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근대비악, 대병악, 소병악, 폭낭오름 답사기
▲ 족은대비악의 동자석(童子石)
순전히 덤으로 오른 오름이었다. 처음에 대병악, 소병악을 겨냥해 서부산업도로 동광검문소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출발했었는데, 그 전에 탐라대학교로 가는 산록도로를 타고 가다가 핀크스 골프장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갔던 생각이 들어, 다른 두 차에 급히 연락, 산록도로 입구에서 만나자고 정정했다. 지난 1월 서귀포 월드컵을 앞두고 개통한 준고속도로인 관광도로가 원래의 길을 마구 어질러 놓아 입구를 혼동하기에 딱 알맞다.
남제주군 안덕면 광평리 산59번지에 자리한 비고(卑高, 평지에서부터의 산 높이) 71m의 나지막한 오름 족은대비악은 제2산록도로 입구에서 약 1.2km 들어간 곳 길옆에 위치해 있어 오다가다 시간이 조금 남았을 때, 들르는 오름이다. 특히, 봄 장마철에 오름 정상 두 개의 원형 화구에 가면 고사리를 많이 꺾을 수 있는 복합형 화산체이다. 오름 북쪽 경사면에만 조금 숲을 이루고, 말을 놓아 기르기 때문에 화구안부를 비롯한 전 사면은 매끈한 풀밭이 되어 있어 철 따라 여러 가지 들꽃이 피어난다.
차를 세우고 얼었다 풀린 밭으로 들어가서 푹신한 흙을 밟아 본다. 검은 빛이 선명한 흙은 언제 밟아봐도 기분이 좋다. 철조망을 통과하여 길을 따라 오르는데, 앞 목장에 파놓은 저수지에 하늘이 내비치어 밝게 빛난다. 이곳에 오르면 남서쪽으로 무악이 보이고, 우리가 목표로 한 대병악, 소병악이 보인다. 오름의 모습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오르기 전에 멀리서 전체를 보는 것도 그 오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숲으로 들어가면 나무만 보이고 그 전체의 모습은 볼 수 없듯이, 오름도 그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인생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북쪽 능선에 올라 분화구인 굼부리를 바라보며 비스듬히 남쪽 정상으로 오른다. 죽어넘어진 지 오랜 커다란 말뼈들이 보이고, 그 건너에 옛 무덤이 자리 잡았다. 정상에도 남서쪽을 향한 무덤이 하나 있었다. 산을 두른 담이 마구 흩어지고 오른쪽에 동자석(童子石) 하나만 외로이 섰다. 요즘 동자석을 몰래 훔쳐다 도외로 반출하는 일이 많다는데 혹시 하고 살펴보니, 깨어진 조각들이 산담에 섞였다. 오랫동안 말을 놓아 기르면서도 돌보지 않아 그리 된 것이리라.
제주의 동자석은 현무암으로 만든 그대로 투박한 제주인의 모습이다. 돌하르방이 정형화되고 어른다운 모습이라면, 이것은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이다. 동자석은 무덤 앞 왼쪽과 오른쪽에 마주보거나 나란히 세워 놓는데,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 터를 지키는 지신(地神)이라 할 수 있다. 죽은 자의 시중을 들기 위해 살았을 때 좋아했던 술. 떡 같은 음식물이나 꽃, 창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동자석은 바로 토착성과 민속성이 반영되어 제주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제주만의 이미지를 담고 있기에, 제주 돌문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 대병악(大竝岳)을 나는 노랑나비
족은대비악에서 내려온 일행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산록도로를 따라 가다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무악 옆으로 해서 안덕면 상창리 마을을 지나 두 오름 중간에 차를 세운 뒤 대병악으로 갔다. 굼부리가 벌어진 방향은 다르지만 두 오름이 나란히 자락을 맛대고 있어, 합쳐 골른오름, 한자로는 병악(竝岳)이라 쓰며, 오른쪽 491.9m의 오름을 대병악, 왼쪽 473m의 오름을 소병악이라 부른다. 들어가면서 둘을 비교 하다보니 두 오름 사이를 지나는 커다란 철탑이 시야를 어지럽혀 여간 눈에 거슬리는 게 아니다.
