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력(壓力)에 대한 단상(斷想)
사라악 대피소를 지나 4.8km가 되는 전체의 중간 지점을 통과하면서부터 눈이 사르륵 사르륵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지대에는 겨우내 쌓인 눈이 녹지 않고 누적되어 주목(朱木)이라 불리는 노가리와 구상나무 같은 상록수 위에 가득 쌓여 있다. 참나무나 서어나무 같은 커다란 낙엽수는 가느다란 가지만 남기 때문에 날리는 눈이나 축축한 공기가 얼어붙어 결빙(結氷) 현상인 상고대는 설 수 있지만 압력은 받지 않기에 이 자리에서 힘들이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올라올 때 삼나무 지대에서는 무참하게 꺾여 나간 나무 몇 그루를 볼 수 있었다. 어떤 것은 3분의 2쯤 되는 곳에서부터 대나무 짜개지듯 뿌리까지 무참히 갈라졌다. 몇 년 전 겨울 소쇄원에 갔을 때 눈앞에서 대나무가 와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놀란 적이 있었다. 소리 난 쪽을 바라보니 커다란 나무 아래 있는 일련의 대나무들이 무거운 눈을 털어내지 못하고 꾸부정한 자세로 그 압력을 견디고, 몇 개는 꺾여 깨어져 있다. 얼핏 사육신(死六臣)들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왜 대나무가 사군자(四君子)로 불리는 지 새삼 깨달았었다.
갈수록 구상나무와 노가리에 쌓인 눈의 모습이 나무와 어울려 여러 가지 형상을 하고 있어 보는 눈이 즐겁다. 동물원 같다고 옆에서 야단들이다. 언젠가 일본의 원숭이 마을에서 보았던,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원숭이들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싱가포르의 주롱 새 공원에서 본 하얀 새들의 모습을 닮았다. 제주에 서식하는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한라산 해발 1,400고지에서 백록담까지, 계곡 양쪽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높은 지대 겨울의 차갑고 거센 바람을 이기고 살아가기에 그 고고한 자태는 의절(義絶)을 생명으로 하는 지사(志士)들을 닮았다. 삼나무는 속성수로 살이 물러 조그만 눈의 무게에도 굴복하지만, 구상나무는 어릴 때부터 이러한 압력을 견디며 굳건히 자랐기에 꺾이는 법이 없다. 그래서 천 년을 살고 죽어서도 꼿꼿이 서서 백년을 버틴다. 요즘같이 어지러운 세상 우리나라에 이런 구상나무 같은 원로(元老)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못해 자리에 연연하다 제풀에 꺾이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는 버드나무로 전락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나 보이지 말았으면….
▲ 그대는 아는가, 진달래가 왜 그렇게 불타오르는가를
나무의 키가 갑자기 작아지더니, 사방이 확 트이며 진달래 밭이 나타난다. 성판악에서 7.3m이 되는 지점이자 백록담이 보이는 동릉 정상까지 2.3km 남긴 지점이다. 곧 눈이 쏟아질 듯 주위가 안개로 뒤덮여 100여m 앞을 분간할 수 없다. 대피소 안은 점심을 먹는 등산객들로 초만원이고, 매점은 컵라면을 사기 위한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좁은 마당 한 구석에는 목포 U산악회에서 제(祭) 지내기가 끝났는지, 올려놓은 돼지머리에 귀와 주둥이가 달아나고 없다.
점심은 용진각에서 먹기로 하고, 길모퉁이 간판을 의지하여 컵라면 서너 개를 눈 위엔 벌여놓고 쪼그려 앉아 한라산 소주를 마신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방금 본 머리고기가 먹고 싶었는지 가지고 온 돼지고기를 내놓는다. 산에서, 그것도 눈 위에 쪼그려 앉아 날리는 눈을 보면서 뜨거운 라면 국물에 마시는 소주 한 잔의 진미를 어디다 비기랴. 안개와 추위가 점점 더 가까이 우리를 포위하여 분위기를 돋우는 바람에 점심을 위해 마련한 백알[白干] 두 병까지 비우고 나서야 겨우 일어났다.
