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탐라국 입춘굿놀이

김창집 2012. 2. 4. 08:01

 

 엊저녁 제주시청과 관덕정에 이르는 코스에서 탐라국 입춘굿놀이 전야제가 있었다. 어제 행사에서는 다른 해와 달리 눈에 띄는 상징물 하나가 있었다. 딴 때 같으면 낭쉐가 주인공이었는데, 어제는 자청비가 주인마님 자리를 차고 앉았다. 자청비는 제주 세경놀이에서, 농사를 관장하는 여신으로 사랑의 여신이기도 하다.

 

  오늘 2월 4일(토요일)에 관덕정과 목관아지에서 10시부터 6개 단체에서 벌이는 걸궁과 영등굿 보존회의 입춘굿(초감제, 석살림, 불도맞이 등), 판소리, 전래놀이 등 축하공연, 놀이패 한라산 등 5개 단체의 세경놀이, 서예퍼포먼스, 전통무예 등이 열린다. 어린이 및 가족을 위해 참여와 체험마당이 11:00~15:00 목관아 일대에서 꼬마 낭쉐 만들기, 기메 만들기, 얼굴그리기, 가족사진 찍기, 가훈쓰기, 신년운수, 줄넘기, 춘첩그리기, 널뛰기, 바람개비, 제기차기, 비석치기, 먹을거리 등이 유명 화가, 민요패 소리 나라, 탐라사진가협회, 주관단체 등에 이루어지며, 입춘 국수 먹기 행사도 곁들여져 볼거리, 먹을거리 판이 벌어진다. 사진은 어제 벌어진 행사를 스케치한 것이다.

 

 

♧ 자청비 신화(요약)

 

  먼 옛날, 주년국 땅에 김진국 대감과 자주 부인이 살았다. 대감은 큰 부자였지만 오십이 되도록 자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쪽에 있는 절인 상주사 스님이 일러준 대로 백미 열 섬과 은 백 냥 백 근을 싣고 상주사로 향했다. 가다가 마을 서쪽에 있는 백금사의 스님이 길을 막고 자기 절에 시주하고도 자식을 못 얻은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고 하자 김진국 대감은 바로 백금사로 향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상주사 스님은 분해서 펄쩍 뛰면서 앙갚음을 하겠다고 주문을 외웠다. 열 달 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자주 부인은 예쁜 여자 아이를 낳고 정술데기는 사내 아이를 낳았다. 김진국 대감은 딸 이름을 자청비라고 지었고, 정술데기는 아들 이름을 정수남이라고 지었다.

 

 자청비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랐는데, 특히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났다. 하루는 정술데기에게서 주천강에서 빨래를 하면 손이 희고 고와진다는 말을 듣고 옷장의 옷을 모두 꺼내 빨래하러 갔다. 마침 그때 하늘나라 대신인 문국성의 아들 문도령이 주천강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자청비에게 물을 얻어 마신 문도령은 주천강 너머에 글을 배우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자청비는 문도령이 마음에 들어 함께 가자고 했다.

 

  자청비는 얼른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 허락을 받고 남자 옷으로 갈아입은 뒤 문도령과 길을 떠났다. 거무 선생 밑에서 둘은 공부도 함께 하고 방도 함께 쓰면서 친해졌다. 3년이 흘러 하늘나라에서 문도령에게 돌아와 장가들라는 편지가 왔다. 둘은 마지막으로 주천강에서 목욕이나 하고 헤어지자고 했다.

 

 자청비는 나뭇잎을 몇 장을 뜯어 “3년이나 한 방을 쓰고도 여자인 줄 모르는 무심한 문도령아”라고 적어 아래쪽으로 흘려보냈다. 문도령은 자청비가 남자가 아니라서 좋았고, 자청비는 문도령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음에 두었다고 고백했다. 그날밤 둘은 굳게 사랑을 약속했다. 날이 밝자 문도령은 박씨 하나를 주면서 박이 익어서 따기 전까지 반드시 돌아오겠노라 약속했다.

 

 

 한편 일은 않고 게으르기만 한 정수남은 자청비에게 거짓말을 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문도령이 선녀들과 노는 걸 봤다는 것이다. 자청비는 정수남이 말만 믿고 문도령을 봤다는 산에 갔는데, 정수남이 따라와 자기와 혼인하자고 덤볐다. 자청비가 돌을 들어 정수남의 머리를 내리치자 정수남이는 피를 흘리며 죽어버렸다.

 

  정수남을 묻고 집으로 돌아온 자청비는 울면서 아버지에게 모두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청비를 내쫓아버렸다. 사라장자 집에서 환생꽃을 얻은 자청비는 정수남을 살리고 함께 집에 돌아갔으나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고 하여 다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이곳저곳을 떠돌던 자청비는 비단을 짜는 주모할멈의 수양딸이 되었다.

