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처럼 국립제주박물관 아카데미 답사
추사 김정희와 함께 가을 길 거닐기 행사에 참가했다.
지난 5월, 2010 지식경제부 광역경제권 연계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추사 유배길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의 유배생활을
기반으로 3개 코스로 되어 있다.
우선 추사관에 들러 글씨와 그림을 일별하고
추사적거지, 송죽사터, 송계순 집터, 동계 정온 유허비,
대정향교, 정난주 마리아묘 등을 둘러보았다.
사실 걸어서 다녀야 하는데, 차를 타고서도
하루가 저물었다. 유배길 그들이 겪었던 마음
고생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본 하루였다
지금 올리는 사진은, 다른 것을 찾으려고
외장하드를 정리하다가 만난, 어느 날 별도봉에서
만난 일몰 풍경이다. 억새가 있는 것으로 보아
요즘과 비슷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 일몰 앞에서 - 권갑하
언제나 보내고 나서
마른 풀잎처럼 흐느끼는
서늘한 눈물자국
뼛속 깊이 사무칠지라도
선홍빛 울부짖음으로
타오르고 싶었다
흐름 깊어갈수록
뜬눈으로 야위는 강
처연히 상처를 묻으며
별을 띄워 올리지만
내 안의 넘치는 슬픔
잦아들지 않는다
서둘러 옷을 벗는
허전한 부재 속에서
어둠, 그 둑을 허무는
핏빛 목마름으로
휑하니 지고 싶었다
외진 비명도 없이
♧ 일몰 - 김정임
허공으로 치닫던 날빛
바다의 발끝에 모여
잉걸불 지피는 저녁 때
의식을 치르듯
몸을 기울여
바다는 가만히 눕고 있다
연모의 노래 출렁이는 심연
불꽃 당겨지면
속살까지 달아 달아오르다
눈부시게 터지는 폭죽
다시 빠르게 사라지는 관능의
저 꽃들,그늘진 자리
아름다운 소멸의 흔적
♧ 일몰(日沒) - 강정식
산등성이 너머에서
어둠이 신작로 따라
쿨럭쿨럭 무릎까지 흘러넘쳐도
덧씌워진 하늘은 언제나 푸르게
살아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팔다리가 잘린 플라타너스
빨간 입술의 마네킹이 양편으로
알몸인 채 깊고 긴 터널을 만들어
彼岸피안과 借岸차안은 어디쯤에서
무엇으로 구별되어야 하나
연속 문양의 보도블록 그 틈새 사이로
발톱부터 녹아내려
질척하게 어둠에 섞여 번진다
해는 빌딩 꼭대기에서, 바다에서,
모래 사막에서 떠서 여기에 진다
너의 가슴에 지고,
네 검은 눈동자에 지고
눈물 속 호수에 떨어지고
딸기처럼 허공에 매달린 수은등
설익은 빛은 부서지며 비늘처럼
그녀들의 눈썹 위에, 젖무덤에, 둔부에
그리고 내 어깨 위에 쌓여 간다
나 이대로 잠들고 싶어진다
기대어 선 어둠 잃어버린 그림자
잃어버린 그림자 너는 비어 버렸다
그녀들의 춤사위는
스란하게 깊어 가는 어둠을
보내려 하지 않는다
♧ 그 일몰, 7월 13일 7시 40분 - 유봉희
세 뼘쯤 남은 해,
바닷가로 나가는 길에 갈대밭 갈대들은
어서 오라는 것인지 고만 돌아가라는 것인지
서걱거리는 손을 자꾸 흔들고 있다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언제나처럼 조금 망설이다 한 길로 들어섰지만
모든 입구가 출구를 물고 서 있다고 생각하면
갈대의 손짓이 무슨 의미이든 상관 있겠는가
바다는 저기서 마지막 햇살로 나뭇잎처럼 찰랑인다
두 뼘쯤 남은 해,
일렁이는 물결에 금빛 망을 던져 놓고
다시 생각하듯 머뭇거리는 일몰
수평선에 걸려 반짝이는 잔물결들은
심해의 나뭇잎, 떨어지는 오늘 해 한 덩이도
온 몸을 던져 심해의 뿌리에 닿고 싶은가
한 뼘쯤 남은 해,
해 종일 무겁던 머리, 당기듯 끌리듯 바다로 내렸다
기어코 뿌리에 닿았는가
붉은 해를 우려낸 바닷물이 수평선을 조금 넘었다
♧ 일몰 앞에서는 누구나 - 강영환
누구나 한 번쯤 바라보지 않았으랴
누구에게나 해는 지고 내게도 그렇듯
지는 해를 안고 언덕을 넘어간다
순식간에 결정되어버린 떠남 앞에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향을 피우고 묵념을 올려도
내게는 떠난 슬픔보다 남은 슬픔이
더 견고해 질 뿐 이 낡은 도시에서는
떨어지는 해가 어둠을 남긴다
산천초목이 먼저 고요히 잠들 때
깊이를 알 수 없는 잠 속으로
한 번 숨이 끊어지면 깨어나지 않을
그것은 실로 엄숙한 침묵
아쉬움이나 통곡으로도 닿지 못할
싸늘하게 식은 욕망을
안타깝게도 말해 주지 않는다 그것을
누구나 한 번쯤 바라보지 않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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