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눈 속의 어린 소나무

김창집 2012. 1. 14. 00:48

 

산다는 것과 죽음의 차이는 무엇인가?

종족 번식을 위해 강한 유전자가 필요하기에

수컷끼리의 치열한 다툼, 약육강식의 끊임없는 희생,

MBC ‘남극의 눈물’은 결국 인간의 탐욕을 경계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탐욕의 문제다.

일말의 동정도 없이 엄청난 부의 축적을 노리는

1%의 부자들은 사회가 붕괴되면 자신들의 부(富)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아직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곁에 총기를 마련해두어야 하고

적어도 가까운 곳에 자신을 지켜줄 해군부대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아름다운 하와이의 진주만이 왜 폭격을 당해야 했는지

히로시마는 왜 1순위로 원폭을 맞았는지 되새겨 볼 때다.

평화의 섬에 위험한 것을 함부로 둘 필요가 있을까?

눈 속의 어린 소나무, 저걸 베려는 사람은 없겠지?

 

 

♧ 소나무 - 전병철

 

양지바른 언덕배기 다소곳이 날개 펼친

검푸른 자태여

 

행여나 찔릴세라 터진 팔을 조심하며

지나가는 바람 잘게 부숴

주렁주렁 엮어 달고

 

올록볼록 얽어진 몸뚱어리 곧추 세우며

시간의 알몸을 고이 품은

보금자리

 

오로지

곧은 절개 잃지 않으려는

딱 부러진 마음 하나로

사시장청을 지켜 나가는 계절의 파수꾼

 

정기어린 뿌리마다 생명이 숨쉰다.

 

 

♧ 소나무 - 구재기

    --千房山천방산에 오르다가·10

 

어쩔 사이도 없이 지름길로 달려들어

千房山에 오르노라면

아, 굵은 막대로도 쳐 물릴 수 없는 가늘한 소리

 

가까운 큰 숲에 온통

오래고 먼 바람이 서려 있는가

갈림 많은 고샅길에 툭툭

마음먹은 일들을 털어 내는가

 

천만가지 잡것들을 송두리째 거두고

하늘과 땅 사이의 울림과도 같이

비낀 하늘의 구름을 거두고

천만 년의 무덤 속 금붙이 같이

 

千房山에 오르다가

시장기 도는 한낮까지 오래오래 서서

정신없이 듣고 있는

세세히 눈부신 가얏고 소리

 

 

♧ 소나무의 침묵 - 오보영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을 때

귀를 막아버리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입을 닫아버릴 수 있는 건

 

오직 나만의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다 듣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을 다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쉼을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다

 

요즘 난

 

그러고 싶다

 

 

♧ 소나무 - 박인걸

 

살아서 천년을

한결 같이 푸르게

죽어서 관솔로

천년 은은한 향

 

폭풍우 몰아쳐도

품위 있게 흔들릴 뿐

輕薄경박한 비명으로

흐트러지지 않는다.

 

숲이 옷 벗을 때

속살 드러내지 않고

울긋불긋 요란을 떨어도

곁눈질 하지 않는다.

 

삶이 무거워

등줄기 골이 파여도

巨木이 되는 꿈 하나로

구별되게 사는 나무

 

 

♧ 겨울 소나무 - 권영민

 

하얀 겨울이 찾아왔다고

바람은 가지 끝에 시린 손 저어

비장한 세월을 노래하고 있다

나무여, 뿌리 곧게 내린 후

꿈을 묻고, 청춘을 묻고

하나의 사랑을 위하여

흔들리지 않는 삶의 주춧돌

한겹 한겹 쌓아가고 있느니,

하늘을 향해 열린 너의 자리

살을 에이는 비수 휘몰아쳐도

꺽일 듯 휘어지지 않는

여린 몸매 위에

사무치는 고통 비켜가고 있구나

사무치는 눈물 비켜가고 있구나

바람이여, 불어오라

잠들지 않는 눈물을 딛고

마지막 남은 고통마저 꺼진 자리

곱게 열리는 새날을 위하여

푸른 사랑 더욱 푸르게

바람이여, 불어오라.

 

 

♧ 소나무 - 장은수

 

소나무는 엄동설한에도

푸른 미소 머금고 살지만

언제나 속이 편한 것은 아니다

 

눈보라 몰아쳐

자작나무 참나무 벌겋게 옷을 벗고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안으로 토해 내지 못한 아픔을

입술 깨물며 살자니

까맣게 타는 속은 오죽하겠는가.

 

인내와 한바탕 전쟁 벌여

상처가 깊어 가도

차마 말 못할 몸부림의 흔적

끈끈한 거품 물고 누런 송진 토해 낸다.

 

육신이 늙어 화로에 숯이 되면

하늘에 못을 박아

그 사연 걸어 놓으리.

 

 

♧ 조선 소나무 - 김시천

 

무릎 꺾여도 쓰러지지 않는구나

먼 하늘 보며 잠시 눈인사 주고받는구나

한 세상 푸르러 하늘만 보자는 구나

설움도 원망도 이제는

그만 발밑에 떨구라 하는구나

그렇게 바위 벼랑에 걸터앉아

시조 반 장을 읊는구나

저 아래 우리 사는 마을에도 혹 그런 사람 있을까

늙어 구부러졌으나 눈빛 더욱 청청한

그런 사람

 

 

♧ 소나무 - 방철호

 

  야수의 눈이 불을 밝히는 절벽의 밤이다. 따가운 햇살에 방황하던 영혼을 씻고, 구름 위에서 가출 소년들의 잔치를 벌였던 하루도 지나갔다. 이슬 묻은 바람 한 줄기가 비린내를 풍기며 온몸을 감싼다. 칼벼랑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지도 오래되었다. 활엽수, 잡목림의 햇볕 다툼에 좋은 자리 다 내주고 아무도 살 수 없는 황무지를 일구어 온 것은 먼 조상 때부터였다. 왜 조상들은 他와의 싸움보다 나와의 싸움을 선택했을까. 싸움에 서투른 조상은 발 디딜 곳 없는 벼랑 끝에서 머리칼 쏟아지는 생의 비탈을 거머쥐거나, 냉혹하게 눈보라 치는 얼음 구덩이에 뿌리 단단히 박는 일이었다. 아무도 올 수 없는 곳에 생의 꽃을 피우는 일. 그것은 끝없는 자신과의 힘 겨루기였다. 얼굴이 바늘이 되고 일년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함도, 송홧가루의 그윽한 향기도 그 결과였다. 솔방울은 늘 푸른 하늘을 꿈꿔왔다. 꿈은 별무리 쏟아지는 하늘의 끝자락에서 펄럭이다 사라지곤 하였다. 살아가는 일은 항상 가꾸어 놓은 자리를 내주고 상처를 받는 일이었다. 비틀린 전리품을 인간들은 ‘하’희한하다 자신의 정원에 옮겨 놓았다. 하늘의 천둥, 번개, 폭우, 눈보라, 인간 세상의 나무꾼은 시원하게 가슴을 씻어주는 봄바람 같은 것이었다. 或者혹자의 손가락을 받으며 짐짓 무덤덤한 척 얕은 미소의 가슴앓이는 나를 키우는 무서운 거름이 되었다. 이제 길은 하늘로 열려 있거나 저 이끼만 사는 툰드라의 凍土동토이다. 낯익은 또는 낯선 잡목림의 영토 넓히기가 물소 떼 몰려오듯 귓전을 휘감는다. 하얀 밤이 눈을 감는다. 아직 耐性내성의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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