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월드컵 4강으로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축구 경기 중계를 즐겨 보았다.
구기 운동 중 경기를 제대로 해본 것이 축구 정도였고,
축구는 자본주의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나라에서 장려하고 힘을 쓰는 운동이니까.
그러나 오늘처럼 축구 보며 짜증나는 경기는
없었던 것 같다. 레바논 팀이 아주 잘하는 팀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매일 축구해서 프로 팀에서
몇 억 연봉 받는 선수들이 패스하는 것 하고는….
우리 박지성, 박주영 빼면 피파 랭킹 한 150위 뒤로
밀릴 것 같다. 저 담쟁이처럼 낯이 타오른다.
담쟁이덩굴은 포도과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로
줄기에 덩굴손이 있어 담이나 나무에 달라붙어
올라가며 심장 모양의 잎은 끝이 세 쪽으로 갈라지고
톱니가 있다. 6~7월에 황록색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취산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장과로 가을에 자주색으로
익는다.
♧ 담쟁이덩굴 - 최이인
당신이 비록 돌벽처럼 돌아앉아 말이 없어도
나는 당신을 두 손에서 떼어 버릴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비록 천길낭떠러지처럼 접근을 거절해도
나는 당신을 온몸으로 기어가 붙잡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일이 아득하고, 삶이 밑바닥 없이 허전하여 눈물겨울 때
당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괴로운 맘 어디메 등기대어 편히 쉴 수 있을까요?
온 세상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덮여 캄캄할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나는 당신을 향해 줄곧 앞으로 나아가렵니다
오르다가 넘어지고 꼬꾸라지고 밟혀서 상처투성이가 돼도
아픔에 주저앉지 않고 더욱 바스라지게 당신을 꼭 껴안을래요
거친 바람에 때론 온갖 회의가 몰려와서 하루살이가 힘겹기도 하지만
당신모습 눈에 잘 안보여도 더듬어 뻗는 손길에 따슨 가슴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 없이 내 홀로 어찌 이 땅에 뿌리내리고 누빌 수 있겠습니까?
당신을 소망하지 않고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눈 어둔 잎새인 것을
춥고 외로울 때 당신 탓이라고 눈흘기지 않을래요
기쁘고 즐거울 때 나 때문이라고 자랑하지도 않을래요
우리 서로 뜨겁게 끌어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데 어울어져 살아가요
한 오백년 어제처럼 그렇게 변함없는 사랑 나누며 살아가요
♧ 저 담벼락 붉은 담쟁이덩굴 - 이정자
저 담벼락 붉은 담쟁이덩굴이
담을 넘는다, 벽을 허문다
붉게 물들인다는 건
심장이 뛴다는 거다, 두근거림이다
살아있음의 증거다
꿈쩍도 않던 벽을, 경계를
붉게 물들이며 누군가를 허물어 본 적 있는가
사랑의 감전, 그 뜨거운 피의 전류를
느껴 본 적이 있는가
♧ 붉은 담쟁이 - 현상길
하늘을 내려
마른 세월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상강 무렵
그리움 한 개비 꺼내
벽에다 긋는다
추억이 타는 냄새
그 질긴 불씨를 당긴다
번져 오르는 가을
바깥에서 시작하여
안으로
내 안으로
타 들어가는 노을
사랑인가
사랑인가
♧ 담쟁이 - 홍일표
그대가 꽃 둘레를 서성이며
뜬구름에 눈썹 빠뜨리고 있을 때
안락의 등 뒤 날카로운 수직의 벼랑에
조각, 조각 달라붙어
살아 뛰는 파도
그 아래 엎드려 숨죽이고 있는 벼랑은
이제 부러진 창이다
날마다 벼랑의 허리를 꺾으며
담쟁이는 한 땀 한 땀
제 목숨의 푸른 탯줄을 이어가고,
빈틈없이 묶인 벼랑의 등판 위에는
크고 작은 수천의 깃발
잘 닦인 청동의 슬픔으로 반짝인다
♧ 담벼락에서 담쟁이덩굴을 보다 - 김종제
담벼락이 그곳에 없었다면
덩굴손으로 담을 붙잡고
밤새
벼락처럼 위로 뻗어 올라가는
저 담쟁이
벼랑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 담벼락에 밤이 없었다면
달도 별도 사다리 놓고
하늘 천장에 닿지 못하였을 것이니
나는 불면증으로
눈을 뜬 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 담벼락에
아침이 도망가고 없었다면
나는 하루 종일
검은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로
환청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담벼락에
봄이 없었다면
담쟁이
이제 막 푸르른 저 나뭇잎들은
색맹의 겨울로 눈이 멀었을 것이다
그 담벼락에
담쟁이가 없었다면
나의 심장은
차갑게 식었을 것이니
누군가를 붙잡고
힘있게 열매 맺지 못하였을 것이다
오늘 아침
담쟁이 덩굴을 못 보았다면
담벼락 같은 당신을 붙잡지 못하고
지하로 추락하는 꿈만 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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