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에 있는 오름 368개 중 두 번째로 올랐던
고등학교 1학년 때였으니까 3∼40년 전 일이다. 우리 마을 동쪽에 있는 과오름은 초등학교 때 뒷동산 오르듯이 수없이 올랐었는데, 이 괴오름은 호기심에 큰마음 먹고 두 번째로 올랐던 오름이다. 번쇠 보러 가서였다. '번쇠'는 여름 한 철 뜻 있는 사람끼리 황소들을 모아 번갈아 가면서 돌보는 풍습이다. 밭갈이가 끝나고 날씨가 더워지면 마을의 소들이 못 견뎌 하는데, 이 때 황소 10마리 정도를 단위로 목초지를 빌려, 한 집에서 2박3일씩 보살핀다.
괴오름은 동서봉 두 개의 봉우리로 이어져 있는데, 그 뒤에 있는 다래오름을 포함한 그 주변이 곽지리, 금성리, 봉성리 3리 공동목장이었다. 이곳은 여름 한 철 3개 마을의 암소와 송아지를 놓아기르는 터전이었다. 이 때가 되면 소를 돌보는 사람(쇠테우리)을 정해 품삯으로 보리 말이나 주어 관리하게 하였다. 그런데, 소가 한 보름 정도 목장에서 지내게 되면, 진드기가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 달라붙어 빵빵하게 피를 뽑아 먹고 강낭콩만큼 큰 부그리가 된다.
중학생 정도가 되면 이 진드기 구제를 위해 방학이나 일요일을 택해 이곳 목장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서 걸어 이곳까지 오는데는 3시간 정도 걸렸으므로 새벽조반을 해먹고 출발해야만 했다. 부그리는 털개(막대 끝에 쇠를 둥그렇게 박은 것)로 떼낼 수가 있으나 어린 진드기는 안 떨어진다. 그러면, 살충제 DDT나 BHC 가루약을 물에 개어서 헝겊에 묻혀 진드기에 바르면 다 죽는다. 그 일이 끝나면 산딸기를 따먹거나 말똥버섯을 따고 날이 어두울 새라 황급히 돌아와야 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서쪽 봉우리 끝이 타진 것처럼 보이는 바로 눈앞의 괴오름에 오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도무지 시간이 허락지 않아 못 올랐는데, 쇠번 보러 와서 시간을 내어 오른 것이다. 그 때만 해도 나무가 덜 자라고 잡풀은 소가 다 뜯어 먹어버려 쉽게 오를 수 있었고, 뒤에 꼭 북처럼 매달린 바위를 보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문에 이 서쪽 봉우리가 '북돌아진오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얘기가 쉽게 수긍이 갔다.
△ 북돌아진오름 앞으로 넉넉한 벌판이
새로 만든 도로 때문에 헷갈려 새별오름 입구로 내려갔다가 나와 다시 이시돌 목장 입구 왼쪽 다리 밑으로 가로질러, 나인브릿지 골프장 입구에서 나와 다시 동쪽으로 가다가 두 봉우리 중간쯤 되는 목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들어간다. 동쪽 봉우리가 표고 653.3m, 비고 103m로 서쪽 봉우리 표고 643m, 비고 118m보다 높으나, 어찌 보면 지대가 낮은 곳에 있는 서봉이 더 높아 보인다. 면적도 동쪽 봉우리가 379,587㎡로 서쪽 봉우리 338,981㎡보다 넓지만 서쪽 봉우리가 길쭉하고 가까이에 있어 더 커 보인다. 이렇게 사람의 눈은 쉽게 착각할 수 있음에도 고집스레 밀고 나가는 수가 많다.
우리는 먼저 서쪽 봉우리를 목표로 나아갔다. 두 봉우리를 구분하느라 요즘에는 동쪽을 괴오름, 서쪽을 북돌아진오름으로 부르나 이는 잘못이다. 관광도로에서 바라보면 두 오름이 기형아처럼 허리가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고양이같다 하여 '고양이'의 옛말 '괴'를 붙여 '괴오름' 또는 '괴미오름', 한자로는 '묘악(猫岳)'으로 부르고 있다. 마을에서 대여해준 목장은 개간 하려는 듯 정화조 퍼낸 것을 곳곳에 뿌려놓아 거름 냄새가 진동한다. 길 건너 정면으로 정월 대보름 불꽃 축제가 열리는 새별오름이 있어, 그 준비를 위해 새겨 놓은 글씨가 선명하다. 가운데 노란 대보름달, 바로 아래에 '2002 제주 월드컵', 아래로 크게 '무사안녕'.
