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 제243호 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
▲ 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
통일대불이 있는 곳에서 다시 입구로 돌아 나와 보물 제243호 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을 보고 사진을 찍는 동안 날씨가 어둑해졌다. 동화사 입구의 오른쪽 바위에 부조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좌상은 높이 106cm에 얼굴은 약간 살이 찐 편으로 풍만하며 각이 진 넓은 어깨에는 통견의 법의를 걸쳤고, 옷주름은 좁은 간격으로 복잡하게 늘어져 있다.
특히 가슴 위로 보이는 대각선의 내의와 띠매듭 등은 통일신라 말기 불상의 전형적인 법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두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앉아 있는 자세는 완전한 결가부좌의 모습이 아니라 오른쪽 다리를 대좌 위에 비스듬히 내려놓은 특이한 형식을 취했다. 광배는 2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표현했으며, 그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대좌는 앙련과 복련이 서로 맞붙어 있으며 연화대좌 밑으로는 구름무늬가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어 마치 불상이 천상의 정토세계에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마애불상은 전반적으로 얕은 저부조로 표현되어 부드럽고 섬세한 조각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나 얼굴의 굳어진 표정, 비교적 경직된 어깨선, 장식적인 광배와 대좌의 표현 등은 통일신라 말기 불상에 나타나는 양식적 경향으로 대체로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이숙희)
불교미술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이 보아도, 조금 높은 곳에 앉아 있는 단아한 불상의 자태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보는 터라 더욱 진한 감동에 사로잡혀 있다가 일행이 다 보기를 기다려 조금 더 걸어 바로 버스가 지나다니는 길가로 나왔다. 우리는 내일 다시 이 팔공산에 올라야 하겠기 이곳 관광단지에서 하루를 묵기로 하고 아침에 가방을 챙기고 간 조카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
* 법고와 목어를 두드리는 장면(위)과 동화사 대웅전(가운데), 조사전(아래)
▲ 물침대에서의 하룻밤
모르면 물어서라도 그곳에서 관광단지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야 할 것을 간판에 오른쪽으로 500m 들어가면 된다고 표시된 것만 믿고 그냥 걸은 것이 화근이었다. 오랫동안 걷지 않았던 회원들이 있을 뿐더러 하루 종일 산을 타고 내려온 뒤 그 넓은 동화사를 구경하고 내려온 터라 약간 오르막으로 돌며 오르는 길이 쉬울 리가 없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버티는 회원들에게 조금만 더 가자고 해서 겨우 단지 입구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8시가 지나가고 아직 저녁 먹을 식당과 잠잘 숙소도 정하지 못한 채였다. 입구에 식당 몇 곳의 이름이 적혀 있어 되는 대로 114에 전화하여 식사가 되느냐 주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서도 불만이 많았다. 이렇게 간판을 세울 양이면 조금 더 신경 써 작게라도 전화번호를 써놓든지 조금 더 친절히 주음식을 적어놓았다면 처음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조금 더 어려운 걸음을 걸어 첫 음식점인 ‘팔육식당’을 보니 팔공산의 주 메뉴인 백숙부터 버섯전골까지 다 있고 또 영업을 한다길래 우선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맥주, 도토리묵에다 동동주를 부르고, 백숙을 세 마리 시키려니까 조카사위가 수박과 청사과를 들고 와 가방들을 내려놓는다. 차가 없으면 한 잔 같이 하고 가라 할 것을, 그렇지 못하고 저녁 식사는 했다고 해서 갖고 간 감귤 한 상자를 들려 그냥 보냈다.
시원한 맥주와 동동주로 갈증을 풀고 백숙을 먹으며 주인아저씨께 숙소를 부탁했더니 뉴서울모텔을 싼 값으로 빌어주었다. 10명중 부부가 있어 한 방 쓰고 나머지는 2인 1실로 하여 1인당 1만원씩에 빌렸는데 좀 작은 편이지만 깨끗해서 좋았다. 슈퍼에서 술과 안주를 사다 방에 판을 벌리고 적당히 마신 뒤 잠을 청했다. 물침대여서 따뜻하게 데워 잤더니 아침에 몸이 개운하게 풀렸다.
* 팔공산 동화사 통일대불(위)과 봉황문(아래)
▲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전날 발톱에 이상이 생긴 회원에게 케이블카를 타고 가서 정상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나머지 회원들도 하루 종일 걸을 생각에 지레 질렸는지 모두 타고 가자고 해서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가 묵었던 모텔은 오늘 주말이라 세 번 손님을 받는다고 방을 비워달라고 해서 식당아저씨가 와서 짐과 사람을 태워 날랐다. 나오면서 잘 살피니, 아래층 차고에 차를 세워 셔터를 내리게 되었고, 2층에 물침대와 샤워시설이 있는 전형적인 러브호텔 구조다.
