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새별오름 들불 축제

김창집 2002. 2. 28. 10:20
▲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위에 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움 살라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 밤 이 물 속에 ……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이나 있을까 ……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한 열정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 숨 막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
(중략)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을 저어 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소리 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의 어두운 가슴 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
<주요한의 ‘불놀이’에서>


▲ 인류의 역사는 곧 불의 역사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고요히 가라앉았던 마음 한 곳으로부터 무언가 솟구쳐 오른다. 이를 테면 자신의 몸을 온통 태워버리고 싶은 충동 같은 것, 그래서 온몸이 뿌듯해지는 충만한 에너지를 받아 한껏 발산하고 싶어지는... 이렇듯 불은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이상한 매력을 가졌다. 아아,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훨훨 타오를 수 있는 사랑이라면, 이 한 몸 다 태워도 좋으리라.

불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해방되었고, 거듭되는 문명의 발달을 이룰 수 있었다. 그것을 이용하여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하였으며, 어둠의 공포를 쫓아내고 생활시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또, 그 따뜻한 열을 이용하여 생활할 수 있는 지역을 넓혀나가는 한편, 도구를 제작 사용함으로써 찬란한 인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에서 여섯 번째로 열렸던 ‘정월 대보름 들불 축제’는 가축 방목을 위해 해묵은 거친 풀의 줄기나 가시넝쿨을 태우고, 갖가지 해충을 없애기 위해 마을 별로 겨울철에 불을 놓았던 들불 놓기 전통 민속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현하여 관광 상품화시킨 축제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해 개최하고 있는 이 축제는 지난해 정부 지정 문화관광 축제로 선정되었고, 올해 정부 지정 우수 축제가 되었다.

북제주군에서 주관하는 이 축제는 오름 하나를 태우며 끝났다. 불을 토해내는 활화산 같이 웅장한 불의 향연은 불(火)과 삼다(三多)의 향토적 자원을 극대화하여 축제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또한 북제주군과 자매 결연을 맺고 있는 일본 산다시와 중국 래주시의 공연단이 참가하여 특별공연을 펼친 국제적인 행사였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제주에서 펼쳐지는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는 그 뜨거운 열기를 봄의 기운으로 전국에 전파하고 월드컵을 문화 월드컵으로 승화시키는 계기의 장으로 삼고 있다.


▲ 소원을 빌며 막을 내린 들불 축제

이번 들불 축제는 15만여 명의 인파가 붐빈 가운데 23~24일 이틀 동안 ‘무사안녕과 풍년 기원,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주제로 내걸고,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새별오름에서 열렸다. 26일이 보름이지만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기 위해 이틀 앞당긴 것이다. 필자는 이 기간 동안 지리산자락 답사를 위해 나가 있었기 때문에 취재해 놓은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작년에 겪었던 체험을 바탕으로 진짜 보름달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액은 타오르는 들불에 훨훨 날려 보내고 보름달 같은 큰 복만 내리소서.” 신철주 북제주군수의 개막 선언과 함께 축제기간동안 행사장을 밝힐 성화탑이 점화되는 순간 오색풍선과 행글라이더가 하늘을 뒤덮고 풍물놀이패의 신명나는 한마당이 이어지면서 축제분위기는 서서히 고조됐다. 60여만㎡의 새별오름과 들판에서 열린 들불축제는 정부 지정 관광문화 축제인데다 지구촌의 축제인 월드컵 축구대회를 앞둬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대형 로고가 오름 능선에 제작돼 그 의미를 배가시켰다.

첫째 날은 관광객과 지역주민들이 어우러져 즐기는 잔치마당. 민속공연인 부싯돌 불씨 만들기와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동거부부 7쌍의 합동 전통혼례식이 올려졌다. 또 행운의 돼지와 오리 몰이, 풍물놀이 경연대회, 말사랑 싸움, 전통 마상, 마예놀이, 청소년 댄스 경연대회, 오름 오르기, 달집 만들기 대회, 불싸움 놀이 등과 함께 300발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둘째 날은 윷놀이, 집줄 놓기, 듬돌 들기, 줄넘기, 줄다리기, 오름 오르기, 소원 빌기, 꿩 날리기, 노래자랑, 풍년 기원제, 천지풀이 등이 펼쳐졌다. 들불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들불 놓기’는 이날 저녁 6시20분부터 시작되었다. 15만평 오름과 들판에 활활 타오르는 불! “저 불 속에 올해의 나쁜 액운은 날려버리고, 좋은 일들만 있게 하였으면...” 새별오름에 들불이 놓여지자 저마다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