북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안부 왼쪽 등성이를 겨냥, 철조망을 통과, 무덤 옆 소나무 밭으로 들어간다. 곳곳에 꾸지뽕나무, 찔레나무, 청미래덩굴, 섬쥐똥나무, 복분자나무 같은 가시 넝쿨나무들이 길을 막는다. 소나무 숲이 끝나는 곳엔 서어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 팽나무 같은 자연림이 형성되고, 그 그늘에 제주조릿대가 자리잡았다. 햇볕이 드는 곳에는 상산과 산딸기가 마구 엉키어 걸음을 방해한다. 2년 전 여름에 올라올 때는 한라개승마와, 촛대승마, 한라돌쩌귀, 새우란이 많이 피어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50분여 만에 서쪽 오름 정상에 도착하였다. 남쪽으로 커다란 암석이 북이 매달린 것처럼 절벽을 이루었고, 조금 내려간 건너편에 다시 바위가 박힌 봉우리가 거의 같은 높이로 솟았다. 가는 도중에 노랗게 피어 있는 복수초가 보인다. 새우난도 있어 줄기를 더듬으니, 어김없이 꽃 순이 뾰족하게 숨어 있다. 산딸기 가시를 헤치며 서쪽 봉우리로 가서 그쪽에 있는 오름들을 살피고 내려와 잠시 쉴 자리를 보았다. 꽤 쌀쌀한 날씨에 북서풍을 막을 수 있는 두 봉우리 사이, 비탈지지만 남쪽으로 띠가 부드럽게 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바람도 없고 햇빛이 부드럽게 비쳐 그만이다.
눈 아래 넉넉한 벌판이 자리를 잡고 있어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때마침 가는 눈발이 가루처럼 날려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앞에는 지난 주 복수초를 보러 갔던 폭낭오름이 의젓하게 앉아 있고, 뒤로 빈네, 이돈이가 그 뒤의 서영아리를 우러른다. 그 오른쪽으로는 왕이메, 돔박이, 괴수치가, 건너에 지난주에 올랐던 족은대비악, 무악 건너 대병악, 소병악이 능선이 곱게 보인다. 왼쪽 벌판 너머로 다래오름, 돌오름, 한대오름, 노루오름, 삼형제오름, 위로 한라산이 어슴프레하게 보인다.
♣ 두더지의 애달픈 사랑의 전설이 담긴 복수초(福壽草)
옛날, 하늘나라에 크노멘 공주라는 아름답고 젊은 여신이 살고 있었다. 공주의 나이가 차자 아버지인 하느님은 시집보낼 일 때문에 고민을 하였다. 하늘나라에는 젊은 남신(男神)들이 많이 있었는데, 하느님은 그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생각했다. 꽃신은 착하지만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냇물신은 아름답지만 툭하면 제멋대로 날뛰고, 원숭이신은 똑똑하지만 버릇이 없고, 새신은 날쌔지만 말이 많고, 물고기신은 부지런하지만 가난하고, 산신은 부자지만 터무니없는 겁쟁이.
한참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고른 것은 두더지신이었다. 두더지는 용감해서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웠고 날렵하고 똑똑하였다. 게다가 착하고 산신보다 땅을 많이 가진 부자였으므로. 두더지신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갖고 있었다. 하늘나라에서 땅속까지 거의 두더지 신의 땅이었다. 그러나 용감하고 똑똑하고 착하고 부자인 두더지에게도 딱 한 가지 결점이 있었으니, 젊은 신들 중에서 가장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마음만 올바르고 착하면 겉모습은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 두더지 신을 공주의 신랑감으로 정했다. 하느님은 두더지를 찾아가서 딸 크노멘 공주와 결혼해 줄 것을 부탁했다. 두더지는 기뻐하며 약속의 증표인 보도(寶刀)를 내놓아 하느님의 보도와 교환하고 결혼을 맹세했다. 그러나, 공주는 하늘나라에서 제일 못생긴 두더지와 결혼해야 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하느님이 달랬지만 막무가내였다. 공주는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의 궁전을 뛰쳐나가기까지 했다.