케이블카는 오전 9시 45분부터 일몰시까지 운행하도록 되어 있어 느긋하게 버섯전골로 아침을 즐기고 짐을 식당에 맡긴 채 배낭만 메고 케이블카 운행 장소로 갔다. 개인 왕복은 6천원, 편도는 4천원이다. 단체는 25인 이상이라야 하는데 5백원이 할인된다. 케이블카는 정원이 6인승이며 24대가 40초 간격으로 자동 왕복 순환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숲의 경치를 즐기며 전망대까지 타고 갔다.
내려서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동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도에는 동봉까지 2시간으로 되어 있으나 힘들어하는 회원들이 있어 천천히 오른다. 시원한 바람이 제법 불어줘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바위 위에 올라 전망이 좋은 곳에서 사방을 조망하면서 올랐다. 마지막 정상 부분은 멋대로 뚫어놓은 여러 등산로의 출입을 제한시켜 나선형으로 돌아 오르게 만들어 놓았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는데 캔맥주와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달콤한 얘기를 적어놓은 것을 보며, 어제는 그렇게 마시고 싶은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예상외의 상황에 놀랐다. 케이블카 출발점에서 캔 맥주 하나에 2천원씩 주고 지고 올라온 나는 민망해졌다. 다행히 3천원씩에 팔고 있어 5천원 벌었다는 생각만 하였으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것을 팔아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스럽다. 정상 한 쪽 바위를 차지하고 앉아 팔랑거리다 아무데나 와서 앉는 잠자리 떼와 함께 팔공산의 경치를 즐겼다.
* 케이블카에서 등산로로 가는 곳의 장승(위)과 첫바위(가운데), 비로봉과 동봉(아래)
▲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의 비애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은 오래 전부터 군부대 레이다 기지와 방송국 안테나, 각 이동통신사가 마구 점령해버려서 보기가 사납고 등산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산 정상을 문명이라는 흉물스런 괴물이 저렇게까지 유린했으니, 자연을 파괴한 인간의 이기심이 더 밉다. 어쩔 수 없이 이곳 동봉(東峰:1,155m)에서 정상 기분을 내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오랫동안 지체하며 멀리 시가지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한라산은 산맥의 흐름에 의하지 않고 단일봉으로 우뚝 솟았기 때문에 조금 단순한 편인데 이 팔공산은 산맥으로 이어졌으면서 여러 곳으로 그 줄기를 뻗쳐 있어 그 산세가 사뭇 장엄하다. 그 산세에 값하기 위해서는 이제 비로봉을 조금 정비할 필요가 있겠다. 각종 시설을 자연친화적으로 하되 미관상 산에 어울리는 선과 색으로 바꿔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
서봉으로 갈 때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형태를 취하지 않고 비로봉 능선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는데, 가까이 접근해보니 공사를 해놓은 자들의 행패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남은 자제나 폐자재를 밖으로 밀어 방치했는가 하면 그곳에서 나왔을 성 싶은 온갖 자재 부스러기가 뒹굴고 쓰레기가 난무한다. 아무도 안 보는 곳이라고 철조망 밖으로 밀어버린 비닐이나 스치로폼 같은 썩지 않은 것들이 기분 나쁘고 여름이라 썩어 냄새나는 것도 많다.
사실이지 이렇게 시설했으면 미안해서라도 철조망 밖으로 우회하는 길을 만들어 주고 철조망이 안보이고 시설 부분을 조금이라도 내보이지 않게 주위와 어울리는 큰 나무를 심어 모처럼 찾은 외래 등산객에게 이런 야만스런 행태를 보이지 말아야 했다. 아무리 산이 좋아도 정상을 저 모양으로 두면 얼굴에 철판을 깐 것처럼 최소한의 양심까지 다 팔아치운 꼴이 되고 말 테니까….
* 동봉에서 바라본 케이블카 도착점(위)과 휴식 중(가운데), 동봉에서 이어지는 암벽(아래)
▲ 동봉과 서봉 사이의 마애불들
동봉에서 한참 동안 쉬며 전망을 즐긴 일행은 갈 길이 먼지라 일어서서 서봉으로 향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필시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코스이기에 거의 비슷한 높이인 비로봉 능선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바로 비로봉 쪽으로 내려오다가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20호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을 만났다. 앞에 조금 여유가 있어 공터에 서서 사진을 찍고 올려다본다.
