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담쟁이덩굴 붉어지다

김창집 2011. 11. 16. 01:09

  

한국 축구 월드컵 4강으로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축구 경기 중계를 즐겨 보았다.

구기 운동 중 경기를 제대로 해본 것이 축구 정도였고,

축구는 자본주의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나라에서 장려하고 힘을 쓰는 운동이니까.

 

그러나 오늘처럼 축구 보며 짜증나는 경기는

없었던 것 같다. 레바논 팀이 아주 잘하는 팀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매일 축구해서 프로 팀에서

몇 억 연봉 받는 선수들이 패스하는 것 하고는….

우리 박지성, 박주영 빼면 피파 랭킹 한 150위 뒤로

밀릴 것 같다. 저 담쟁이처럼 낯이 타오른다.

 

담쟁이덩굴은 포도과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로

줄기에 덩굴손이 있어 담이나 나무에 달라붙어

올라가며 심장 모양의 잎은 끝이 세 쪽으로 갈라지고

톱니가 있다. 6~7월에 황록색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취산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장과로 가을에 자주색으로

익는다.

 

 

♧ 담쟁이덩굴 - 최이인

 

당신이 비록 돌벽처럼 돌아앉아 말이 없어도

나는 당신을 두 손에서 떼어 버릴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비록 천길낭떠러지처럼 접근을 거절해도

나는 당신을 온몸으로 기어가 붙잡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일이 아득하고, 삶이 밑바닥 없이 허전하여 눈물겨울 때

당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괴로운 맘 어디메 등기대어 편히 쉴 수 있을까요?

 

온 세상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덮여 캄캄할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나는 당신을 향해 줄곧 앞으로 나아가렵니다

 

오르다가 넘어지고 꼬꾸라지고 밟혀서 상처투성이가 돼도

아픔에 주저앉지 않고 더욱 바스라지게 당신을 꼭 껴안을래요

 

거친 바람에 때론 온갖 회의가 몰려와서 하루살이가 힘겹기도 하지만

당신모습 눈에 잘 안보여도 더듬어 뻗는 손길에 따슨 가슴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 없이 내 홀로 어찌 이 땅에 뿌리내리고 누빌 수 있겠습니까?

당신을 소망하지 않고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눈 어둔 잎새인 것을

 

춥고 외로울 때 당신 탓이라고 눈흘기지 않을래요

기쁘고 즐거울 때 나 때문이라고 자랑하지도 않을래요

 

우리 서로 뜨겁게 끌어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데 어울어져 살아가요

한 오백년 어제처럼 그렇게 변함없는 사랑 나누며 살아가요

       

 

♧ 저 담벼락 붉은 담쟁이덩굴 - 이정자

 

저 담벼락 붉은 담쟁이덩굴이

담을 넘는다, 벽을 허문다

 

붉게 물들인다는 건

심장이 뛴다는 거다, 두근거림이다

살아있음의 증거다

 

꿈쩍도 않던 벽을, 경계를

붉게 물들이며 누군가를 허물어 본 적 있는가

사랑의 감전, 그 뜨거운 피의 전류를

느껴 본 적이 있는가

 

 

♧ 붉은 담쟁이 - 현상길

 

하늘을 내려

마른 세월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상강 무렵

그리움 한 개비 꺼내

벽에다 긋는다

추억이 타는 냄새

그 질긴 불씨를 당긴다

번져 오르는 가을

바깥에서 시작하여

안으로

내 안으로

타 들어가는 노을

사랑인가

사랑인가

 

 

♧ 담쟁이 - 홍일표

 

그대가 꽃 둘레를 서성이며

뜬구름에 눈썹 빠뜨리고 있을 때

안락의 등 뒤 날카로운 수직의 벼랑에

조각, 조각 달라붙어

살아 뛰는 파도

그 아래 엎드려 숨죽이고 있는 벼랑은

이제 부러진 창이다

날마다 벼랑의 허리를 꺾으며

담쟁이는 한 땀 한 땀

제 목숨의 푸른 탯줄을 이어가고,

빈틈없이 묶인 벼랑의 등판 위에는

크고 작은 수천의 깃발

잘 닦인 청동의 슬픔으로 반짝인다

 

  

 

♧ 담벼락에서 담쟁이덩굴을 보다 - 김종제

담벼락이 그곳에 없었다면

덩굴손으로 담을 붙잡고

밤새

벼락처럼 위로 뻗어 올라가는

저 담쟁이

벼랑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 담벼락에 밤이 없었다면

달도 별도 사다리 놓고

하늘 천장에 닿지 못하였을 것이니

나는 불면증으로

눈을 뜬 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 담벼락에

아침이 도망가고 없었다면

나는 하루 종일

검은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로

환청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담벼락에

봄이 없었다면

담쟁이

이제 막 푸르른 저 나뭇잎들은

색맹의 겨울로 눈이 멀었을 것이다

그 담벼락에

담쟁이가 없었다면

나의 심장은

차갑게 식었을 것이니

누군가를 붙잡고

힘있게 열매 맺지 못하였을 것이다

오늘 아침

담쟁이 덩굴을 못 보았다면

담벼락 같은 당신을 붙잡지 못하고

지하로 추락하는 꿈만 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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