi?3121$

<사진> 위는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의 모습이고, 아래는 '제주오름'에서 빌려온 비양도 전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