철탑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오름엘 오른다. 이곳은 지금 목장으로 사용되지 않고 사람도 다니지 않기에 가시덩굴이 엉켜 있어 걸음이 더디다. 이곳 상동나무엔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제주말로 맹게라 부르는 청미래덩굴의 빨간 열매가 점점 그 붉은 빛을 바래며 극성스럽게 매달려 있다. 키 작은 소나무엔 솔방울이 유별나게 많이 달려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고운 꽃을 피웠을 새우난이 꽃순을 숨긴 채 누렇게 변해 있고, 자생종임을 보여주는 호랑가시나무가 한 그루 숨어 있다.
중턱쯤이었다. 앞서가던 레크레이션 모임의 진희 씨가 노랑나비를 발견했다. 쌀쌀한 날씨 속에 날개를 말리고 있던 나비가 위태롭게 나풀나풀 날아오른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나비를 본 것도 감동적이었지만, 그 빛깔의 선명함이란…. 문득, 그 해 들어 처음 본 나비가 흰나비이면 어머님이 돌아가신다던 속신설(俗信說)이 생각나 연로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나로서는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내일이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立春)이고 보면 나비가 너무 빨리 나온 게 아닌가 하면서도 그 선명한 색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색깔도 여리게 솟아난 쑥을 본다. 작년에 여기서 새해 들어 처음으로 개불알풀꽃을 보고 감격했던 적이 있다. 해풍의 영향을 받아야 더욱 건강하게 자란다는 부처손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 이곳까지 해풍이 영향이 미치나 보다. 서쪽 벌판으로 머흘곶이 도너리오름까지 뻗쳐 있다. 암반이 많아 밭이나 목장으로 개간하지 못하고 그냥 둔 곳이 저렇게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동부에 있는 선흘곶과 함께 생태계의 보고인데, 도너리오름 위 아래로 두 군데 돌 공장을 허가하는 바람에 망가지기 시작한다.
정상에 모여 앉아 눈앞에 펼쳐진 시원한 정경을 바라보며 입가심을 한다. 이렇게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먹고 마시는 음식이 맛없을 리가 없다. 특히, 큰잔에 부어 돌려 마시는 술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조금 부옇기는 하지만 서쪽으로 산방산과 군산 그리고 월라봉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오늘 산행은 레크레이션 모임이 동행하는 바람에 풋풋한 젊음을 과시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보기에 좋다. 기온이 많이 올라갔나 보다. 꼭 봄 날씨처럼 따뜻하다.
북쪽 음지쪽은 매우 가파르고 낙엽수가 우거져 있다. 조심스럽게 그 굼부리로 난 길을 타서 동쪽으로 앞장서 걷는다. 이쪽 분화구는 U자형 굼부리로 동쪽으로 비스듬히 나 있다. 서어나무, 때죽나무, 참꽃나무, 팥배나무들 사이에 커다란 참두릅나무가 서있다. 봄이 되어 솟아오를 두릅나물의 향기가 코 끝에 어린다. 조금 경사가 완만한 곳에는 아직은 덜 피었으나 복수초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나선형으로 돌아 쉽게 입구로 연결된 길로 나올 수 있었다.
▲ 소병악(小竝岳)에서 혼자서 본 양지꽃
대병악에서 이어진 소병악은 능선을 따라 난 길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소나무 사이사이에는 꾸지뽕나무와 찔레나무 같은 가시덩굴이 자라고 있어 앞장서 가던 나만 오른편 양지쪽으로 가고 나머지 뒤따라오던 사람들은 능선 저쪽 편안히 갈 수 있는 음지로 간다. 순간 무심코 발길이 멈춰진다 싶더니, 양지꽃이었다. 나 혼자 어인 인연인가? 대병악에서 본 나비의 빛깔처럼 노랗고 선명한 빛의 솜눈양지꽃이 꼭 한 송이 피어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시랑개비', 또는 '위릉채'라 불리기도 하는 장미과의 다년생 초본인 양지꽃은 전국 각지의 산야지 낮은 지대 양지쪽 길가, 언덕에서부터 높은 산에 이르기까지 흔하게 자생하는 풀로 초원에 피는 병아리같이 귀여운 꽃이다. 양지쪽에서 해가 뜨면 꽃이 피고 지면 꽃이 오므라들기 때문에 '양지꽃'이라 하는 대표적인 봄꽃 중의 하나이다. 돌양지꽃, 솜양지꽃, 세잎양지꽃, 민눈양지꽃 등 비슷한 종류가 있다.