공주가 싫어하는 것도 모르고 두더지는 매일같이 선물을 보냈다. 봄에는 두더지의 영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을, 여름에는 북쪽 땅에서 잘라 온 얼음으로 만든 백조를, 가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 열매를, 겨울에는 공주의 모습을 수놓은 비단옷을 보냈다.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두더지는 정성을 다하여 옷을 짰다. 그 다음은 금비녀를 보냈다. 조그맣고 빨간 돌로 공주의 이름을 새긴 아름다운 비녀였다. 억지로라도 두더지와 혼인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하느님은 보도를 교환한 지 300일이 되는 날, 결혼을 선언하였으나 듣지 않고 도망쳐버렸다.
어둡고 추운 겨울밤, 공주는 추워 떨면서 곰에게 가서 도와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어 소나무, 북풍에게도 부탁했으나 마찬가지였다. 화가 난 아버지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딸에게 벌을 내렸다. 그러자 공주는 아름다운 젊은 여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금색의 조그만 꽃이 되어 버렸다. 눈 속에서 태어난 그 꽃은 복수초라고 이름하였다. 흰 눈이 쌓인 날 아침 복수초 주위에 발자국이 많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꽃이 되어 버린 공주를 지금도 그리워하는 두더지의 발자국이다. 금색의 꽃이 숨어 버리지 않도록 두더지는 밤새도록 복수초 주위의 눈을 쓸고 있는 것이다.
♧ 괴오름에서 전국으로 띄우는 꽃소식
일행 16명은 1년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일거에 다 해소시킬 수 있었다. 더구나 거기서 마신 캔 맥주의 시원함과, 구박사가 자져온 좁쌀 청주의 짜릿한 맛은 새로운 에너지를 팍팍 생성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산에 오르면 지위의 높낮음도 없고, 돈이 있고 없음도 가리지 않고, 꼭 같은 자연인으로 돌아가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이 좋다는 오늘 처음 합류한 양 선생의 얘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시애틀에 교환 교수로 다녀온 김 교수님도 시차도 잊은 듯 싱글벙글이다. 이런 맛에 이것저것 다 뿌리치고 일요일이면 산을 오르는가 싶다.
동쪽 능선으로 비스듬히 내려와 두 오름이 마주치는 곳에서 동쪽 봉우리를 향해 오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아래로 내려오다 길을 찾아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복수초 두 송이를 신호로 이 오름은 완전히 복수초 군락지이다. 마른 나뭇잎 속에 숨어 있어 밟지 않고는 한 걸음도 옮기기 힘들다. 이 꽃은 어떻게 번식 하길래 온 산을 이렇게 점령하고 있는지, 꽃말이 '영원한 사랑'인 복수초는 아이누의 전설(傳說)에서처럼 땅 속을 기어야만 하는 얄궂은 공주의 운명을 타고 난 것일까?
괴오름 동봉 정상에서 뭍으로 꽃소식을 전해본다. 매일 오르는 제주시 해안에 위치한 별도봉에는 개불알꽃과 쇠별꽃이 한창이고, 요즘 들어 미나리아재비 노랑꽃이 늘어간다. 양지쪽 일찍 파종한 유채밭에도 꽃이 피기 시작한지 오래고, 지난주에 마을에 핀 매실나무와 앵두나무 꽃을 확인했다. 오늘 지방지 조간에 실은 서귀포 어느 민가에 피어난 하이얀 목련꽃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해발 653.3m 괴오름 정상에 노랗게 피어난 복수초 꽃잎에 한참 동안 눈을 맞추었다가 전국으로 꽃소식[花信]을 전하노라.
(2002. 2. 10.)
<동반자> 고길홍, 변신규, 강부언, 구웅서, 오창홍, 송연심, 유인심, 양영태, 이창현, 김영임, 고제량, 장성희, 김승기, 김동한, 양순열(15명)
<사진> 위는 복수초이고, 아래는 괴오름 서봉 일명 '북돌아진오름' 전경.


