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주왕산 가다 들른 주산지

김창집 2011. 8. 25. 01:30

 

 

지난 토요일 청송 주왕산 가는 길에 주산지(注山池)에 들렀다.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읍 이전리 876번지에 위치한 청송 주산지는,

물속에 왕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는 좀 특이한 저수지이다.

 

주산지는 주왕산 국립공원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저수지이다.

둘레 1km, 길이 100m의 학교 운동장만 한 크기로 거의 300년간

마르지 않은 신비를 머금고 있다. 연못 북쪽과 동쪽 가장자리엔

수령 100년이 넘은 왕버드나무 30여 그루가 물에 잠긴 채 자란다.

물안개가 아스라이 깔리는 새벽녘엔 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신비함이

극치에 달한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이다.

 

  

 

♧ 주산지의 왕버들 - 권영호

 

시간의 속도를 끊임없이 기억하는

주산지의 왕버들 모자들,

백 년 동안 서로의 발을 묶고 사는 30수

외골수들이 모여 부동면이 된 건 아닐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한 편의 영화 출현으로 셀 수 없는

발걸음들 불러 모아 살랑살랑

온 몸 흔들어 길을 넓힌다

 

왕버들이 쉼 없이 판 한 우물, 주산지

한 계절이 알록달록 곱게 차려 입고

손 배웅을 하는 뒤편에서 알게 모르게

적막의 깊은 뿌리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음을

애써 모른 척, 못 본 척 돌아선다

 

  

 

 

♧ 청송으로 가는 길 - 김종제

 

어느 날 네가 선 자리에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낯선 삶에게

결별이라는 수갑으로

덜컥 손목 채우고

발목에는

안녕이라는 쇠고랑 채우고

아무도 모르게 그곳으로 떠나가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살아 숨쉬다가

죄라는 죄는 모두 다 저질러

청송이라는 땅으로

지나버린 시간을

문득 묻으러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거진 생生의 수풀을

휘적휘적 헤치고 가다가

손으로 건드린 것들 참으로 많았고

길도 아닌 생生을 걸어가다가

발로 차 버린 것들 억세게 많았으니

구불구불 주왕산 산길을 걸어올라

주산지注山池 바라보면서

사랑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뼛속 깊이 뉘우치라는 것이다

물속에 뿌리박고 서 있는

왕버드나무를 바라보며

그와 똑같이 반성의 자세로

삶을 다시 꺼내 반추해 보라는 것이다

물속 독방에 홀로 갇혀

찾아올 누구 없이

고요하게 적멸해 보라는 것이다

 

 

 

♧ 집, 화엄경華嚴經 - 강만수

     

푸른 물로 찍어낸 저 하늘에 띄운 별 별빛에 술치네, 쏟아지는 별빛

 

별자리를 톱아보니 주왕산 주산지(注山池)에 찾아든 술 취한 진객이

취하고 취했는가 함께 취한 별들이 수수럭거리던

 

술잔에 떨어진 산벚나무 늙은 벚꽃잎 바람결에 긴 꼬리 술에 섞어 마셨네

 

  

 

♧ 나무가 사람에게 28 - 고광식

― 주산지(注山池) 버드나무

 

시퍼런 물속이다.

어느 해 봄 잠결에 떠돌던 내가

주왕산 바위를 휘돌아 지금은 푸른 물 가득 찬

주산지 속에 뿌리를 내렸다. 내 목숨이

깊은 물에 수장되어 물 밖으로 반쯤 드러나 있다.

왕이 되려다 꽃으로 피었다 한다. 주나라 재건을 꿈꾸다가 이 곳까지 쫓겨와 죽음을 맞은 주왕. 하늘로 치솟는 바위와 은밀한 굴속의 어둠이 산을 물어뜯고 있다. 계곡마다 밀착되어 꽃송이 후끈 피워 올리는 그 생명력에 그대들은 주왕산 가득 꽃잠 자는 전설을 깨우고 있다.

 

 

그러나 보아라. 물속에 수장되어

물관부의 뜨거운 몸부림으로 꽃 피우는 것을

4월의 숨결처럼 둘러쳐진 바위틈으로

끝없는 입속말에 귀기울이다가

그대들은 눈뜨지만 사실은

가파른 우리의 목숨들이 전설의 옷 짜는 것을

산의 치맛자락을 들춰보며 그대들은

사르락사르락 뿌리내린 우리를 닮기 위하여

깊어 가는 욕망만큼 전설을 만들어낸다.

 

우리들은 물위에서 가벼워진다. 하늘 끝으로 흩어지는 꽃향기가 낮게 낮게 산의 어깨를 문지르고 있다. 비가 내려 주산지 물 불어나도 우리의 꿈은 깊어 가는 물만큼 꽃송이 피워낸다. 주왕산 치솟는 바위마다 입속말 떠돌지만 꽃은 핀다. 시퍼런 물을 밟고 참을 수 없는 갈증으로. 살아야겠다.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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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년 된 저수지 주산지(注山池)에는 버드나무 30여 그루가 물속에서 자라고 있다.

 

  

 

♧ 처서 무렵2 - 박종영

 

대장간 풀무질에 번득이는

불꽃이 아니더라도

가슴 데우는 늦더위에

손바닥 부채로 불러들이는 서늘한 바람

 

처서 지나고 나면 할아버지

헛기침 소리에도 누그러질 거라 믿었던

초가을 볕은 아직도

까마귀 대가리에서 번들거리고

 

푸른 논배미 장리 벼는

올올히 배부른 이삭 배고 서서

스적스적 윤기를 더해가고

 

*만물에 논 구석 돌아치며 뽑아내는

아득한 들소리 밀려오면

덩실덩실 허드렛일꾼 어깨춤이

절로 풍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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