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제주군 구좌읍(舊左邑) 기행 <1>
2001년 11월 26일. 탐라문화보존회 40여명의 식구를 거느리고 나선 답사길. 초겨울치고는 비교적 좋은 날씨다. 구좌읍은 제주시 동쪽 조천읍에 이어진 북제주군의 한 읍으로 김녕사굴(金寧蛇窟)·만장굴(萬丈窟) 등의 용암동굴지대, 비자림(榧子林)·문주란 같은 천연기념물 자생지와 철새도래지, 40개의 오름과 여러 목장, 짙푸른 바다와 별방진성 같은 유적도 있어 다양한 것들을 골고루 답사할 수 있는 곳이다.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둘로 나누어 싣는다.
♠♤♠ 비자림(榧子林)의 낙엽길, 단풍, 맑은 바람
비자림 숲길은 낙엽의 바스락거림으로 하여 더욱 낭만적이었더이다.
아직도 노란 색이 남아있는 비목나무 잎이 떨어진 자리
바람이 부는 대로 우수수 흩날리는 팽나무 잎의 황홀한 떨림
순수하게 단풍잎만 떨어져 쌓인 낙엽을 밟을 땐 별 위를 걷는 기분이었더이다.
깊은 숲 속 '새로운 천년'이라고 명명한 814세의 비자나무 주위는
이 할아버지 나무의 건재(健在)를 축복이라도 하듯
노란색과 빨간색 단풍이 모여 밝은 빛을 끌어들임으로 해서 더욱 환해지더이다.
숲길을 걸어나오면서 수백 년 된 비자나무를 스치는 신선한 바람과
형형색색의 낙엽 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더이다.
45㏊의 광대한 면적에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는 이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82-2호, 제37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었는데,
3백살부터 8백 살까지 2,570여 그루가 서로 얼려 빽빽이 자라고 있더이다.
강진 병영면, 진도 임회면, 고흥 금탑사, 사천 곤양면의 비자나무 들
모두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그 중 제일 규모가 크더이다.
예로부터 섬의 진상품으로 바쳤던 비자(榧子)는 구충제로 많이 쓰였고
음식이나 제사상에 오르기도 하였대요.
비자유를 짜면 기관지 천식이나 장 기능에 효험이 있고,
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 가구나 특히 바둑판에 명품이 많아요.
돌아올 때 사서 맛본 4년 묵은 비자주, 입안에 향기가 그득하더이다.
주목과 암수 딴 그루로 일년에 겨우 1.5㎝가량 자라나는데
나이테가 없어 정확한 수령을 알기는 어렵다대요.
사람의 나이와 비슷하게 암수 15∼20년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데
묵은해에 맺힌 열매가 다음해 가을까지 가서야 익는다 하대요.
지금 제주도 높은 지대엔 곳곳에 비자나무가 자라고 있더이다.
비자림은 나도풍란, 콩짜개란,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난과 식물의 보고
사이사이 천선과·자귀나무·아왜나무·머귀나무·후박나무·석위·단풍
땅 위엔 제주도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천남성이나 양하도 자생하고 있더이다.
비자의 표면은 초록빛에 가는 줄이 희미하고 크기는 손가락 한마디만 한데
손으로 눌러보면 약간 말랑말랑하기도 하여 마치 굵은 다래처럼 생겼더이다.
그 옛날엔 한라산 기슭 곳곳에 몇 아름이 되는 비자나무가 빽빽이 자라
목재와 가구, 그리고 제주도의 뗏목 테우 만드는데 한 몫을 하였는데
고려 때 섬이 100년 간 원의 지배를 받을 때, 일본을 치는 배 짓노라 다 베어내고
비자나무 목재가 좋다는 바람에 이곳 저곳에서 압력을 놓는 바람에
그 폐해로 조선 영조 39년(1762)엔 진상이 일시 중단되기도 하였더이다.
▲ 둔지오름, 아직도 억새의 물결이 일렁이는 곳
금년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새벽에 올랐던 곳. 둔지오름은 비자림에서 북서쪽으로 약 1.5km 지점 만장굴로 내려가는 길가에 홀로 우뚝 선 오름이다. 해발 282.2m, 산체 높이(비고) 152m, 넓이 360,185㎡으로, 비교적 가파르지만 등성이를 따라가면 큰 힘 안들이고 오를 수 있다. 대형 버스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한 300m쯤 들어갔다가 차를 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곳곳에 아직도 씨가 다 날아가 버리지 않고 남아 있는 억새들이 길 양쪽에서 우리를 환영한다.