고등학교 1학년 때였으니까 3∼40년 전 일이다. 우리 마을 동쪽에 있는 과오름은 초등학교 때 뒷동산 오르듯이 수없이 올랐었는데, 이 괴오름은 호기심에 큰마음 먹고 두 번째로 올랐던 오름이다. 번쇠 보러 가서였다. '번쇠'는 여름 한 철 뜻 있는 사람끼리 황소들을 모아 번갈아 가면서 돌보는 풍습이다. 밭갈이가 끝나고 날씨가 더워지면 마을의 소들이 못 견뎌 하는데, 이 때 황소 10마리 정도를 단위로 목초지를 빌려, 한 집에서 2박3일씩 보살핀다.
괴오름은 동서봉 두 개의 봉우리로 이어져 있는데, 그 뒤에 있는 다래오름을 포함한 그 주변이 곽지리, 금성리, 봉성리 3리 공동목장이었다. 이곳은 여름 한 철 3개 마을의 암소와 송아지를 놓아기르는 터전이었다. 이 때가 되면 소를 돌보는 사람(쇠테우리)을 정해 품삯으로 보리 말이나 주어 관리하게 하였다. 그런데, 소가 한 보름 정도 목장에서 지내게 되면, 진드기가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 달라붙어 빵빵하게 피를 뽑아 먹고 강낭콩만큼 큰 부그리가 된다.
중학생 정도가 되면 이 진드기 구제를 위해 방학이나 일요일을 택해 이곳 목장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서 걸어 이곳까지 오는데는 3시간 정도 걸렸으므로 새벽조반을 해먹고 출발해야만 했다. 부그리는 털개(막대 끝에 쇠를 둥그렇게 박은 것)로 떼낼 수가 있으나 어린 진드기는 안 떨어진다. 그러면, 살충제 DDT나 BHC 가루약을 물에 개어서 헝겊에 묻혀 진드기에 바르면 다 죽는다. 그 일이 끝나면 산딸기를 따먹거나 말똥버섯을 따고 날이 어두울 새라 황급히 돌아와야 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서쪽 봉우리 끝이 타진 것처럼 보이는 바로 눈앞의 괴오름에 오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도무지 시간이 허락지 않아 못 올랐는데, 쇠번 보러 와서 시간을 내어 오른 것이다. 그 때만 해도 나무가 덜 자라고 잡풀은 소가 다 뜯어 먹어버려 쉽게 오를 수 있었고, 뒤에 꼭 북처럼 매달린 바위를 보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문에 이 서쪽 봉우리가 '북돌아진오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얘기가 쉽게 수긍이 갔다.
△ 북돌아진오름 앞으로 넉넉한 벌판이
새로 만든 도로 때문에 헷갈려 새별오름 입구로 내려갔다가 나와 다시 이시돌 목장 입구 왼쪽 다리 밑으로 가로질러, 나인브릿지 골프장 입구에서 나와 다시 동쪽으로 가다가 두 봉우리 중간쯤 되는 목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들어간다. 동쪽 봉우리가 표고 653.3m, 비고 103m로 서쪽 봉우리 표고 643m, 비고 118m보다 높으나, 어찌 보면 지대가 낮은 곳에 있는 서봉이 더 높아 보인다. 면적도 동쪽 봉우리가 379,587㎡로 서쪽 봉우리 338,981㎡보다 넓지만 서쪽 봉우리가 길쭉하고 가까이에 있어 더 커 보인다. 이렇게 사람의 눈은 쉽게 착각할 수 있음에도 고집스레 밀고 나가는 수가 많다.
우리는 먼저 서쪽 봉우리를 목표로 나아갔다. 두 봉우리를 구분하느라 요즘에는 동쪽을 괴오름, 서쪽을 북돌아진오름으로 부르나 이는 잘못이다. 관광도로에서 바라보면 두 오름이 기형아처럼 허리가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고양이같다 하여 '고양이'의 옛말 '괴'를 붙여 '괴오름' 또는 '괴미오름', 한자로는 '묘악(猫岳)'으로 부르고 있다. 마을에서 대여해준 목장은 개간 하려는 듯 정화조 퍼낸 것을 곳곳에 뿌려놓아 거름 냄새가 진동한다. 길 건너 정면으로 정월 대보름 불꽃 축제가 열리는 새별오름이 있어, 그 준비를 위해 새겨 놓은 글씨가 선명하다. 가운데 노란 대보름달, 바로 아래에 '2002 제주 월드컵', 아래로 크게 '무사안녕'.