정상 산불방지 초소에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아저씨가 서서 담뱃불에 노이로제가 걸린 사람처럼 우리들에게 주의를 준다. 과거 목장으로 이용되던 오름은 화입(火入)을 함으로써 가시덩굴을 태워 없애는 한편으로 연한 풀이 돋게 하고, 진드기 같은 해충의 알도 없애는 역할을 하였다. 그것이 정월 대보름을 전후한 시기였는데, 밤에 바라보면 중산간 지대 오름에 불붙는 광경이 장관이었다. 이를 이어 받아 북제주군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새별오름을 태우는 들불 축제를 연다.
피다가 추워서 시들어버린 진달래꽃 몇 송이를 보며,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내려오니, 벌써 12시가 지나 있었다. 잔디밭에 앉아 오늘의 점심은 어디 가서 무엇을 먹을까 의논한 결과 날씨도 따뜻하고 모슬포 부두식당에 가서 물회를 먹기로 하였다. 두 오름을 오르느라 같은 철조망을 세 번 넘는다. 중산간의 오름은 대부분 목장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오름에 다니려면 철조망 통과하는 요령을 터득하여야 한다. 나오다 밭구석에 저절로 나서 눈 맞은 토종배추가 있어 한 줌 뜯어 점심에 대비했다.
△ 폭낭오름의 복수초(福壽草)
가오리회와 칼치국으로 중무장한 우리는 나의 제안으로 순전히 복수초를 보러 폭낭오름으로 향했다. 북제주군 애월읍 봉성리 산43번지에 위치한 이 오름은 표고(645,5m)와 비고(76m)는 그다지 높지 않은 반면, 둘레 2,888m, 면적 583,171㎡이 보여주듯이 제법 규모가 큰 오름이다. 작년 이맘 때 정상에서 복수초 군락을 만난 기억이 있다. 서부산업도로변 지금의 관광도로에서 효명목장 진입로로 들어가서 화전동 가기전 도로 왼쪽으로 보이는 오름이 폭낭오름이다.
밭 구석에 흔들리는 이대가 과거 이곳이 집터였음을 증명하면서 4.3의 아픔이 찡--하고, 명치끝을 파고든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갔고, 집은 불태워졌었다. 철조망을 두 번 통과하고 빽빽한 삼나무 밭에 들어선다. 삼나무 아래에는 빨간 천남성 열매가 이곳저곳에 보인다. 생긴 모습과는 달리 독이 가득 들어 있다. 옛날 궁중(宮中)에서 그 뿌리의 즙을 내어 사약으로 썼던 식물이다. 그 소리가 '첫남성'과 같으니, 여성은 '첫남성'에게 반하면 평생 목숨을 바치는 거구나. 삼나무 밭이 끝나는 곳에서 어렵사리 철조망을 통과하니, 탁 트인 곳에 오름 정상부가 드러난다.
정상부에는 하나의 말굽형 화구와 남서쪽에 2개의 원추형 화구로 이루어진 형태의 복합형 화산체가 우리를 기다린다. 오름 전사면이 완만하면서 사면을 따라 풀밭을 이루며, 주요 식생은 산뽕나무, 분단나무, 자귀나무, 보리수나무, 꽝꽝나무 등이 있고, 오름 정상부에는 가운데가 얕게 우묵져 가시덤불과 잡초가 우거졌다. 위치상으로 괴오름, 폭낭오름, 빈네오름, 다래오름이 사각형의 네 귀퉁이를 각각 차지하면서 사각점 중간에는 넓다란 초원을 이룬다.
오름에 큰 폭낭(팽나무)이 있어서 폭낭오름이라 불리운다고 하나 문제의 폭낭은 자취를 찾을 길 없다. 여러 문헌에는 한자로 팽목악(彭木岳)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상 상산나무에 얽힌 가시덤불을 헤치고 어렵게 들어가니, 과연 복수초가 하나둘 피었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복수초(福壽草)는 다년초로 눈 속에서도 피어난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들꽃이다. 제주도에서는 2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눈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봄이 왔음을 알려 준다.
복수초란 이름을 처음 들으면 무시무시한 복수(復讐)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복수초(福壽草)는 행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이 꽃의 한자가 말해주듯 부유하게 오래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인가 보다. 해바라기와 비슷하게 생긴 노란 꽃잎 때문에 '황금의 꽃'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부유함과 행복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내일은 입춘(立春)! 오늘 이러한 꽃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터이다. 이제 봄은 벌써 복수초 노란 꽃에 얹혀 우리 곁에 와 있었다. (2002. 2. 3.)
동반자 : 우태헌 오창홍 김봉선 원영숙 김영석 김동한 고창완 김태윤 김진희 김민정(10명)
<사진> 위는 눈 속에 피어난 복수초이고, 아래는 족은대비악의 모습입니다.


