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산다는 주목,
이 혹한에도 아랑곳없이 붉은 열매로
추위를 녹이고 있다. 엄동설한을 선채로
견디고 있을 국군장병들이 생각난다.
내 젊은 날의 끓은 피도 그랬었던가?
12월초에서 2월 중순까지 있었던 논산과
익산에서의 전후반기 훈련소 생활과
경기도 양평에서의 자대생활에서 가끔씩
나갔던 초병, 그리고 월남에서 귀국하여
양구, 각 훈련장에서 보냈던 겨울이
이제 40년 전의 일이 되어 아득하기만 하다.
주목(朱木)은 주목과에 속한 상록 침엽 교목으로
높이 22m까지 자라고, 지름은 2m에 달한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큰 가지와 원대는 적갈색이서
주목이란 이름이 붙었다. 잎은 나선 모양으로 달리는데
옆으로 벋은 가지에는 깃처럼 두 줄로 배열되며,
표면은 짙은 녹색이다. 꽃은 잎겨드랑이에 달리며,
4월에 핀다. 기구, 조각, 건축재 또는 붉은빛의 염료로 쓰고,
정원수로 재배한다.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
일본, 사할린, 대만,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 주목, 천년의 꽃이여 - 이복란
인고의 세월을
머리에 이고 선
하늘향해 부르짖는 울음인가
그대!
세월의 깊이가
옹이져 박힌 가슴 자락에선
사랑과 이별의 설움이
굽이 굽이 맴을 도는데...
움켜쥔 날들의
서러운 몸짓이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한 밤들의
가여운 영혼을 깨워,
피우자...천년의 신비를
핏빛 살점을 에이는 바람을 따라
그대 가슴 외진 곳에 칼을 꽂듯
순결의 넋이여!
♧ 천년주목의 절규 - 雲史 이종환
하늘 받들고 두위봉에 서서
명命줄 천년세월에 풀고
산하 향해
주목朱木은 절규한다
하늘 높아 오르지 못하고
따地에 엎드려 낮추고 살기 천여 년
본성의 설자리는
영육 함께한 그자리라 하여라
붉게 물든 살비늘 떼어내는 아픔
비와 바람에 내놓는 너그러움은
한 생각 놓고
자성의 다스림 나와 같이 하라하네
일장춘몽 유한한 인생
마음 한곳에 모아 깊이 생각하고
밝게 깨달으라는 교훈
가슴에 안으리라 주목의 절규를......
♧ 천년의 바람 ㅡ 주목(朱木) : 최은하
살아 천년
죽고 나서도 정정한 천년이지.
휘몰아쳐 가고 오는 바람굽이에서
내게도 허튼 수작이야 지울 수 없지.
천둥과 함께 허공을 흔들어 울리고
높이만큼의 어지럼증 달래며
별을 헤아리던 날은 적막하기만 했어.
날 다스리는 바람은 언제나
다가서거나 떠나가면서도 젖어드는 목소리지.
삭아내리는 저 끝머리 어깨 손마디
어디서나 목소린 프르게 살아 넘실대지.
자꾸만 설익은 물음일랑 그만 거두게나
해와 달 아래 숱한 비바람에도
나는 어떻게 달리 둔갑하거나
스치는 구름 한 점이지도 못하고
태어난 이 땅에서 별자릴 지키며
지내온 속사정이고 요 행색이지.
다시금 날 일깨우는 예대로의 바람
그냥 불어와 고갤 넘고
천년의 강을 건너네.
♧ 태백산 주목 - 권오범
죽은 듯싶은 것이
천년 삶 채우려는 듯
껍데기만으로 버티고 선
저 질긴 목숨 줄
갈라진 뱃속엔
나이테도 없어
열두 폭 병풍 닮은 덩치로
인고의 세월을 가늠할 뿐
그 모습 가관이라
사진배경 한다마는
성근 머리털이
눈 더미에 짓눌려 힘겨워라
북풍한설 얼마나 매섭던지
뒤틀린 채 고사된 새끼 주목들이
남쪽을 그리워하며
윙윙 울어대고 있다
♧ 주목(朱木) 한 그루 서 있는 풍경 - 최진연
쓰러질듯 쓰러질 듯한 햇살의 전송을 받으며
마른 잎들이 그들의 실낱같은 마지막 길을
사그락 사그락 떠난 뒤, 나무들은 가지마다
여름 환상의 너울만 펄럭이고 있었네.
