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새에 관한 명상(冥想)(3) 참새

김창집 2002. 5. 25. 07:57
&& 이 밤, 그 많은 참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 봄·여름·가을 참새들의 보금자리였던 참식나무

날씨가 몹시 차다.
야간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고 야단들이다. 첫눈이 오고 있는데, 국어 수업을 꼭 계속해야 하느냐고 창 밖을 보며 함성을 지른다. '그래 첫눈이구나. 너희들 세대도 우리처럼 첫눈이 오면 가슴이 설레니?' 나는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중얼거리며, 커튼을 걷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사르륵사르륵 쌀알만큼 한 눈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으스스-- 등골이 서늘하다.

문득 참새들이 생각난다. 나는 아이들에게 잠깐 동안 눈을 즐기며 시상(詩想)이라도 떠올려 보라고 얘기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본관 건물 뒤 참식나무를 찾아가는 것이다. 10여년 전 이곳에 학교를 지어 들어오면서 심어놓은 참식나무는 심은 뒤 가뭄이 들어 시시각각으로 마르는 바람에 손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강 전정(剪定)을 해서 살려 놓았더니, 이제는 3층 건물과 거의 높이가 같아졌다.

그런데, 어느 날 구내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이 참식나무에 참새가 하나둘 날아들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마침 나무에는 노란 꽃이 피어 있었는데, 그 꽃이 먹이가 되는지 아니면 그 꽃에 날아드는 벌레라도 잡아먹는 것인지, 새들은 포르릉포르릉 날고 있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한 것이 줄잡아 수만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다. 그 뒤로 가끔 시간이 나면 참새들이 날아드는 것을 보며 참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 위에 참새는 한 마리도 없었다. 가로등에 드러난 참식나무는 건물 뒤에 있어서 북풍에 무방비로 몸을 맡긴 채 제멋대로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빨갛게 익어버린 열매만이 참새 몸뚱이만큼씩 덩어리진 채로 가끔씩 등불에 드러나곤 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참새들은 이 추운 겨울에 다 어디로 간 것일까?


& 옛날에는 참새 한 마리로 백 사람이 먹다가 남아

옛날 참새들은 따뜻한 초가지붕 속, 우리 사람들 곁에 있었다. 두꺼운 처마 끝에 구멍을 깊게 뚫고 깃을 깔아 둥우리를 만들고 따뜻한 겨울을 난 것이다. 긴 겨울 밤 사랑방에 모여 앉아 옛날 이야기에 정신이 쏠렸던 아이들은 어느새 출출해진 속을 어쩌지 못해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참새 잡이에 나선다. 플래시를 들고 자주 봐두었던 차마 끝의 참새 둥지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돌아다니다 참새 구멍을 발견하면 플래시를 비춰 참새의 유무를 관찰한 뒤, 기마전 하듯 세 사람이서 어깨를 겯고 그 위에 올라서서 집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이다.

이 경우 보통 사람은 감히 그 속에 쉽게 손을 넣지 못한다. 한겨울 그 속에 무슨 뱀이 있으랴만 뱀이 있어 물린 사람이 있었다는 엄포 때문에 주춤거리는 것이다. 그러나, 많이 잡아본 사람은 그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을 잊지 못해 자꾸만 나선다. 새가 한 마리라도 잡혀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면, 너나 할 것 없이 참새를 한번씩 손안에 넣어본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들여다보면, 가엾기도 하지만 포근하고 따뜻한 것을 가슴에 품으면 피가 톡톡 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주 속담에 '참새 한 마리면 백 사람이 나눠 먹다가도 남아, 지고 가다 대문 공장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이 있다. 물론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처럼 여러 사람이 조금씩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뜻이겠지만, 참새를 잡는 것은 잡는 데 대한 기대와 잡았을 때의 기쁨, 그리고 만져보는 촉감, 또 소금을 뿌려 화롯불에 구울 때의 냄새를 즐기는 것이지, 실상 입에 들어오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소설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포장마차에 대한 기억이 향수로 다가온다. 당시 포장마차에서 인기 있는 안주라면 참새구이를 빼놓을 수 없었다. 추운 겨울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을 들이키고 참새 다리 하나를 오드득오드득 씹는 그 맛을 어디다 비길 수 있었으랴. 그러다 그게 메추리로 변하더니, 지금은 닭갈비로 대체된 셈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새구이 같은 것이 사라지고 모든 물질의 풍족해지면서 사람들 사이에 거리감이 생긴 건 아닐까?


& 참새는 허수아비를 탄생시킨 장본인

참새는 참새목 참새과의 새로, 한자어로 작(雀) 또는 와작(瓦雀)·빈작(賓雀)이라고도 한다. <물명고>에 보면, 참새가 늙어서 무늬가 있는 것을 마작(麻雀), 유조의 입이 황색인 것을 황작(黃雀), <규합총서>에는 '진쵸'라 하였다. 몸길이 약 14cm 정도로 자라는데, 머리·뒷목은 다갈색이고 눈 밑·귀깃 뒤쪽·턱 밑·멱은 흑색이다. 뺨·목 옆은 흰색이고, 눈의 앞뒤에 흑색의 짧은 눈썹선이 있다.