주변엔 제주도 특유의 무덤과 무덤을 두른 4각의 산담이 방향을 조금씩 달리한 채 여기저기 펼쳐져 있어 이색적이다. 이곳 둔지봉 주변에 명당 자리가 있다고 하여 석물과 비석을 세워 치레한 무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몰려 있어 장관을 이룬다. 오름 등성이로 들어서면서 키를 넘는 억새가 사방에 퍼져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오늘 이곳에 오기를 잘 했구나 싶어 환영하는 것 같다. 억새 속으로 들어 갈수록 운치가 더해지고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울긋불긋한 행렬이 보기가 그만이다.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먼저 왔던 등산객들이 경치가 참 좋다고 인사하며 내려온다. 제일 먼저 정상에 올라 산불방지 초소에 있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나눈다. 어느 오름 초소와 통화를 하는지 무전기를 들고 열을 올리고 있다. 도착하는 사람들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환호성을 올린다. 멀리 북쪽으로 펼쳐진 바다, 행원리에 있는 풍차 발전기가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그래서 우도(牛島)인가? 멀리 일출봉 건너에 우도가 소처럼 누워 있다.
일행이 다 오기를 기다려 남쪽을 향해 모두 앉혀 놓고 오름에 대해 설명한다. 둔지봉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남쪽 분화구 방향으로 혀를 내민 형태(tongue-type)의 말굽형 화구를 갖고 있는 화산체 덩어리다. 화구 앞쪽에는 용암암설류(熔岩岩屑流)라 하여 화산 폭발로 생긴 분출물이 흘러 이루어진 작은 구릉들이 마치 경주의 왕릉들처럼 퍼져 있고, 그 사이사이로 돌담을 두른 제주 특유의 무덤과 억새가 어울려 묘한 경치를 연출하고 있다.
북쪽 비탈에는 해송이 주종을 이루면서 숲을 이루고, 남쪽으로 안온하게 둘러쳐진 사면은 해송이 듬성듬성 자라는 가운데 억새밭을 이루고 있다. 눈앞에는 방금 다녀온 비자림이 다랑쉬오름과 돝오름 사이에 펼쳐지고, 사방은 너른 들판으로 경계를 알리는 돌담이 갖가지 모양으로 무늬를 이루어 거기에 심어진 나무와 작물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내려오면서 일렁이는 억새의 물결에 취해 멀미를 느낄 정도였다. 억새! 너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무엇을 향한 몸부림이더냐.
□ 사진 위는 비자나무에 비자가 달린 모습이고, 아래는 금년 1월1일 소나기가 찍은 '둔지봉 일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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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26일. 탐라문화보존회 40여명의 식구를 거느리고 나선 답사길. 초겨울치고는 비교적 좋은 날씨다. 구좌읍은 제주시 동쪽 조천읍에 이어진 북제주군의 한 읍으로 김녕사굴(金寧蛇窟)·만장굴(萬丈窟) 등의 용암동굴지대, 비자림(榧子林)·문주란 같은 천연기념물 자생지와 철새도래지, 40개의 오름과 여러 목장, 짙푸른 바다와 별방진성 같은 유적도 있어 다양한 것들을 골고루 답사할 수 있는 곳이다.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둘로 나누어 싣는다.
♠♤♠ 비자림(榧子林)의 낙엽길, 단풍, 맑은 바람
비자림 숲길은 낙엽의 바스락거림으로 하여 더욱 낭만적이었더이다.
아직도 노란 색이 남아있는 비목나무 잎이 떨어진 자리
바람이 부는 대로 우수수 흩날리는 팽나무 잎의 황홀한 떨림
순수하게 단풍잎만 떨어져 쌓인 낙엽을 밟을 땐 별 위를 걷는 기분이었더이다.
깊은 숲 속 '새로운 천년'이라고 명명한 814세의 비자나무 주위는
이 할아버지 나무의 건재(健在)를 축복이라도 하듯
노란색과 빨간색 단풍이 모여 밝은 빛을 끌어들임으로 해서 더욱 환해지더이다.
숲길을 걸어나오면서 수백 년 된 비자나무를 스치는 신선한 바람과
형형색색의 낙엽 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더이다.
45㏊의 광대한 면적에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는 이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82-2호, 제37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었는데,
3백살부터 8백 살까지 2,570여 그루가 서로 얼려 빽빽이 자라고 있더이다.
강진 병영면, 진도 임회면, 고흥 금탑사, 사천 곤양면의 비자나무 들
모두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그 중 제일 규모가 크더이다.
예로부터 섬의 진상품으로 바쳤던 비자(榧子)는 구충제로 많이 쓰였고
음식이나 제사상에 오르기도 하였대요.
비자유를 짜면 기관지 천식이나 장 기능에 효험이 있고,
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 가구나 특히 바둑판에 명품이 많아요.
돌아올 때 사서 맛본 4년 묵은 비자주, 입안에 향기가 그득하더이다.
