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계요등의 꿈이 있다면

김창집 2012. 1. 12. 09:28

 

 

   세상에 자신을 위한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것은 자신의 일이고, 어떤 것은 자기와 무관한 일일까? 홀로 살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일인데, 누구는 남을 위해 백원을 쓰고, 누구는 자신을 위해 백원을 벌려하는가? 저 황금빛 나는 계요등 열매는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텅 비어 있으면서도 종(種)의 번성을 꿈꾼다. 조금이라도 나눌 꿈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리라.

 

  계요등(鷄尿藤)은 쌍떡잎식물 꼭두서니목 꼭두서니과의 낙엽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산기슭 양지바른 곳이나 바닷가 풀밭에서 잘 자라는데, 길이는 5∼7m 정도 자라며, 어린 가지에 잔털이 나고 독특한 냄새가 난다. 꽃은 7∼9월에 피는데, 흰색 바탕에 자줏빛 점이 있으며 안쪽은 자줏빛이고 지름 4∼6mm, 길이 1∼1.5cm이다.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원추꽃차례 또는 취산꽃차례로 달린다. 꽃받침과 화관은 5갈래로 갈라지고 수술은 5개이다.

 

  열매는 공 모양의 핵과로서 지름 5∼6mm이며 9∼10월에 노란빛을 띤 갈색으로 익는다. 관상용으로 심으며 한방과 민간에서 거담제, 거풍제, 신장염, 이질 등에 약으로 쓴다. 우리나라 제주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경기도 지역과 일본, 타이완, 중국, 필리핀에 분포한다. 잎이 넓고 뒷면에 부드러운 털이 빽빽이 나는 것은 털계요등이라고 한다.

  

 

♧ 소가 웃는다 - 김광렬

 

오름 오르는 나에게

길게 하품하며 소가 웃는다

너는 늘어지게 풀을 뜯어본 일이 없지

게으르게 풍경을 즐겨본 일도 없지

느긋함이 아름다움인 줄 모르지

오자마자 한번 쓱 훑어보고는 떠나는 인간

차를 타고 뿌옇게 먼지 일으키며 와서는

쫓기듯 부랴부랴 되돌아가는 인간

목을 빳빳이 세우고 가슴은 새처럼 떨며

마음은 늘 세속에 갇힌 속물

그렇지, 맞지

입 걸쭉하게 하품 궁굴리며

세상일 잊은 듯 선한 눈을 뜨고

소가, 풀잎 속에서

한없이 느릿느릿 웃는다

 

 

♧ 돌하르방 - 문무병

 

나는 돌하르방이다

아니, 제주의 자연과 역사와

삶의 저주와 증오,

그리고 제주의 실체, 무덤, 절망, 죽음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돌의 영이다.

제주사람들이 마을의 허한 부분에 갖다 세워놓으면

나는 탑이 되었고, 석장승이 되었고, 거욱대가 되었다.

나는 신이면서 종이었고, 할아버지면서 순진무구한 아이였다.

내 눈에는 수천년 슬픔이 고여 있다.

그래서 절망의 역사를 눈으로만 전달하는

영혼이 숨쉬는 돌이기 때문에

시를 쓰지 않는다.

눌변이 진실임을 알기 때문에 천년을 침묵으로 살아,

움직이지 않는 광대다.

 

 

♧ 곶자왈 동백 - 김수열

 

뾰족한 날엔 동백의 숲으로 가자

사위 하얗게 덮여도

활엽의 푸르른 것들이

싱그럽게 살아 숨쉬는 곶자왈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거기

번잡한 마음일랑 먼물깍에 씻고

어린 콩짜개난들이 인사하는 숲에 들어

하얀 눈길 걷다보면

상처 입은 노루의 핏자국 같은

동백의 마음을 읽게 될지니

 

잠시 몸을 낮추고 들여다보면

붉은 그 마음 거기 있으리니

꽃의 혓바닥에 입맞춤하시라

한때 꽃이고 싶었고

언젠가 이렇게 지고 싶었다는 말은

가만 가슴에 묻으시라

 

그대 어깨 위로

꽃 지고 다시 피어도

마음 붉은 사람은 숲에 들 수 있으니

나오는 길은 잠시 잊으시라

눈은 내리고 내려

그대 흔적 위에도 내릴 것이니

 

 

♧ 길 위 - 나기철

 

널 안 보려니까 내가 아프다

그냥 그 길만 오고 갔다

길 위 가지만 남은 때죽나무 높고

그 위 섬광처럼 흰 구름 떴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동백나무 꽃만

수북이 내렸다

 

 

♧ 새의 조준 - 정군칠

 

무늬석인가

숲길에서 돌멩이 하나 집어 들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똥이다

단단한 발길들 흔적이 없고

묽은 새똥만이 안타까이

돌의 몸을 일으킨다

나무 그늘에서 나는 가려운 머리를 긁적일 뿐인데

나를 겨냥한 새 한 마리

 

 

♧ 인동일기(忍冬日記) - 허영선

 

강이 얼었다, 종이비행기

맨발인 채

강을 건넌다

 

눈만 멎으면

바람 소리 풀 스치는 소리

섞이지 않는다

한사코 잠기지 않는다

 

발목끼리 발목 묶고

건너는 어둠은

깨어지는 법 없다

 

묶어 둘 수 있을까

소리들과

빈 강물과

날으는 종이비행기

 

 

♧ 섬억새 겨울나기 - 홍성운

 

화산도의 겨울은 억새가 먼저 안다

비릿한 근성으로 아무데나 눈발치네

유배지 어진 달빛이

잎새마다 배어나는

 

대물림에 살아간다 그리움은 습성이다

먼 바다 바라보는 연북정 그 수평선

분분한 떼울음 앞에

순백으로 직립한다

 

또 한 차례 하늬바람 연착된 하늬바람

과분한 귤나무를 벌채하는 이 땅에

그래도 밑동 따스한

기다리는 뜻이 있다

 

뉘 한 번 흔들어 보라 내 또한 흔들리마

오일장 좌판 같은 한 푼어치 손짓이여

섬 하나 외고집으로

갈 데까진 내가 간다

 

 

♧ 바다를 꿈꾸며 - 문영종

 

바다를 두고 눈감으면

의식의 끝까지 물기운이 차올라

물결을 꾸꾸는 구름노래

구름을 꿈꾸는 물결노래

가슴 귀에 가득 출렁이고

푸른 핏줄기가 일어서도록

물길을 밟으면서

바람을 만나면 바람꿈

별빛을 만나면 별빛꿈

둥그런 수평선 안 中心에서만 논다

눈감고 바다를 보면

세상 온갖 것들이 보이지 않아

트인 귓속으로 바닷소리가 기어들고

트인 가슴엔 無心한 바다로 가득해

無心한 바다 꿈만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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