내 자주 가 보는 아랍의 사막 부근
그 황량한 벌판을 적시는 젖줄 같은 강물
보이지 않던 주목 한 그루
그들 앞에 서 있고,
대마 껍질을 얽어 만든
잠자리채가 누웠던 추녀 밑으로
광창(光窓) 불빛이 새어나오는 나의 생가
놋화로는 가야국 고분 속 마구(馬具)처럼
먼지 속에 퍼렇게 녹슬고 있었네.
메밀잠자리들의 풋잠도 깨우지 못하는
마른번개 한두 번 번쩍이더니
자작나무 숲에 들어선 바람처럼
나를 눈부시게 하던 구름잎사귀들
어느 새 도망치듯 다 사라지고
하늘은 수박덩이처럼 익고 있었네.
미처 떠나지 못한 여름새의 아픔과
이미 쓰러져 누운 햇살을 밟으며
세상 밖으로 나가는 산책길에 만나는
우리들의 자유와 이별을 노래하는
청동(靑銅)의 새 한 마리
하늘을 향해 깃을 퍼덕이고,
현실의 겨울과 맞서 있는 주목 한 그루
그 짙은 검푸른 잎새 사이 사이에
하얗게 식어 가는 화로의 재 속
불씨 같은 열매들을 달고 있었네.
창백한 햇살의 뱀허물과 함께
꽃너울 환상을 걸치고 엎드려 있는
찔레덩굴 아래로 폴폴 날아들던
굴뚝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30년을 너머 살아도 언제나 낯선 동네
열매들은 제 자리에 눈물로 떨어지고
사람들은 온 세상을 진동하는 곰팡내
죽음의 동굴 여행을 다시 떠나고 있었네.
♧ 주목(朱木) 2 - 김진섭
놔두시게
그저 바라만 보시게나
비바람몰아치고
눈보라 제아무리 매서워도
그냥 놔두시게
칼 바람불어 붉은 가슴 도려내어도
나 여기
이 자리에
千年을 살아갈지니
그저 바라만 보시게나
♧ 주목나무 - 김정호
능선에 눈보라 몰아칠 때마다
햇살 그리워 실눈 뜨고
하늘 향한 그리움 지울 수 없어
고개 숙이고 천년을 살았다
속내 녹아 내리는 아픔
구멍난 허리춤에 시린 바람 불 때마다
정지된 세월에 지쳐 몸 기울고
한때는 먼 별 찾아
뿌리를 내리려 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아득한 허공
이제 보니 몸이 낮아질수록
하늘이 더욱 가깝구나
별을 가슴에 보듬고 몇 세기를 살았다
눈물로 살아온 지난 세월 한(恨)되어
가을이면 붉게 치장하고 여심을 유혹하는
단풍나무가 부럽기도 했다
차라리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차디찬 몸 던지고도 싶었지만
이제 이 몸 다듬어
둥근 돌 하나 머리에 이고
또 다른 천 년은 박제된 세월 아래 눕고 싶다
♧ 주목朱木 - 반기룡
인고의 세월 견뎌낸 청년이여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으로
이 세상 온갖 풍상 바라보며
시간을 달구고
세월을 엮어
아름다운 옹이로 서 있으니
뒤틀린 마다마디
상처나고 함정처럼 파였지만
영원히 살아있는 젊은이여
시멘트가 속을 채우고
온몸에 도배장판 하듯 덧칠하였어도
일그러지지 않은 푸른 신사여
천년세월 응시하며
푸른 옷 걸치고
오가는 사람 주목하며
뒤틀린 생각을 질정해주는
싱싱한 거인이여
피톤치드 향 지그시 뿌리며
늘 푸른 나무로 자리매김하여
주목注目하지 않을 수 없는
주목朱木으로 우뚝 서 있는
천년 나무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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