▲ 족은대비악의 동자석(童子石)
순전히 덤으로 오른 오름이었다. 처음에 대병악, 소병악을 겨냥해 서부산업도로 동광검문소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출발했었는데, 그 전에 탐라대학교로 가는 산록도로를 타고 가다가 핀크스 골프장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갔던 생각이 들어, 다른 두 차에 급히 연락, 산록도로 입구에서 만나자고 정정했다. 지난 1월 서귀포 월드컵을 앞두고 개통한 준고속도로인 관광도로가 원래의 길을 마구 어질러 놓아 입구를 혼동하기에 딱 알맞다.
남제주군 안덕면 광평리 산59번지에 자리한 비고(卑高, 평지에서부터의 산 높이) 71m의 나지막한 오름 족은대비악은 제2산록도로 입구에서 약 1.2km 들어간 곳 길옆에 위치해 있어 오다가다 시간이 조금 남았을 때, 들르는 오름이다. 특히, 봄 장마철에 오름 정상 두 개의 원형 화구에 가면 고사리를 많이 꺾을 수 있는 복합형 화산체이다. 오름 북쪽 경사면에만 조금 숲을 이루고, 말을 놓아 기르기 때문에 화구안부를 비롯한 전 사면은 매끈한 풀밭이 되어 있어 철 따라 여러 가지 들꽃이 피어난다.
차를 세우고 얼었다 풀린 밭으로 들어가서 푹신한 흙을 밟아 본다. 검은 빛이 선명한 흙은 언제 밟아봐도 기분이 좋다. 철조망을 통과하여 길을 따라 오르는데, 앞 목장에 파놓은 저수지에 하늘이 내비치어 밝게 빛난다. 이곳에 오르면 남서쪽으로 무악이 보이고, 우리가 목표로 한 대병악, 소병악이 보인다. 오름의 모습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오르기 전에 멀리서 전체를 보는 것도 그 오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숲으로 들어가면 나무만 보이고 그 전체의 모습은 볼 수 없듯이, 오름도 그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인생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북쪽 능선에 올라 분화구인 굼부리를 바라보며 비스듬히 남쪽 정상으로 오른다. 죽어넘어진 지 오랜 커다란 말뼈들이 보이고, 그 건너에 옛 무덤이 자리 잡았다. 정상에도 남서쪽을 향한 무덤이 하나 있었다. 산을 두른 담이 마구 흩어지고 오른쪽에 동자석(童子石) 하나만 외로이 섰다. 요즘 동자석을 몰래 훔쳐다 도외로 반출하는 일이 많다는데 혹시 하고 살펴보니, 깨어진 조각들이 산담에 섞였다. 오랫동안 말을 놓아 기르면서도 돌보지 않아 그리 된 것이리라.
제주의 동자석은 현무암으로 만든 그대로 투박한 제주인의 모습이다. 돌하르방이 정형화되고 어른다운 모습이라면, 이것은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이다. 동자석은 무덤 앞 왼쪽과 오른쪽에 마주보거나 나란히 세워 놓는데,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 터를 지키는 지신(地神)이라 할 수 있다. 죽은 자의 시중을 들기 위해 살았을 때 좋아했던 술. 떡 같은 음식물이나 꽃, 창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동자석은 바로 토착성과 민속성이 반영되어 제주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제주만의 이미지를 담고 있기에, 제주 돌문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 대병악(大竝岳)을 나는 노랑나비
족은대비악에서 내려온 일행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산록도로를 따라 가다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무악 옆으로 해서 안덕면 상창리 마을을 지나 두 오름 중간에 차를 세운 뒤 대병악으로 갔다. 굼부리가 벌어진 방향은 다르지만 두 오름이 나란히 자락을 맛대고 있어, 합쳐 골른오름, 한자로는 병악(竝岳)이라 쓰며, 오른쪽 491.9m의 오름을 대병악, 왼쪽 473m의 오름을 소병악이라 부른다. 들어가면서 둘을 비교 하다보니 두 오름 사이를 지나는 커다란 철탑이 시야를 어지럽혀 여간 눈에 거슬리는 게 아니다.
철탑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오름엘 오른다. 이곳은 지금 목장으로 사용되지 않고 사람도 다니지 않기에 가시덩굴이 엉켜 있어 걸음이 더디다. 이곳 상동나무엔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제주말로 맹게라 부르는 청미래덩굴의 빨간 열매가 점점 그 붉은 빛을 바래며 극성스럽게 매달려 있다. 키 작은 소나무엔 솔방울이 유별나게 많이 달려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고운 꽃을 피웠을 새우난이 꽃순을 숨긴 채 누렇게 변해 있고, 자생종임을 보여주는 호랑가시나무가 한 그루 숨어 있다.