어느새 안개가 조금 걷혀 있어 정상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지금부터는 거의가 개활지(開豁地, 훤하게 트인 벌판)여서 눈보라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봄이면 이곳에 불붙듯 피어 있던 진달래가 눈에 선하다. 그러나, 지금은 눈에 덮여 여기저기 봉긋이 무덤처럼 보일뿐이다. 그들은 이 지형과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몸을 낮추고 몸을 밀착하며 눈을 떠받쳐 그 길고 지루한 겨울을 날 수 있다. 그래서 눈이 녹자마자 진분홍으로 한꺼번에 몸을 태움으로써 산 아래에 있는 나비와 벌들을 불러올릴 수 있는 것이다.
내려오는 사람마다 노출된 머리칼이 허옇게 세어 있다. 어떤 이는 눈썹까지 서리를 얹고 있으면서도 얼굴은 상기되었다. 그 세찬 바람에 시달렸을 법도 한데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성취감이었을 것이다. 시방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 바라고 바라던 눈 덮인 한라산 정상(頂上)에, 그 눈보라를 뚫고 순전히 내 힘으로 발을 딛었다는 진한 감동을 간직하고 내려오는 중이다. 우리 사람이 온갖 고난을 이기고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힘이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 한라산 정상에서 용진각 대피소까지
그로부터 정상에 이르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무가 없어 눈보라와 찬바람이 귀싸대기를 후려갈기고 고도가 심하여 길이 미끄러웠다. 그래도 버텨가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정복욕, 그리고 목책과 사방에 흩어져 피어난 얼음꽃 때문이었다. 마른 나무에 꽃이 핀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이름이리라. 마치 수정(水晶)으로 새겨놓은 것처럼 그 세찬 바람에도 조금도 동요하는 빛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정상! 1년만이었다. 아침 7시 반에 성판악을 출발하여 지금 12시 20분. 9.6km를 거의 5시간에 걸쳐 돌파한 것이다. 그러나, 정상의 상황은 좋은 편이 못 되었다. 백록담은 그 모습을 안개 속에 꼭꼭 숨기고 세찬 바람은 마지막 시련을 요구하였다. 우리는 왼쪽에 있는 초소를 의지하여 인원을 점검하며 전열을 재정비 하여 내려갈 채비를 차렸다. 정상 정복의 감격을 전하려고 휴대폰을 꺼내 연결을 시도해 보았으나, 희박한 전파와 밀려드는 안개, 그리고 찬 기운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그곳의 감시원들은 관음사로 내려갈 수는 있지만 맞바람 때문에 곤란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행 중 제일 연장자이면서 통솔 책임자인 나로서는 승복할 수 없었다. 오히려 성판악으로 내려가는 것이 왼쪽으로 맞바람을 받아 힘들 것 같았다. 더욱이, 올라온 길이었고 코스가 길고 지루하다. 그 반면 우리가 처음 계획한 관음사 코스는 정상 능선 지나갈 때만 북풍에 노출될 뿐 계곡에 들어가면 오히려 포근하며 계속해서 좋은 경치를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코스는 8.7km로 더 짧다.
동릉 정상에서 백록담 안을 잠시 드려다 본 일행은 도저히 안개가 걷힐 가능성이 안 보이자 그냥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출발했다. 작년의 경우는 잠깐 잠깐씩 구름이 걷혀 산수화 같은 백록담의 정경을 즐길 수 있었다. 매서운 바람을 피해 등성이에서 내려서자 구상나무 숲이다. 올라오는 일행 중에 어린이들이 보였다. 이들에게 다 왔다고 기운을 복돋아 주고 휴대폰을 꺼내 감격의 일성을 전하였다.