커다란 화강암 바위에 거의 입체상에 가까울 정도로 깊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높이가 6m는 됨직한 거대한 불상으로, 높은 곳에서 서쪽을 향해 바로 서 있다. 눈썹 사이에 점이 없고, 풍만한 두 볼이 입가의 미소와 잘 조화되어서 소박하면서도 자비스러운 느낌을 주고, 목은 거의 몸통에 붙어 있었으며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법의(法衣)나 표정 등의 조각 수법으로 보아 갓바위와 같은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어렵게 비로봉 철조망 울타리를 통과해 내려가다 이상한 벌레에 물렸다. 겨우 능선까지 빠져 나가니 바위가 나타났다. 거기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진불암 쪽 전망이 좋아 조금 쉬고 내려가다가 오른쪽 바위에 마애불이 있는 걸 보고 내려갔더니, 유형문화재 제3호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磨崖藥師如來坐像)이 있었다. 머리부분이 크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귀와 시원스럽게 생긴 콧대와 힘 있는 턱 그리고 뚜렷한 눈썹이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어 위엄을 갖추고, 입가의 잔잔한 미소에서는 자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소발의 머리에 큼직한 육계,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옷자락이 왼쪽 팔을 거쳐 발목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왼쪽 손은 자연스럽게 무를 위에 놓았는데 약합인 듯한 지물을 잡고 있는 것을 보니 약사여래불인 것 같다. 옷주름의 표현 등에 도식화된 면이 엿보여 9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 위로부터 동봉석조약사여래입상, 팔공산마애약사여래불좌상과 그옆의 기도처
▲ 동봉과 다른 동봉의 면모
팔공산은 그 갈래가 여럿이지만 중추를 이루는 능선은 관봉에서 시작하여 능선재, 신령재, 염불봉, 동봉, 비로봉, 오도재, 서봉, 파계봉, 한티재로 이어진다. 그 중 동봉은 능선에서 조금 비껴서 있는데 비해 서봉은 바로 능선에 위치해 있다. 또, 동봉은 따로 우뚝 솟은 돌로 이루어진 봉우리인데 비해 서봉(西峰, 1,041m)은 일부에만 바위가 박혀 있다. 우리가 서봉 정상에 있는 동안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서봉에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기로 계획되어 있어 한쪽 옆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사이에도 많은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가길래 인사를 주고받으며 코스를 물어보기도 하였다. 우리가 원래 계획한 바로는 칼날능선으로 파계봉과 파계재를 지나 한티재에서 휴게소를 경유하여 팔공산도립공원 사무소에서 하산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연 이틀 강행군은 무리라고 하여 내일 금오산 산행을 생각해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내려가 쉬기로 하였다.
그래서 가까운 수태골을 지목했고 길이 좀 거칠기는 하지만 빨리 갈 수 있는 코스라는 조언을 듣고 그곳으로 내리기로 결정했다. 서봉에서 바라보니 그 옆에 있는 돌로 중첩된 봉우리가 아주 장관이었다. 수태골이란 이름의 연유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이 이설들만 남아 있는데, 코스가 짧아 많은 등산객이 오를 때 이용한다고 했다.
팔공산(八公山)이란 지명도 비슷하다. 옛 기록들에는 ‘공산(公山)’이 보이는데 김정호의 대동여지전도나 신증동국여지승람부터 팔공산(八空山)이라 했다. 그런데, 그 8이라는 숫자의 의미로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는 고려 왕건이 견훤을 맞아 일전을 벌이다가 대패하였는데, 그 와중에 신숭겸, 김락 등 8장수가 이곳에서 전사하였다 하여 팔공산이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 왕건이 몸을 피한 절은 은해사(銀海寺)였다.
* 동봉 정상(위)과 그곳에서 내려가는 코스를 가늠하는 회원들(아래)
▲ 수태골로 하산, 휴게소까지
등산객이 일러준 수태골을 지도에서 확인하며 방향을 확인하고는 앞장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다시 되돌아서 동봉쪽으로 가다가 하산하는 것이 정 코스지만 이쪽으로도 가도 된다는 말을 믿고 길을 찾으며 내려간다. 처음엔 거의 등로의 구분이 힘들었지만 물줄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길이 제법 확연해져 좀 전에 보았던 바위 무더기로 된 멋진 봉우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아직은 걸을 만한 골짜기여서 가끔 엎드려 계곡물을 마시며 내려가노라니까 오른쪽으로 웅장한 봉우리가 자태를 나타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미륵장군바위로 부르는 것 같다. 거기서부터 등산로가 바위계곡의 가파라 오르는 것보다 내리는 것이 더 위험하다. 그 바위 봉우리의 높이도 엄청나려니와 가파른 길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암반이다. 물줄기는 그 바위를 타고 곡예하듯 신나게 달린다.
주춤주춤 걷다보니 경사가 심한 곳에 밧줄이 메어져 있어 유격 훈련하듯 내려가는데 무섬증이 많은 여자 회원들이 안절부절 못한다. 거꾸로 내려와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바로 내려오다가 중심을 잃고 몇 분이 주저앉으며 엉덩이와 다리에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다. 앞선 팀들은 어디까지 갔는지 도무지 그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걷기를 재촉하여 경사가 거의 없는 곳에서 모두 만나 쉬어가기로 하고 잠시 발을 담갔다.
시간은 아직 4시도 안되었다면서 느긋하게 내려오는데 주변 계곡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물이 있는 곳마다 북새통을 이루었다. 토요일을 맞은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이곳까지 밀려온 것이다. 우리는 어제의 시행착오도 있는 터라 지레 겁을 먹고 거기 현수막에 걸려 있는 콜택시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3천원이면 오겠다고 해서 불렀더니 차가 부족해 두 대만 와서 식당까지 5천원씩 받았다. (계속)
* 수태골로 내려가는 곳의 암벽(위)과 수태골 계곡을 찾아 몰린 피서객들(아래)
♬ 쇼스타코비치 -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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