참새는 우리 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로, 도시·교외·농경지뿐 아니라 구릉과 숲 속에서도 볼 수 있으며, 인공 새집에도 잘 번식한다. 번식기는 암수가 짝지어 생활하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무리져 생활한다. 텃새이지만 농작물의 수확기에는 제법 먼 거리까지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나무 위나 땅 위에서 먹이를 찾아다니며 땅 위에서는 양쪽 다리를 함께 모아 뛰어다닌다. 그러다, 파도 모양을 그리면서 멋지게 비상(飛翔)한다.

일정한 보금자리를 지키며 저녁때가 되면 미루나무 위 또는 대나무 숲에 많이 모여 시끄럽게 운다. 부리를 위로 치켜올리고 꽁지는 부채 모양으로 벌리며 몸은 몹시 뒤로 굽히면서 과시(誇示)행동을 한다. 산란기는 2∼7월 사이로 3∼6월에 주로 산란하는데, 한배의 산란수는 4∼8개이다. 포란 후 12∼14일이면 부화하고 13∼14일 만에 둥우리를 떠난다. 먹이는 여름철에는 주로 딱정벌레·나비·메뚜기 등을 많이 먹고, 식물성으로는 농작물의 낟알과 풀씨·나무열매 등을 먹는다. 유럽과 아시아의 거의 전역에 걸쳐 분포하는 텃새이다.

참새는 사냥새로 10월 이후에 많이 잡아 구워먹는데 특히 겨울철에 잡는 것이 맛이 좋다고 하여, <규합총서>에 납향절식(臘享節食)의 하나로 참새를 먹는 시기·잡는 방법 및 조리법이 기록될 정도란다. <향약집성방>에 참새의 알·뇌·머리피의 약효가 기록되어 있고, <동의보감>에는 참새의 고기·뇌·머리피·암컷과 수컷의 똥 등의 약효를 소개하고 있다.

이곳 제주의 무속신화 '초공본풀이'에서 참새는 자지맹왕 아가씨의 시련을 돕는 영물로 상징된다. 참새가 집안에 집을 지으면 가정에 평안과 기쁨이 온다든지 또는 걷는 참새를 보면 대과(大科)에 급제한다든지 하는 속신설(俗信說)이 있다. 한편 참새는 재빠름·시끄러움·경망스러움·변변찮음 등을 상징하는 새. 오랫동안 벼와 조 등 가을 작물을 쪼아먹어 농가의 애물단지가 되어온 참새는 허수아비를 탄생시킨 장본인.


& 이 추운 밤 참새들은 어디서 지낼까

눈이 쌓여 바깥출입이라도 못하는 날엔 모여 앉아 또 참새 잡을 궁리를 했다. 뜰 위에 눈을 평평하게 고르고 바구니로 덫을 만들어 좁쌀을 뿌려 유인한 뒤, 실을 묶어 길게 잇고 문틈으로 잡아당겨 팽팽하게 묶은 후, 창문 한 귀퉁이에 밖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박아놓은 유리를 통해 엿보다가 바구니 속에 새가 들어온 순간 실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이 참새와 인간과의 싸움은 참으로 끈질긴 인내를 요구한다. 조심성 있는 새의 몸놀림을 견디다 못해 팽팽해진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는 찰라 새는 놀라 날아나 한 동안 접근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바구니 안에 가두었다고 해도 100%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 바구니 안으로 손을 넣어 움직이는 새를 움켜쥐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익숙한 사람의 경우는 눈 속으로 팔을 파묻고 손을 넣어 새를 지치게 만든 후 쉽게 잡아내나 그런 지혜가 없는 사람은 팔을 들이민 틈으로 새를 놓치기 십상이다. 이점은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과 흡사하다. 모처럼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 너무 자만하거나 부주의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잡은 참새를 놓친 기억이 두 번이나 있다. 처음에는 새가 너무 예쁘고 포근함에 손에 넣고 만지작거리다가 좀 느슨하다 싶은 순간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두 번째는 새가 너무도 가여워 일부러 놓치는 척하여 놓아줘 버린 일이다. 그 다음부터는 친구들이 절대로 나의 손에 참새를 넘기지 않아, 참새를 만질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도 변신할 기회를 두 번 놓친 셈이다. 한 번은 실수로 한 번은 모질지 못해서.

이 밤 참새들의 행방을 물어본다. 그들은 어디에서 다리 오그리고 숨어 있을까? 안전한 곳을 찾은 참새는 나무에 의지하여 떨면서 밝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터이고, 바람 의지를 찾은 참새는 낯선 장소에서 두려워 떨며 다리 오그리고 지내고 있을 것이다. 새만이 아니다. 집에 못 가는 실직자들은 어느 한데서 떨며 밤을 지새우며, 땔 것이 없어 찬방에서 밤을 지새는 영세 가족들은 어떻게 추위를 견디고 있을까. 오늘처럼 첫눈 내리는 밤은 추워 떨고 있을 이웃에 손을 내밀어도 좋겠다.


<사진> 위는 참새 사진이고, 아래는 운담 강호문(雲湛姜鎬文) 화백이 그린 '풍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