북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안부 왼쪽 등성이를 겨냥, 철조망을 통과, 무덤 옆 소나무 밭으로 들어간다. 곳곳에 꾸지뽕나무, 찔레나무, 청미래덩굴, 섬쥐똥나무, 복분자나무 같은 가시 넝쿨나무들이 길을 막는다. 소나무 숲이 끝나는 곳엔 서어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 팽나무 같은 자연림이 형성되고, 그 그늘에 제주조릿대가 자리잡았다. 햇볕이 드는 곳에는 상산과 산딸기가 마구 엉키어 걸음을 방해한다. 2년 전 여름에 올라올 때는 한라개승마와, 촛대승마, 한라돌쩌귀, 새우란이 많이 피어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50분여 만에 서쪽 오름 정상에 도착하였다. 남쪽으로 커다란 암석이 북이 매달린 것처럼 절벽을 이루었고, 조금 내려간 건너편에 다시 바위가 박힌 봉우리가 거의 같은 높이로 솟았다. 가는 도중에 노랗게 피어 있는 복수초가 보인다. 새우난도 있어 줄기를 더듬으니, 어김없이 꽃 순이 뾰족하게 숨어 있다. 산딸기 가시를 헤치며 서쪽 봉우리로 가서 그쪽에 있는 오름들을 살피고 내려와 잠시 쉴 자리를 보았다. 꽤 쌀쌀한 날씨에 북서풍을 막을 수 있는 두 봉우리 사이, 비탈지지만 남쪽으로 띠가 부드럽게 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바람도 없고 햇빛이 부드럽게 비쳐 그만이다.
눈 아래 넉넉한 벌판이 자리를 잡고 있어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때마침 가는 눈발이 가루처럼 날려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앞에는 지난 주 복수초를 보러 갔던 폭낭오름이 의젓하게 앉아 있고, 뒤로 빈네, 이돈이가 그 뒤의 서영아리를 우러른다. 그 오른쪽으로는 왕이메, 돔박이, 괴수치가, 건너에 지난주에 올랐던 족은대비악, 무악 건너 대병악, 소병악이 능선이 곱게 보인다. 왼쪽 벌판 너머로 다래오름, 돌오름, 한대오름, 노루오름, 삼형제오름, 위로 한라산이 어슴프레하게 보인다.
♣ 두더지의 애달픈 사랑의 전설이 담긴 복수초(福壽草)
옛날, 하늘나라에 크노멘 공주라는 아름답고 젊은 여신이 살고 있었다. 공주의 나이가 차자 아버지인 하느님은 시집보낼 일 때문에 고민을 하였다. 하늘나라에는 젊은 남신(男神)들이 많이 있었는데, 하느님은 그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생각했다. 꽃신은 착하지만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냇물신은 아름답지만 툭하면 제멋대로 날뛰고, 원숭이신은 똑똑하지만 버릇이 없고, 새신은 날쌔지만 말이 많고, 물고기신은 부지런하지만 가난하고, 산신은 부자지만 터무니없는 겁쟁이.
한참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고른 것은 두더지신이었다. 두더지는 용감해서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웠고 날렵하고 똑똑하였다. 게다가 착하고 산신보다 땅을 많이 가진 부자였으므로. 두더지신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갖고 있었다. 하늘나라에서 땅속까지 거의 두더지 신의 땅이었다. 그러나 용감하고 똑똑하고 착하고 부자인 두더지에게도 딱 한 가지 결점이 있었으니, 젊은 신들 중에서 가장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마음만 올바르고 착하면 겉모습은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 두더지 신을 공주의 신랑감으로 정했다. 하느님은 두더지를 찾아가서 딸 크노멘 공주와 결혼해 줄 것을 부탁했다. 두더지는 기뻐하며 약속의 증표인 보도(寶刀)를 내놓아 하느님의 보도와 교환하고 결혼을 맹세했다. 그러나, 공주는 하늘나라에서 제일 못생긴 두더지와 결혼해야 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하느님이 달랬지만 막무가내였다. 공주는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의 궁전을 뛰쳐나가기까지 했다.
