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엔 순천만 갈대를 찍어다 올렸는데
금년에는 5월에 다녀왔기 때문에 못 찍었었는데
어제 하도리 철새 도래지에서 새를 쫓는다고
눈총을 맞으면서 찍었으나 갈대가 많이 상해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으나 지대가 낮고
나무로 방풍이 되는 곳이라 흔들리지 않아
멋지게 찍지 못해 마음에 안 내켜도 그냥 올린다.
♧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중요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갈대, 존재의 이유 - 김윤자
빈 들을 떠나지 않는 너는
바람을 만나야
겨우 몸짓으로 울어보고, 웃어보고
지나가는 계절이
견인에 가까운 힘으로
꽃과 나비를 몰아가는데도
너는 홀로
보기에는, 아주 어리석을 만큼 질긴 뚝심으로
이 땅의 겨울을 붙들고 있어
그 자리, 그 들녘, 그 강가에
숙명처럼 하늘거리며
때론 주저앉아 서걱이며
다 뭉개지거나, 살점이 으스러지는 순간에도
너는 여전히
영역을 이탈하지 않는
돌과 얼음이 생의 전부일지라도
당당한 뿌리 하나로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자존
아, 너는 눈부신 어머니, 침묵의 어머니
♧ 갈대 - 권도중
어느 그리움 있어
이 언덕 가득 피었느냐
살아 온 언덕이 숨차지만
잊고 산 세월이 갈대로 살아
이렇게 서걱대는 가을이구나
여기선
내 머리칼도 갈대로 날리고
바람에
바람처럼 마음 열고
내가 이렇게 가득하다
거대한 종을 이 언덕에 두면
낱낱의 사연인 갈대 소리가 모두
종속으로 들어가리라
들어가서 말 못하는 가슴은
언덕에 피리라
한 생각 끝나고 나도
한 자락 바람 있어
소리는 바람 타고 가장 멀리 날아가서
한 가슴 마다에
부대끼며 살리라
♧ 갈대는 스스로 갈대라 말하지 않는다 - 유하
저 거센 바람 속에서,
시누대는 늘 시누대의 몸짓으로
등뼈 끊어질 듯 흔들린다
갈대는 갈대의 몸짓으로
온 머리채 다 닳도록 목을 놓는다
지빠귀는 지빠귀의 몸짓으로
울음의 바퀴를 달고 쏜살같다
바람에 오래 말없이 흔들려
삶의 골병든 것들이여
그리움도 침묵의 흔들림으로 골병들 때
겨울 들녘 같은 시름의 나날들,
비로소 한낮의 햇살이 이끄는 길처럼
길이 길이 눈부시리니
나, 바람 속에서
내 몸짓으로 당당히 뒤흔들리다
저 펄럭이는 갈대의 머리채처럼 온통
은빛으로 소멸해가리라
♧ 갈대는 서서 잠을 잔다 - 정군수
갈대가 왜 서서 잠을 자는 지를
전라도 갯땅 황토현 가는 길
곰소항 갈대밭에 누워 보면 안다
부딪히다 서걱이다 목쉰 갈대들
갯땅에 목숨 걸고
저희끼리 뿌리 얽고 살아도
피처럼 솟는 서러운 이야기
바람 불면 소리 내어 울 줄 안다
눈을 맞다가
갈대가 왜 서서 잠을 자는 지를
순교자 묘역이 보이는
서학동다리 인력시장에 가보면 안다
얼어터진 손등으로 새벽을 기다리다
종소리 먼저 들으려고
갈대는 한밤내 서서 잠을 잔다
♧ 마른 갈대로 서서 - 목필균
--안면도 방포 습지
갈대숲에는 어린 물새들이 소리를 낮추어 울고, 습지 잔물
결은 빛을 다한 해넘이에도 흔들렸다. 쓰러진 허리로도 비스
듬히 추억을 빗어대는 한 무더기의 갈대. 아련한 달빛이 어둠
위로 떠오른다.
어깨 시린 겨울밤, 낮아진 체온만큼 그리운 내 안의 사람들.
바람 따라 일렁거리는 마음의 텃밭엔 아직 아무 것도 심지
못했다. 조금씩 키를 높이는 그리움만 마른 갈대로 서서, 방
파제 너머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귀를 열어 놓고 있다.
♧ 갈대 - (宵火)고은영
지쳐가는 계절의 고독한 말들이
뿌리 깊은 뼛속까지 내려와 박힐수록
바람의 장난에 우수수 떨어지는 외로움
이미 썰물이면 텅 빈 갯벌에
가을빛으로 무심한 저 눈부심
그대의 모난 가지에 어쩌다가 나는
이토록 쓸쓸하게 대롱거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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