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김창집 2011. 11. 22. 00:09

 

작년 11월엔 순천만 갈대를 찍어다 올렸는데

금년에는 5월에 다녀왔기 때문에 못 찍었었는데

어제 하도리 철새 도래지에서 새를 쫓는다고

눈총을 맞으면서 찍었으나 갈대가 많이 상해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으나 지대가 낮고

나무로 방풍이 되는 곳이라 흔들리지 않아

멋지게 찍지 못해 마음에 안 내켜도 그냥 올린다.

 

 

♧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중요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갈대, 존재의 이유 - 김윤자

 

빈 들을 떠나지 않는 너는

바람을 만나야

겨우 몸짓으로 울어보고, 웃어보고

지나가는 계절이

견인에 가까운 힘으로

꽃과 나비를 몰아가는데도

너는 홀로

보기에는, 아주 어리석을 만큼 질긴 뚝심으로

이 땅의 겨울을 붙들고 있어

그 자리, 그 들녘, 그 강가에

숙명처럼 하늘거리며

때론 주저앉아 서걱이며

다 뭉개지거나, 살점이 으스러지는 순간에도

너는 여전히

영역을 이탈하지 않는

돌과 얼음이 생의 전부일지라도

당당한 뿌리 하나로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자존

아, 너는 눈부신 어머니, 침묵의 어머니

 

 

♧ 갈대 - 권도중

 

어느 그리움 있어

이 언덕 가득 피었느냐

 

살아 온 언덕이 숨차지만

잊고 산 세월이 갈대로 살아

이렇게 서걱대는 가을이구나

여기선

내 머리칼도 갈대로 날리고

 

바람에

바람처럼 마음 열고

내가 이렇게 가득하다

 

거대한 종을 이 언덕에 두면

낱낱의 사연인 갈대 소리가 모두

종속으로 들어가리라

들어가서 말 못하는 가슴은

언덕에 피리라

 

한 생각 끝나고 나도

한 자락 바람 있어

소리는 바람 타고 가장 멀리 날아가서

한 가슴 마다에

부대끼며 살리라

 

 

♧ 갈대는 스스로 갈대라 말하지 않는다 - 유하

 

저 거센 바람 속에서,

시누대는 늘 시누대의 몸짓으로

등뼈 끊어질 듯 흔들린다

갈대는 갈대의 몸짓으로

온 머리채 다 닳도록 목을 놓는다

지빠귀는 지빠귀의 몸짓으로

울음의 바퀴를 달고 쏜살같다

 

바람에 오래 말없이 흔들려

삶의 골병든 것들이여

 

그리움도 침묵의 흔들림으로 골병들 때

겨울 들녘 같은 시름의 나날들,

비로소 한낮의 햇살이 이끄는 길처럼

길이 길이 눈부시리니

 

나, 바람 속에서

내 몸짓으로 당당히 뒤흔들리다

저 펄럭이는 갈대의 머리채처럼 온통

은빛으로 소멸해가리라

 

 

♧ 갈대는 서서 잠을 잔다 - 정군수

 

갈대가 왜 서서 잠을 자는 지를

전라도 갯땅 황토현 가는 길

곰소항 갈대밭에 누워 보면 안다

부딪히다 서걱이다 목쉰 갈대들

갯땅에 목숨 걸고

저희끼리 뿌리 얽고 살아도

피처럼 솟는 서러운 이야기

바람 불면 소리 내어 울 줄 안다

눈을 맞다가

갈대가 왜 서서 잠을 자는 지를

순교자 묘역이 보이는

서학동다리 인력시장에 가보면 안다

얼어터진 손등으로 새벽을 기다리다

종소리 먼저 들으려고

갈대는 한밤내 서서 잠을 잔다

 

 

♧ 마른 갈대로 서서 - 목필균

    --안면도 방포 습지

 

갈대숲에는 어린 물새들이 소리를 낮추어 울고, 습지 잔물

결은 빛을 다한 해넘이에도 흔들렸다. 쓰러진 허리로도 비스

듬히 추억을 빗어대는 한 무더기의 갈대. 아련한 달빛이 어둠

위로 떠오른다.

 

어깨 시린 겨울밤, 낮아진 체온만큼 그리운 내 안의 사람들.

바람 따라 일렁거리는 마음의 텃밭엔 아직 아무 것도 심지

못했다. 조금씩 키를 높이는 그리움만 마른 갈대로 서서, 방

파제 너머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귀를 열어 놓고 있다.

 

 

♧ 갈대 - (宵火)고은영

 

지쳐가는 계절의 고독한 말들이

뿌리 깊은 뼛속까지 내려와 박힐수록

바람의 장난에 우수수 떨어지는 외로움

 

이미 썰물이면 텅 빈 갯벌에

가을빛으로 무심한 저 눈부심

그대의 모난 가지에 어쩌다가 나는

이토록 쓸쓸하게 대롱거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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