공주가 싫어하는 것도 모르고 두더지는 매일같이 선물을 보냈다. 봄에는 두더지의 영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을, 여름에는 북쪽 땅에서 잘라 온 얼음으로 만든 백조를, 가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 열매를, 겨울에는 공주의 모습을 수놓은 비단옷을 보냈다.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두더지는 정성을 다하여 옷을 짰다. 그 다음은 금비녀를 보냈다. 조그맣고 빨간 돌로 공주의 이름을 새긴 아름다운 비녀였다. 억지로라도 두더지와 혼인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하느님은 보도를 교환한 지 300일이 되는 날, 결혼을 선언하였으나 듣지 않고 도망쳐버렸다.
어둡고 추운 겨울밤, 공주는 추워 떨면서 곰에게 가서 도와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어 소나무, 북풍에게도 부탁했으나 마찬가지였다. 화가 난 아버지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딸에게 벌을 내렸다. 그러자 공주는 아름다운 젊은 여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금색의 조그만 꽃이 되어 버렸다. 눈 속에서 태어난 그 꽃은 복수초라고 이름하였다. 흰 눈이 쌓인 날 아침 복수초 주위에 발자국이 많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꽃이 되어 버린 공주를 지금도 그리워하는 두더지의 발자국이다. 금색의 꽃이 숨어 버리지 않도록 두더지는 밤새도록 복수초 주위의 눈을 쓸고 있는 것이다.
♧ 괴오름에서 전국으로 띄우는 꽃소식
일행 16명은 1년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일거에 다 해소시킬 수 있었다. 더구나 거기서 마신 캔 맥주의 시원함과, 구박사가 자져온 좁쌀 청주의 짜릿한 맛은 새로운 에너지를 팍팍 생성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산에 오르면 지위의 높낮음도 없고, 돈이 있고 없음도 가리지 않고, 꼭 같은 자연인으로 돌아가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이 좋다는 오늘 처음 합류한 양 선생의 얘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시애틀에 교환 교수로 다녀온 김 교수님도 시차도 잊은 듯 싱글벙글이다. 이런 맛에 이것저것 다 뿌리치고 일요일이면 산을 오르는가 싶다.
동쪽 능선으로 비스듬히 내려와 두 오름이 마주치는 곳에서 동쪽 봉우리를 향해 오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아래로 내려오다 길을 찾아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복수초 두 송이를 신호로 이 오름은 완전히 복수초 군락지이다. 마른 나뭇잎 속에 숨어 있어 밟지 않고는 한 걸음도 옮기기 힘들다. 이 꽃은 어떻게 번식 하길래 온 산을 이렇게 점령하고 있는지, 꽃말이 '영원한 사랑'인 복수초는 아이누의 전설(傳說)에서처럼 땅 속을 기어야만 하는 얄궂은 공주의 운명을 타고 난 것일까?
괴오름 동봉 정상에서 뭍으로 꽃소식을 전해본다. 매일 오르는 제주시 해안에 위치한 별도봉에는 개불알꽃과 쇠별꽃이 한창이고, 요즘 들어 미나리아재비 노랑꽃이 늘어간다. 양지쪽 일찍 파종한 유채밭에도 꽃이 피기 시작한지 오래고, 지난주에 마을에 핀 매실나무와 앵두나무 꽃을 확인했다. 오늘 지방지 조간에 실은 서귀포 어느 민가에 피어난 하이얀 목련꽃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해발 653.3m 괴오름 정상에 노랗게 피어난 복수초 꽃잎에 한참 동안 눈을 맞추었다가 전국으로 꽃소식[花信]을 전하노라.
(2002. 2. 10.)
<동반자> 고길홍, 변신규, 강부언, 구웅서, 오창홍, 송연심, 유인심, 양영태, 이창현, 김영임, 고제량, 장성희, 김승기, 김동한, 양순열(15명)
<사진> 위는 복수초이고, 아래는 괴오름 서봉 일명 '북돌아진오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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