왕관능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조금씩 안개도 걷혀 눈 쌓인 벌판과 숲이 드러난다. 거기서부터 용진각까지 가파른 길을 내려가다, 힘이 들어 앉아서 미끄럼을 타니, 어린애처럼 신난다. 용진각 대피소에 식사하는 몇 그룹이 있었으나 자리가 남아 한쪽 구석에서 점심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마신 커피, 그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앞의 둥근 대피소는 오래되어서 붕괴 위험이 있다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젊은 시절 저곳에서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었던가? 답답한 일이 있을 때면, 혼자 훌쩍 올라와서 밤을 지새우며 한라산과 무수한 대화를 나누었던 곳이다.
▲ 산에서 배우는 인생의 교훈
우리는 인생의 후반기를 흔히 등산의 하산 길에 비유한다. 젊은 시절 온 힘을 다해 땀 흘리며 정상에 이르면, 걷기 쉬운 하산 길에 접어든다. 그 다음에는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가파른 고갯길에 이른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길이 더 힘들다고 한다. 삼각봉에서 개미등에 이르는 길은 또 다른 설경이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금 탄성이 터진다. 눈 덮인 소나무가 절개를 일깨우고 조금 가파른 탐라계곡 능선이 이어졌다. 참나무겨우살이 군락지이다. 겨우살이가 높은 나무 곳곳에 새둥지처럼 달려서 파란 줄기를 내놓고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다. 그 위에 눈이 쌓여 흰색을 더하니 볼만하다.
저것은 평상시는 나뭇잎에 가려 안 보이다가 겨울이 되어서야 찬바람에 공중에 매달린 채 저렇게 존재를 나타내는 특이한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축하 파티가 열리는 방 문간에 걸어 놓고 이 아래를 지나가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병을 치료하는 약효를 지니고 있어 요즘 유럽에서 가장 널리 쓰는 암 치료제가 바로 이 겨우살이 추출물이다. 독일에서만 한 해에 3백 톤 이상의 겨우살이를 가공하여 항암제 또는 고혈압, 관절염 치료약으로 쓰고 있다.
탐라계곡 대피소에 이르러 마지막 휴식을 가졌다. 곳곳에서 까마귀가 까악까악 존재를 알리며 우리들의 배낭에 남아 있는 음식물을 노린다. 과거 집 주변에 그렇게 많던 까마귀가 한 동안 보이지 않더니, 요즘은 산 속에서 자주 만난다. 차게 식어버린 밥덩이와 반찬 부스러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눈에 잘 띄는 돌 위에다 부어 놓았다. 집에 가면 음식물 쓰레기로 처분될 뻔 했던 것이 까마귀들에게는 진수성찬이 되는 것이다. 옆 사람들도 배낭을 풀어 점심 그릇을 뒤져 나란히 늘어놓는다. 냄새가 전달되었는지 우리가 자리를 피하기도 전에 녀석들이 달려든다.
가파른 탐라계곡을 조심스럽게 건너고 나서야 모두들 한숨을 쉰다. 이제부터는 평탄한 숲길이다. 눈은 어제 내린 비로 거의 녹아 나무엔 구슬처럼 고드름만 매달렸다. 평상시 한라산은 대체로 온순한 편이고 사람들을 멀리하지 않는다. 사실 정해진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겨울바람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이나, 비바람에 시야가 가려지는 날에야 비로소 한라산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된다. 사람을 대하는 일도 그런 것이다. 평상시 유순하던 사람도 화가 나면 무서운 폭군으로 변하는 걸 보면.