중턱쯤이었다. 앞서가던 레크레이션 모임의 진희 씨가 노랑나비를 발견했다. 쌀쌀한 날씨 속에 날개를 말리고 있던 나비가 위태롭게 나풀나풀 날아오른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나비를 본 것도 감동적이었지만, 그 빛깔의 선명함이란…. 문득, 그 해 들어 처음 본 나비가 흰나비이면 어머님이 돌아가신다던 속신설(俗信說)이 생각나 연로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나로서는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내일이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立春)이고 보면 나비가 너무 빨리 나온 게 아닌가 하면서도 그 선명한 색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색깔도 여리게 솟아난 쑥을 본다. 작년에 여기서 새해 들어 처음으로 개불알풀꽃을 보고 감격했던 적이 있다. 해풍의 영향을 받아야 더욱 건강하게 자란다는 부처손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 이곳까지 해풍이 영향이 미치나 보다. 서쪽 벌판으로 머흘곶이 도너리오름까지 뻗쳐 있다. 암반이 많아 밭이나 목장으로 개간하지 못하고 그냥 둔 곳이 저렇게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동부에 있는 선흘곶과 함께 생태계의 보고인데, 도너리오름 위 아래로 두 군데 돌 공장을 허가하는 바람에 망가지기 시작한다.
정상에 모여 앉아 눈앞에 펼쳐진 시원한 정경을 바라보며 입가심을 한다. 이렇게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먹고 마시는 음식이 맛없을 리가 없다. 특히, 큰잔에 부어 돌려 마시는 술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조금 부옇기는 하지만 서쪽으로 산방산과 군산 그리고 월라봉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오늘 산행은 레크레이션 모임이 동행하는 바람에 풋풋한 젊음을 과시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보기에 좋다. 기온이 많이 올라갔나 보다. 꼭 봄 날씨처럼 따뜻하다.
북쪽 음지쪽은 매우 가파르고 낙엽수가 우거져 있다. 조심스럽게 그 굼부리로 난 길을 타서 동쪽으로 앞장서 걷는다. 이쪽 분화구는 U자형 굼부리로 동쪽으로 비스듬히 나 있다. 서어나무, 때죽나무, 참꽃나무, 팥배나무들 사이에 커다란 참두릅나무가 서있다. 봄이 되어 솟아오를 두릅나물의 향기가 코 끝에 어린다. 조금 경사가 완만한 곳에는 아직은 덜 피었으나 복수초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나선형으로 돌아 쉽게 입구로 연결된 길로 나올 수 있었다.
▲ 소병악(小竝岳)에서 혼자서 본 양지꽃
대병악에서 이어진 소병악은 능선을 따라 난 길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소나무 사이사이에는 꾸지뽕나무와 찔레나무 같은 가시덩굴이 자라고 있어 앞장서 가던 나만 오른편 양지쪽으로 가고 나머지 뒤따라오던 사람들은 능선 저쪽 편안히 갈 수 있는 음지로 간다. 순간 무심코 발길이 멈춰진다 싶더니, 양지꽃이었다. 나 혼자 어인 인연인가? 대병악에서 본 나비의 빛깔처럼 노랗고 선명한 빛의 솜눈양지꽃이 꼭 한 송이 피어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시랑개비', 또는 '위릉채'라 불리기도 하는 장미과의 다년생 초본인 양지꽃은 전국 각지의 산야지 낮은 지대 양지쪽 길가, 언덕에서부터 높은 산에 이르기까지 흔하게 자생하는 풀로 초원에 피는 병아리같이 귀여운 꽃이다. 양지쪽에서 해가 뜨면 꽃이 피고 지면 꽃이 오므라들기 때문에 '양지꽃'이라 하는 대표적인 봄꽃 중의 하나이다. 돌양지꽃, 솜양지꽃, 세잎양지꽃, 민눈양지꽃 등 비슷한 종류가 있다.
정상 산불방지 초소에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아저씨가 서서 담뱃불에 노이로제가 걸린 사람처럼 우리들에게 주의를 준다. 과거 목장으로 이용되던 오름은 화입(火入)을 함으로써 가시덩굴을 태워 없애는 한편으로 연한 풀이 돋게 하고, 진드기 같은 해충의 알도 없애는 역할을 하였다. 그것이 정월 대보름을 전후한 시기였는데, 밤에 바라보면 중산간 지대 오름에 불붙는 광경이 장관이었다. 이를 이어 받아 북제주군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새별오름을 태우는 들불 축제를 연다.
