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박주가리 씨앗 날개 달다

김창집 2011. 11. 27. 00:51

 

드디어 어제 오름해설사 5기 강좌가 끝났다.

앞으로 30년 동안만 더 같이 오름에 다니자던 그들.

홀로 서게 된 그들을 보면 너무 흐뭇하다.

 

사회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이 한데 모여

인연이란 끈, 오름이라는 화두로 일곱 달을 같이 하더니

이젠 인생길의 친근한 벗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대여섯 달 그들과 함께

나머지 오름을 찾아다닌다고 약속했는데

정규 과정이 아니기에 자유롭게 같이 즐기며

저 박주가리 씨앗처럼 날아다닐 것이다.

 

박주가리는 박주가릿과의 여러해살이 덩굴풀로

줄기는 길이가 3m 정도이고 땅속줄기로 번식하며,

줄기나 잎을 꺾으면 흰 즙이 나온다.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긴 심장 모양으로 잎 뒷면은 분처럼 희다.

7~8월에 엷은 자주색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총상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타원형의 골돌과를 맺는다. 씨에는 흰 털이 있어서

바람에 날린다. 씨는 식용하고 흰 털은 솜의 대용으로

인주를 만드는 데에 사용한다.

 

 

♧ 새가 된 꽃, 박주가리 - 고진하

 

어떤 이가

새가 된 꽃이라며,

새가 아닌 박주가리 꽃씨를 가져다 주었다

귀한 선물이라 두 손으로 받아

계란 껍질보다 두꺼운 껍질을 조심히 열어젖혔다

놀라왔다

나도 몰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가 아닌 박주가리 꽃의

새가 되고 싶은 꿈이 고이 포개져 있었다

그건 문자 그대로, 꿈이었다

바람이 휙 불면 날아가버릴 꿈의 씨앗이

깃털 가벼움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꿈이 아닌,

꿈의 씨앗도 아닌 박주가리의 生,

어떤 生이 저보다 가벼울 수 있을까

어느 별의

토기에 새겨진 환한 빛살무늬의 빛살이

저보다 환할 수 있을까

며칠 나는

그 날개 달린 씨앗을 품에 넣고 다니며

어루고 또 어루어 보지만

그 가볍고

환한 빛살에 눈이 부셔, 안으로

안으로 자꾸 무너지고 있었다

 

 

♧ 박주가리 사랑 - 松花 강봉환

 

기나긴 여름이 가고, 가을

그대를 향한 그리움 좆아

나 홀로 찾아 떠나고 싶어

 

벌써 떠나가려는 가을슬픔에

뒹구는 낙엽과 소슬바람만이

마지막 남은 나의 껍질을 흔들며

또 다른 외로움으로 다가서고

 

이제 막 떠나려는 내 날개에

하염없이 애끓는 마음만을 간직한 채

너울너울 찾아 헤매고 싶다.

 

지나간 여름 뜨거운 햇발아래

탐스럽게 익어간 해바라기처럼

어김없이 태양만을 응시하듯

 

석양빛 넘어 어둠이 짙어오면

지난여름을 힘겹게 지켜온

나의 남은 마지막 껍질을 깨며

 

불빛 속에 비쳐진 내 날개를 펴고

빛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차가운 그대의 사랑 찾아 나서리.

 

 

♧ 박주가리 - 우공 이문조

 

한적한 시골

언덕배기

오리나무

감고 오르는

박주가리

하늘 향해

오르고

또 오른다

님 사랑

염원 모아 모아

주머니 가득

솜털 같은

홀씨 날려

온 세상 복음 전파하네

꺾으면

새하얀 피

순교자의

넋이런가.

 

 

♧ 날개도 없으면서 날아가는 - 김명석

 

아주 멀리 있는 풍경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거침없이 날아가네

이미 내가 아닌 남이 되어버린 공간입니다

사람들은 멀리 돌아들 가고

나는 날개 아닌 날개를 꺾으면서

빙글빙글 돌아봅니다 돌아 온 날을 생각하면서

양지 바른 곳에 내 모든 것이 묻힌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서러운 것들 말하지 않겠습니다

천년의 노래로 거울을 닦으며

자그마한 망치와 정으로

은하까지 놓을 다리를 준비하며

속삭이겠습니다 날개도 없으면서

날아가는 이유를 속삭이겠습니다

 

 

♧ 융푸라우, 그 흰 날개 - 김정화

 

그 언제였던가

내게 있었던 깨끗함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노래를 부르면 노래가

눈부시게 빛나던 때는

 

한때는 철없어

시공의 구분이 없던 때

날아가는 새떼를 가리키며 턱없이

웃음 풀어 날리던 때

 

오늘 여기 융푸라우에 와서

다시 한 번 그때를 생각한다

변함없는 깨끗함으로

언제까지나 제자리를 지키는 저 당당함이여

 

나 이제

누구의 이름도 붙여지지 않는

본연의 얼굴로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노래를 부르면 노래가

오래도록 내 품안에 머물고 있을

융푸라우, 그 흰 날개를 바라본다

 

아득히 만년설 녹을 무렵

그리고

다시 쌓여갈 때까지.

 

 

♧ 추락하지 않는 날개 - 강명주

 

뜻이 크다 하여

모두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높은 이상은 우리네 삶을

고양 시켜주지만

삶의 소모를 요구하고

 

우리는 불안전한 존재로

뜻이 하늘에 있다 하여도

두 발은 땅을 딛고 있질 않습니까

높이 오르려고만 한다면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로

날개는 녹을 것이며

중력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역사는 한꺼번에 진보하지 않으며

인간은 갑자기 성숙하지 아니하니

이상의 추구

추락하지 않는 날개는

오직

굳은 땅 뚫고 오르는

새싹의 문명을 닮아야만 되겠습니다

 

 

♧ 씨앗론 - 이승희

 

   Ⅰ

 

꽃이 피거나

열매 맺는 일이란 습성이나

본성이 아닌 거야

검은 흙 속을

아주 오래 무던히 걸어 온 시간들이

단단하게 뭉쳐 있다가

풀려지는 일이야

감자 꽃이 피는 것은

하얗게 피어 말하는 것은

땅 속에 말 못할 그리움이

생겨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지

  

  

  Ⅱ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봐. 저 들판, 저 강가, 네가 발 딛고 선 이 언 땅 속 어디에든 바람이 숨겨 둔 풀씨들이 발꼬락을 움직여 무엇으로 일어서려하는지. 한 때 그것들은 서로 다른 날개의 길이로, 그 불균형으로 바람을 타고 올랐을 것이고, 혹은 가능한 멀리로 자신을 뱉어 내는 그 모든 세상에서 밀려나 아주 쓸쓸한 저녁을 맞았을지도 모르지. 잘 보면 네가 가고 싶은 곳은 분명히 보일 거야. 바로 네가 발 딛고 선 그 자리일지도 몰라. 네가 가둔 것들, 네가 끝끝내 손에 쥔 그것들을 놓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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