오후 4시 30분. 우리는 18.3km의 산길을 무려 9시간에 걸쳐 별 사고 없이 헤쳐 나왔다.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다. 한라산은 늘 아름다운 모습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겨울 한라산은 방심한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재앙을 내린다. 아무런 일이 없었을 때는 평범하던 산이, 외면할 때는 두 얼굴을 갖고 우리에게 야금야금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가 산 앞에서 겸손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사진 : 한라산 설경<구상나무와 정상 봉우리 부악(釜岳)에 눈이 쌓인 모습>

사라악 대피소를 지나 4.8km가 되는 전체의 중간 지점을 통과하면서부터 눈이 사르륵 사르륵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지대에는 겨우내 쌓인 눈이 녹지 않고 누적되어 주목(朱木)이라 불리는 노가리와 구상나무 같은 상록수 위에 가득 쌓여 있다. 참나무나 서어나무 같은 커다란 낙엽수는 가느다란 가지만 남기 때문에 날리는 눈이나 축축한 공기가 얼어붙어 결빙(結氷) 현상인 상고대는 설 수 있지만 압력은 받지 않기에 이 자리에서 힘들이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올라올 때 삼나무 지대에서는 무참하게 꺾여 나간 나무 몇 그루를 볼 수 있었다. 어떤 것은 3분의 2쯤 되는 곳에서부터 대나무 짜개지듯 뿌리까지 무참히 갈라졌다. 몇 년 전 겨울 소쇄원에 갔을 때 눈앞에서 대나무가 와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놀란 적이 있었다. 소리 난 쪽을 바라보니 커다란 나무 아래 있는 일련의 대나무들이 무거운 눈을 털어내지 못하고 꾸부정한 자세로 그 압력을 견디고, 몇 개는 꺾여 깨어져 있다. 얼핏 사육신(死六臣)들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왜 대나무가 사군자(四君子)로 불리는 지 새삼 깨달았었다.
갈수록 구상나무와 노가리에 쌓인 눈의 모습이 나무와 어울려 여러 가지 형상을 하고 있어 보는 눈이 즐겁다. 동물원 같다고 옆에서 야단들이다. 언젠가 일본의 원숭이 마을에서 보았던,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원숭이들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싱가포르의 주롱 새 공원에서 본 하얀 새들의 모습을 닮았다. 제주에 서식하는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한라산 해발 1,400고지에서 백록담까지, 계곡 양쪽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높은 지대 겨울의 차갑고 거센 바람을 이기고 살아가기에 그 고고한 자태는 의절(義絶)을 생명으로 하는 지사(志士)들을 닮았다. 삼나무는 속성수로 살이 물러 조그만 눈의 무게에도 굴복하지만, 구상나무는 어릴 때부터 이러한 압력을 견디며 굳건히 자랐기에 꺾이는 법이 없다. 그래서 천 년을 살고 죽어서도 꼿꼿이 서서 백년을 버틴다. 요즘같이 어지러운 세상 우리나라에 이런 구상나무 같은 원로(元老)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못해 자리에 연연하다 제풀에 꺾이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는 버드나무로 전락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나 보이지 말았으면….
▲ 그대는 아는가, 진달래가 왜 그렇게 불타오르는가를
나무의 키가 갑자기 작아지더니, 사방이 확 트이며 진달래 밭이 나타난다. 성판악에서 7.3m이 되는 지점이자 백록담이 보이는 동릉 정상까지 2.3km 남긴 지점이다. 곧 눈이 쏟아질 듯 주위가 안개로 뒤덮여 100여m 앞을 분간할 수 없다. 대피소 안은 점심을 먹는 등산객들로 초만원이고, 매점은 컵라면을 사기 위한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좁은 마당 한 구석에는 목포 U산악회에서 제(祭) 지내기가 끝났는지, 올려놓은 돼지머리에 귀와 주둥이가 달아나고 없다.
점심은 용진각에서 먹기로 하고, 길모퉁이 간판을 의지하여 컵라면 서너 개를 눈 위엔 벌여놓고 쪼그려 앉아 한라산 소주를 마신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방금 본 머리고기가 먹고 싶었는지 가지고 온 돼지고기를 내놓는다. 산에서, 그것도 눈 위에 쪼그려 앉아 날리는 눈을 보면서 뜨거운 라면 국물에 마시는 소주 한 잔의 진미를 어디다 비기랴. 안개와 추위가 점점 더 가까이 우리를 포위하여 분위기를 돋우는 바람에 점심을 위해 마련한 백알[白干] 두 병까지 비우고 나서야 겨우 일어났다.