주목과 암수 딴 그루로 일년에 겨우 1.5㎝가량 자라나는데
나이테가 없어 정확한 수령을 알기는 어렵다대요.
사람의 나이와 비슷하게 암수 15∼20년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데
묵은해에 맺힌 열매가 다음해 가을까지 가서야 익는다 하대요.
지금 제주도 높은 지대엔 곳곳에 비자나무가 자라고 있더이다.
비자림은 나도풍란, 콩짜개란,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난과 식물의 보고
사이사이 천선과·자귀나무·아왜나무·머귀나무·후박나무·석위·단풍
땅 위엔 제주도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천남성이나 양하도 자생하고 있더이다.
비자의 표면은 초록빛에 가는 줄이 희미하고 크기는 손가락 한마디만 한데
손으로 눌러보면 약간 말랑말랑하기도 하여 마치 굵은 다래처럼 생겼더이다.
그 옛날엔 한라산 기슭 곳곳에 몇 아름이 되는 비자나무가 빽빽이 자라
목재와 가구, 그리고 제주도의 뗏목 테우 만드는데 한 몫을 하였는데
고려 때 섬이 100년 간 원의 지배를 받을 때, 일본을 치는 배 짓노라 다 베어내고
비자나무 목재가 좋다는 바람에 이곳 저곳에서 압력을 놓는 바람에
그 폐해로 조선 영조 39년(1762)엔 진상이 일시 중단되기도 하였더이다.
▲ 둔지오름, 아직도 억새의 물결이 일렁이는 곳
금년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새벽에 올랐던 곳. 둔지오름은 비자림에서 북서쪽으로 약 1.5km 지점 만장굴로 내려가는 길가에 홀로 우뚝 선 오름이다. 해발 282.2m, 산체 높이(비고) 152m, 넓이 360,185㎡으로, 비교적 가파르지만 등성이를 따라가면 큰 힘 안들이고 오를 수 있다. 대형 버스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한 300m쯤 들어갔다가 차를 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곳곳에 아직도 씨가 다 날아가 버리지 않고 남아 있는 억새들이 길 양쪽에서 우리를 환영한다.
주변엔 제주도 특유의 무덤과 무덤을 두른 4각의 산담이 방향을 조금씩 달리한 채 여기저기 펼쳐져 있어 이색적이다. 이곳 둔지봉 주변에 명당 자리가 있다고 하여 석물과 비석을 세워 치레한 무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몰려 있어 장관을 이룬다. 오름 등성이로 들어서면서 키를 넘는 억새가 사방에 퍼져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오늘 이곳에 오기를 잘 했구나 싶어 환영하는 것 같다. 억새 속으로 들어 갈수록 운치가 더해지고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울긋불긋한 행렬이 보기가 그만이다.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먼저 왔던 등산객들이 경치가 참 좋다고 인사하며 내려온다. 제일 먼저 정상에 올라 산불방지 초소에 있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나눈다. 어느 오름 초소와 통화를 하는지 무전기를 들고 열을 올리고 있다. 도착하는 사람들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환호성을 올린다. 멀리 북쪽으로 펼쳐진 바다, 행원리에 있는 풍차 발전기가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그래서 우도(牛島)인가? 멀리 일출봉 건너에 우도가 소처럼 누워 있다.
일행이 다 오기를 기다려 남쪽을 향해 모두 앉혀 놓고 오름에 대해 설명한다. 둔지봉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남쪽 분화구 방향으로 혀를 내민 형태(tongue-type)의 말굽형 화구를 갖고 있는 화산체 덩어리다. 화구 앞쪽에는 용암암설류(熔岩岩屑流)라 하여 화산 폭발로 생긴 분출물이 흘러 이루어진 작은 구릉들이 마치 경주의 왕릉들처럼 퍼져 있고, 그 사이사이로 돌담을 두른 제주 특유의 무덤과 억새가 어울려 묘한 경치를 연출하고 있다.
북쪽 비탈에는 해송이 주종을 이루면서 숲을 이루고, 남쪽으로 안온하게 둘러쳐진 사면은 해송이 듬성듬성 자라는 가운데 억새밭을 이루고 있다. 눈앞에는 방금 다녀온 비자림이 다랑쉬오름과 돝오름 사이에 펼쳐지고, 사방은 너른 들판으로 경계를 알리는 돌담이 갖가지 모양으로 무늬를 이루어 거기에 심어진 나무와 작물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내려오면서 일렁이는 억새의 물결에 취해 멀미를 느낄 정도였다. 억새! 너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무엇을 향한 몸부림이더냐.
□ 사진 위는 비자나무에 비자가 달린 모습이고, 아래는 금년 1월1일 소나기가 찍은 '둔지봉 일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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