피다가 추워서 시들어버린 진달래꽃 몇 송이를 보며,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내려오니, 벌써 12시가 지나 있었다. 잔디밭에 앉아 오늘의 점심은 어디 가서 무엇을 먹을까 의논한 결과 날씨도 따뜻하고 모슬포 부두식당에 가서 물회를 먹기로 하였다. 두 오름을 오르느라 같은 철조망을 세 번 넘는다. 중산간의 오름은 대부분 목장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오름에 다니려면 철조망 통과하는 요령을 터득하여야 한다. 나오다 밭구석에 저절로 나서 눈 맞은 토종배추가 있어 한 줌 뜯어 점심에 대비했다.
△ 폭낭오름의 복수초(福壽草)
가오리회와 칼치국으로 중무장한 우리는 나의 제안으로 순전히 복수초를 보러 폭낭오름으로 향했다. 북제주군 애월읍 봉성리 산43번지에 위치한 이 오름은 표고(645,5m)와 비고(76m)는 그다지 높지 않은 반면, 둘레 2,888m, 면적 583,171㎡이 보여주듯이 제법 규모가 큰 오름이다. 작년 이맘 때 정상에서 복수초 군락을 만난 기억이 있다. 서부산업도로변 지금의 관광도로에서 효명목장 진입로로 들어가서 화전동 가기전 도로 왼쪽으로 보이는 오름이 폭낭오름이다.
밭 구석에 흔들리는 이대가 과거 이곳이 집터였음을 증명하면서 4.3의 아픔이 찡--하고, 명치끝을 파고든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갔고, 집은 불태워졌었다. 철조망을 두 번 통과하고 빽빽한 삼나무 밭에 들어선다. 삼나무 아래에는 빨간 천남성 열매가 이곳저곳에 보인다. 생긴 모습과는 달리 독이 가득 들어 있다. 옛날 궁중(宮中)에서 그 뿌리의 즙을 내어 사약으로 썼던 식물이다. 그 소리가 '첫남성'과 같으니, 여성은 '첫남성'에게 반하면 평생 목숨을 바치는 거구나. 삼나무 밭이 끝나는 곳에서 어렵사리 철조망을 통과하니, 탁 트인 곳에 오름 정상부가 드러난다.
정상부에는 하나의 말굽형 화구와 남서쪽에 2개의 원추형 화구로 이루어진 형태의 복합형 화산체가 우리를 기다린다. 오름 전사면이 완만하면서 사면을 따라 풀밭을 이루며, 주요 식생은 산뽕나무, 분단나무, 자귀나무, 보리수나무, 꽝꽝나무 등이 있고, 오름 정상부에는 가운데가 얕게 우묵져 가시덤불과 잡초가 우거졌다. 위치상으로 괴오름, 폭낭오름, 빈네오름, 다래오름이 사각형의 네 귀퉁이를 각각 차지하면서 사각점 중간에는 넓다란 초원을 이룬다.
오름에 큰 폭낭(팽나무)이 있어서 폭낭오름이라 불리운다고 하나 문제의 폭낭은 자취를 찾을 길 없다. 여러 문헌에는 한자로 팽목악(彭木岳)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상 상산나무에 얽힌 가시덤불을 헤치고 어렵게 들어가니, 과연 복수초가 하나둘 피었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복수초(福壽草)는 다년초로 눈 속에서도 피어난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들꽃이다. 제주도에서는 2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눈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봄이 왔음을 알려 준다.
복수초란 이름을 처음 들으면 무시무시한 복수(復讐)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복수초(福壽草)는 행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이 꽃의 한자가 말해주듯 부유하게 오래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인가 보다. 해바라기와 비슷하게 생긴 노란 꽃잎 때문에 '황금의 꽃'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부유함과 행복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내일은 입춘(立春)! 오늘 이러한 꽃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터이다. 이제 봄은 벌써 복수초 노란 꽃에 얹혀 우리 곁에 와 있었다. (2002. 2. 3.)
동반자 : 우태헌 오창홍 김봉선 원영숙 김영석 김동한 고창완 김태윤 김진희 김민정(10명)
<사진> 위는 눈 속에 피어난 복수초이고, 아래는 족은대비악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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