어느새 안개가 조금 걷혀 있어 정상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지금부터는 거의가 개활지(開豁地, 훤하게 트인 벌판)여서 눈보라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봄이면 이곳에 불붙듯 피어 있던 진달래가 눈에 선하다. 그러나, 지금은 눈에 덮여 여기저기 봉긋이 무덤처럼 보일뿐이다. 그들은 이 지형과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몸을 낮추고 몸을 밀착하며 눈을 떠받쳐 그 길고 지루한 겨울을 날 수 있다. 그래서 눈이 녹자마자 진분홍으로 한꺼번에 몸을 태움으로써 산 아래에 있는 나비와 벌들을 불러올릴 수 있는 것이다.
내려오는 사람마다 노출된 머리칼이 허옇게 세어 있다. 어떤 이는 눈썹까지 서리를 얹고 있으면서도 얼굴은 상기되었다. 그 세찬 바람에 시달렸을 법도 한데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성취감이었을 것이다. 시방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 바라고 바라던 눈 덮인 한라산 정상(頂上)에, 그 눈보라를 뚫고 순전히 내 힘으로 발을 딛었다는 진한 감동을 간직하고 내려오는 중이다. 우리 사람이 온갖 고난을 이기고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힘이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 한라산 정상에서 용진각 대피소까지
그로부터 정상에 이르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무가 없어 눈보라와 찬바람이 귀싸대기를 후려갈기고 고도가 심하여 길이 미끄러웠다. 그래도 버텨가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정복욕, 그리고 목책과 사방에 흩어져 피어난 얼음꽃 때문이었다. 마른 나무에 꽃이 핀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이름이리라. 마치 수정(水晶)으로 새겨놓은 것처럼 그 세찬 바람에도 조금도 동요하는 빛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정상! 1년만이었다. 아침 7시 반에 성판악을 출발하여 지금 12시 20분. 9.6km를 거의 5시간에 걸쳐 돌파한 것이다. 그러나, 정상의 상황은 좋은 편이 못 되었다. 백록담은 그 모습을 안개 속에 꼭꼭 숨기고 세찬 바람은 마지막 시련을 요구하였다. 우리는 왼쪽에 있는 초소를 의지하여 인원을 점검하며 전열을 재정비 하여 내려갈 채비를 차렸다. 정상 정복의 감격을 전하려고 휴대폰을 꺼내 연결을 시도해 보았으나, 희박한 전파와 밀려드는 안개, 그리고 찬 기운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그곳의 감시원들은 관음사로 내려갈 수는 있지만 맞바람 때문에 곤란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행 중 제일 연장자이면서 통솔 책임자인 나로서는 승복할 수 없었다. 오히려 성판악으로 내려가는 것이 왼쪽으로 맞바람을 받아 힘들 것 같았다. 더욱이, 올라온 길이었고 코스가 길고 지루하다. 그 반면 우리가 처음 계획한 관음사 코스는 정상 능선 지나갈 때만 북풍에 노출될 뿐 계곡에 들어가면 오히려 포근하며 계속해서 좋은 경치를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코스는 8.7km로 더 짧다.
동릉 정상에서 백록담 안을 잠시 드려다 본 일행은 도저히 안개가 걷힐 가능성이 안 보이자 그냥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출발했다. 작년의 경우는 잠깐 잠깐씩 구름이 걷혀 산수화 같은 백록담의 정경을 즐길 수 있었다. 매서운 바람을 피해 등성이에서 내려서자 구상나무 숲이다. 올라오는 일행 중에 어린이들이 보였다. 이들에게 다 왔다고 기운을 복돋아 주고 휴대폰을 꺼내 감격의 일성을 전하였다.