 

  주모할멈은 하늘나라에서 쓸 비단을 짰는데, 하루는 문도령님 결혼식 때 쓸 옷감이니 정성을 다하라는 말을 듣고 옷감 끝에 ‘가련하다 자청비, 불쌍하다 자청비’라는 글자를 새겨 하늘나라로 보냈다. 비단을 보고 자청비를 알아본 문도령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청비가 아니면 절대 장가들지 않겠다고 우겼다.

 

  자청비는 불구덩이 위에 놓인 칼선다리를 밟고 건너와 문도령과 혼인을 했다. 자청비는 성격도 활달하고 살림솜씨도 뛰어나 하늘나라에 칭찬이 자자했다. 자청비는 하늘나라에서 농사짓는 것을 열심히 배워 알차고 수확이 좋은 곡식을 얻어 인간 세상에 전해주었다. 그리하여 옥황상제는 자청비와 문도령을 농사일을 관장하는 신으로 삼았다.

 

 

♧ 입춘 추위 - 권오범

 

평년보다 유별나게 행세했던 동장군

제 기념일인 대한도 모른 채 한눈 팔아

꼬리를 사리나 싶더니

그러면 그렇지 제 성깔 남 주랴

 

정상적으로 오르내리던 온도계 혈압이

봄의 문턱에서

지하로 급격히 추락해

온기 사라진 살벌한 세상

 

계절도 시기가 만만찮아

호락호락한 봄에게

그렇게 쉽사리

자리 비켜주기가 싫은 게야

 

다짜고짜 다가와 주물러대는

뻔뻔스런 봄의 끄나풀 아양 못 이겨

제풀에 지쳐 스러지는 그날까지

또, 얼마나 발악을 할는지

 

 

♧ 입춘立春에게 묻다 - 오정방

 

춘래불사춘이라 하드니

봄이 왔다해도 봄 같지 않구나

 

겨울 속의 봄인가

봄 속의 겨울인가

 

가면 오고 오면 또 가나니

오면 가고 가면 또 오나니

 

겨울을 비집고 찾아온 봄,

자연의 시간표를 누가 돌리랴

 

임자여, 먹물을 좀 준비해줘

‘입춘대길’이라 써 붙여야겠거든?

 

 

♧ 난 지금 입덧 중 - 목필균

      --입춘

 

하얀 겨울,

치마끈 풀어내고 살그머니

가슴에 작은 꽃씨 하나 품었다.

 

설 넘긴 해가 슬금슬금 담을 넘자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

토해도 토해도 앙금으로 내려앉는 금빛 햇살

 

매운 바람 속에 꼼지락거리던

꽃눈 하나 눈 비비고 있다.

 

 

♧ 입춘날, 운주사 빈 터에 배를 띄우고 싶다 - 박제천

 

코가 깨진 미륵보살,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문둥이보살, 얼굴마저 지워진 크고 작은 돌부처, 나 몰라라 잠을 자는 기왓장보살이 모두 모이는 곳

 

부뚜막귀신, 대들보귀신, 보리뿌리귀신, 동서남북 오방신, 여기서는 모두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되는 곳

 

햇빛 좋은 입춘날, 눈이 부신 햇빛 거울로, 제 마음속, 무덤속 어둠을 불살라, 보살도 부처도 잿더미가 되고 마는 날

 

돌쩌귀를 열고 나오는, 얼음장을 깨고 나오는, 겨우내 내린 눈을 가슴으로 껴안아 녹인 물로 가득가득 속을 채운 냉이며 달래, 움파며 승검초, 죽순이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되네.

 

 

[시작노트]

 

   이제 입춘이다. 입춘 전야가 해넘이이기에 이날밤 콩알을 뿌려 잡귀들을 좇아낸다고 한다. 입춘부터를 새해로 잡는 해맞이 액땜이다. 입춘이 오면 먼저 동부새가 불어 언 땅을 녹여내면서 땅속에 깊이 잠들었던 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무렵에는 아직도 눈발이 날린다. 흰 매화빛 눈이 거울같이 반짝일 만큼 햇빛이 좋은 시절이기에 내게는 이 무렵 작품이 많다. 문득 오래 전에 다녀온 운주사가 생각났다. 거기 계신 온갖 부처님들도 햇빛 좋은 날에는 낮잠을 한숨 늘어지게 잘 것 같았다. 풀 한포기마저 응신하여 나투시는 부처님이니 냉이며 달래, 움파며 승검초, 죽순과 같은 것들도 하나같이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되어 낮잠을 즐길 것 같았다.

 

 

♧ 입춘 - 하두자

 

편지가 왔다

 

눈물 섞인 바람 속을 떠난 뒤

소식 끊겼던 그대

손 끝 시린 어둠의 시간들을 지나

꽃눈 하나 피우며 오고 있다는

그대 더딘 발소리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사랑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것

물기 오른 나무 속살 베어내어

그대 이름을 쓴다

먹빛 그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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