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홍성운의 시와 으아리 꽃

김창집 2011. 9. 24. 00:17

 

몇 달 전에 홍성운 선생으로부터

‘역류’ 동인 10주년 기념 시선집인

‘13현의 푸른 선율’이란 제목의

자선 15편과 작품론을 모은 책을 받았다.

실린 글들이 마음 깊은 곳까지 닿아

한 분 한 분 작품을 틈나는 대로

이곳에 모셔왔는데,

이번 홍성운 시인의 작품 소개로

끝을 맺는다. 좋은 작품들을 기대해본다.

 

홍성운 시조시인은

1959년 제주 봉성출생

1993년 ‘시조문학’ 추천.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0년 중앙시조 대상(신인상 부문) 수상

시집 ‘숨은 꽃을 찾아서’(푸른 숲)

‘상수리나무의 꿈’(태학사)

홍성운 배광익 시화집 ‘마라도의 쇠북소리’(미술세계)

오늘의 시조시인 회원, ‘역류’ 동인. 제주작가회의 회원

 

으아리는 미나리아재빗과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로

줄기는 높이가 2m 정도이며, 잎은 깃모양 겹잎이다.

여름에 흰 꽃이 취산 꽃차례로 잎아귀나 줄기 끝에서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로 흰 털이 난 날개 모양의 꼬리가 있다.

뿌리는 약용하고 어린잎은 식용한다.

우리나라, 중국, 우수리, 아무르 등지에 분포한다.

 

  

 

♧ 상수리나무의 꿈

 

상수리나무는 하늘을 오르고 싶을 때

깊숙이 뿌리박고 물관을 부풀린다

신새벽 빳빳한 잎사귀에

이슬을 앉히나니

 

메숲지는 봄산에 깍지 푼 바람이

가볍다 가볍다 우듬지를 흔들어댄다

풋씨방 바람을 물어

풍경소리 여무는

 

직선의 삶이지만 나이테를 감을 수 있다

깃 고운 박새 한 쌍 가슴에 둥지를 틀어

한 시절 푸른 목청을

대신 울지 않는가

 

무허가로 꿈을 꿔도 한데에선 탈이 없다

생장점이 팽팽하게 노을 휘젓는 가지들

순금빛 하늘을 닦아

별빛 쐬고 싶은 거다

 

  

 

♧ 섬억새 겨울나기

화산도의 겨울은 억새가 먼저 안다

비릿한 근성으로 아무데나 눈발치네

유배지 어진 달빛이

잎새마다 배어나는

대물림에 살아간다 그리움은 습성이다

먼 바다 바라보는 연북정 그 수평선

분분한 떼울음 앞에

순백으로 직립한다

또 한 차례 하늬바람 연착된 하늬바람

과분한 귤나무를 벌채하는 이 땅에

그래도 밑동 따스한

기다리는 뜻이 있다

뉘 한 번 흔들어 보라 내 또한 흔들리마

오일장 좌판 같은 한 푼어치 손짓이여

섬 하나 외고집으로

갈 데까진 내가 간다

 

 

♧ 이슬

풀잎

팽팽히

시위 트는 아침이슬

 

건듯

바람 불어

장력(張力)이

끊기면

 

지상은

울음바다다

눈물의 성소다

 

  

 

♧ 나무야 쥐똥나무야

 

변두리 나무들도

저간엔 서열이 있어

쥐똥나무는 한사코 중심에 서지 못한다

낙향한 술벗 현 씨처럼

오일장에나

들앉는 것

 

밀감꽃향 마구 토하는 섬의 오월햇살

좁쌀만한 꽃들을

좌판에 풀고 보면

쥐똥꽃

쥐똥나무꽃

아이들이 깔깔댄다

 

몇 년째

세금고지서를 받은 적이 없다

늦가을 끝물쯤에

동박새가 거두어 갈

쭉정이

쥐똥 열매들

노숙자의 동전 몇 닢

 

  

 

♧ 수선화

 

한겨울에 저렇듯 푸를 수 있다니

그것도 숭숭한 섬의 담장을 베고

어기찬 하늬바람을

견딜 수 있다니

 

늦은 햇살에 지레 속잎을 펴며

넌지시 하늘을 떠받칠 때부터 나는,

보았네

절명의 순간에

꼿꼿할 네 모습을

 

이윽고

화려한 것들이 몸을 오그릴 때

너는 깨어

기(氣)를 모으고

허옇게 사정했구나

오오! 겨울 오르가슴.

 

  

 

♧ 등나무꽃

 

편종소리 물고 있는

등꽃을 보아라

 

너와 나 간절한 뜻으로 탑을 쌓아올렸듯 등나무 숨막히도록 부둥켜안고 올라가 여린 손 내저으며 고해성사를 하느니. 하늘은 작은 탑들 꽃떨기를 내리시며 사는 게 별것이냐 넌지시 타이르는 봄날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운다

꽃잎

꽃잎

 

  

 

♧ 유월 인동 꽃

 

한라산 오백 고지 동서로 누운 산록도로 변

누군가 욕심을 가둔 가시철책 한 켠에

허물을 감추어주듯 인동이 나앉았다

 

암술 수술 제각각 생각은 다르겠지

은빛 금빛 트럼펫을 일제히 연주한다

참았던 겨울노래다

축축한 속울음이다

 

산길을 오가며 조금은 알 것 같다

만물상의 사내가 손짓하는 의미를

바람에 몸을 내맡긴 인동의 춤사위를

 

감긴 넌출을 풀어 허리 한번 세워보고

이마 짚은 안개에 갈증도 눅이지만

한 사흘 순백한 꽃이

아, 끝내 물이 든다

 

  

 

♧ 배롱나무

 

길을 가다 시선이 멎네

길모퉁이 목백일홍

 

품위도 품위지만 흔치 않은 미인이다. 조금은 엉큼하게 밑동 살살 긁어주면

까르르 까르르륵 까무러칠듯 몸을 떤다. 필시 바람 때문은 아닐거다. 뽀얀

피부며 간드러진 저 웃음, 적어도 몇 번은 간지럼타다 숨이 멎은 듯

 

그 절정

어쩌지 못해

한 백일 홍조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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