왕관능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조금씩 안개도 걷혀 눈 쌓인 벌판과 숲이 드러난다. 거기서부터 용진각까지 가파른 길을 내려가다, 힘이 들어 앉아서 미끄럼을 타니, 어린애처럼 신난다. 용진각 대피소에 식사하는 몇 그룹이 있었으나 자리가 남아 한쪽 구석에서 점심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마신 커피, 그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앞의 둥근 대피소는 오래되어서 붕괴 위험이 있다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젊은 시절 저곳에서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었던가? 답답한 일이 있을 때면, 혼자 훌쩍 올라와서 밤을 지새우며 한라산과 무수한 대화를 나누었던 곳이다.
▲ 산에서 배우는 인생의 교훈
우리는 인생의 후반기를 흔히 등산의 하산 길에 비유한다. 젊은 시절 온 힘을 다해 땀 흘리며 정상에 이르면, 걷기 쉬운 하산 길에 접어든다. 그 다음에는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가파른 고갯길에 이른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길이 더 힘들다고 한다. 삼각봉에서 개미등에 이르는 길은 또 다른 설경이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금 탄성이 터진다. 눈 덮인 소나무가 절개를 일깨우고 조금 가파른 탐라계곡 능선이 이어졌다. 참나무겨우살이 군락지이다. 겨우살이가 높은 나무 곳곳에 새둥지처럼 달려서 파란 줄기를 내놓고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다. 그 위에 눈이 쌓여 흰색을 더하니 볼만하다.
저것은 평상시는 나뭇잎에 가려 안 보이다가 겨울이 되어서야 찬바람에 공중에 매달린 채 저렇게 존재를 나타내는 특이한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축하 파티가 열리는 방 문간에 걸어 놓고 이 아래를 지나가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병을 치료하는 약효를 지니고 있어 요즘 유럽에서 가장 널리 쓰는 암 치료제가 바로 이 겨우살이 추출물이다. 독일에서만 한 해에 3백 톤 이상의 겨우살이를 가공하여 항암제 또는 고혈압, 관절염 치료약으로 쓰고 있다.
탐라계곡 대피소에 이르러 마지막 휴식을 가졌다. 곳곳에서 까마귀가 까악까악 존재를 알리며 우리들의 배낭에 남아 있는 음식물을 노린다. 과거 집 주변에 그렇게 많던 까마귀가 한 동안 보이지 않더니, 요즘은 산 속에서 자주 만난다. 차게 식어버린 밥덩이와 반찬 부스러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눈에 잘 띄는 돌 위에다 부어 놓았다. 집에 가면 음식물 쓰레기로 처분될 뻔 했던 것이 까마귀들에게는 진수성찬이 되는 것이다. 옆 사람들도 배낭을 풀어 점심 그릇을 뒤져 나란히 늘어놓는다. 냄새가 전달되었는지 우리가 자리를 피하기도 전에 녀석들이 달려든다.
가파른 탐라계곡을 조심스럽게 건너고 나서야 모두들 한숨을 쉰다. 이제부터는 평탄한 숲길이다. 눈은 어제 내린 비로 거의 녹아 나무엔 구슬처럼 고드름만 매달렸다. 평상시 한라산은 대체로 온순한 편이고 사람들을 멀리하지 않는다. 사실 정해진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겨울바람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이나, 비바람에 시야가 가려지는 날에야 비로소 한라산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된다. 사람을 대하는 일도 그런 것이다. 평상시 유순하던 사람도 화가 나면 무서운 폭군으로 변하는 걸 보면.
오후 4시 30분. 우리는 18.3km의 산길을 무려 9시간에 걸쳐 별 사고 없이 헤쳐 나왔다.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다. 한라산은 늘 아름다운 모습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겨울 한라산은 방심한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재앙을 내린다. 아무런 일이 없었을 때는 평범하던 산이, 외면할 때는 두 얼굴을 갖고 우리에게 야금야금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가 산 앞에서 겸손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사진 : 한라산 설경<구상나무와 정상 봉우리 부악(釜岳)에 눈이 쌓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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