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정월대보름 들불축제

김창집 2012. 2. 6. 00:13

 

 

♧ 소원을 빌며 막을 내린 들불 축제

 

  새별오름 들불축제에 다녀왔다. 작년에 구제역 때문에 쉬어 섭섭했는데, 올해는 그제 그렇게 춥고 눈 때문에 교통이 불편하여 시작이 제대로 되지 못했는데, 마지막날 날씨가 좋아 그런대로 순조로운 맺음을 하였다. 오전에 오름 5기와 관리 담당 오름인 비치미와 개오름엘 오르고 나서 점심을 먹고 바로 출발한 터라 이웃한 괴오름에 오르고 나서 가보니, 거의 파장 분위기였다.

 

  마을과 동 단위 천막은 이미 철수되었고, 음식점마다 만원이어서 할 수 없이 제일 끝에 위치한 다문화 가정 단체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월남국수 몇 그릇과 순대 모듬, 오징어 불판 구이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이곳저것 둘러본 다음 자리를 정하여 앉아 불놓기 차례를 기다린다. 오늘 축제 마지막 날에는 제주고유의 성년의식을 소재로 듬돌들기 경연행사로 대단원의 오름 불 놓기의 날 일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제주민요 공연이 끝나고 봉화대에서 채화된 횃불은 용띠 청소년들에 의해 전달되고 도백 및 관련 인사와 관광객들에 의해 대형달집으로 이동 후, 화산이 터지는 모습을 연출하는 오름 정상 화산분출쇼, 대형달집 점화와 동시에 새별오름 불놓기, 소원소지 태우기 등 순으로 웅장하게 펼쳐졌다. 불타는 오름, 광장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 그리고 오름이 타 들어가는 모습과 병행하여 불꽃놀이가 펼쳐지면서 환상적인 조명, 레이져쇼가 축제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 인류의 역사는 곧 불의 역사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고요히 가라앉았던 마음 한 곳으로부터 무언가 솟구쳐 오른다. 이를 테면 자신의 몸을 온통 태워버리고 싶은 충동 같은 것, 그래서 온몸이 뿌듯해지는 충만한 에너지를 받아 한껏 발산하고 싶어지는... 이렇듯 불은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이상한 매력을 가졌다. 아아,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훨훨 타오를 수 있는 사랑이라면, 이 한 몸 다 태워도 좋으리라.

 

  불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해방되었고, 거듭되는 문명의 발달을 이룰 수 있었다. 그것을 이용하여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하였으며, 어둠의 공포를 쫓아내고 생활시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또, 그 따뜻한 열을 이용하여 생활할 수 있는 지역을 넓혀나가는 한편, 도구를 제작 사용함으로써 찬란한 인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열다섯 번째로 열렸던 ‘정월 대보름 들불 축제’는 가축 방목을 위해 해묵은 거친 풀의 줄기나 가시넝쿨을 태우고, 갖가지 해충을 없애기 위해 마을 별로 겨울철에 불을 놓았던 들불 놓기 전통 민속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현하여 관광 상품화시킨 축제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해 개최하고 있는 이 축제는 1997년에 처음으로 시작하여 2012년 15회째를 맞고 있다.

 

  제주시에서 주관하는 이 축제는 오름 하나를 태우며 끝났다. 불을 토해내는 활화산 같이 웅장한 불의 향연은 불(火)과 삼다(三多)의 향토적 자원을 극대화하여 축제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우수축제 2회, 예비축제 1회, 유망축제 7회 등으로 지정되면서 명실상부 전국적인 축제로 자리매김 한데 이어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2월 2일 시작하여 4일에 막을 내렸다.

 

 

 

♧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위에 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움 살라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 밤 이 물 속에 ……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이나 있을까 ……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한 열정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 숨 막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 (중략)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을 저어 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소리 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의 어두운 가슴 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

                                          

                                                                              <주요한의 ‘불놀이’에서>

 

 

 

♧ 들불 - 홍수희

 

처음,

당신의 불꽃은

나의 발끝에 와 닿았네

 

발끝에 닿자마자

타닥타닥 소리내며 타 들어오는

말없던 그대 그리움이여

 

나 빈 몸으로 이렇게 누워

당신의 뜨거운 손길

가난한 목마름에 기다리느니

 

오직, 사랑만 내게 남으라

 

발목을 타고 올라 허리께 까지

허리께를 타고 올라 가슴께 까지

가슴께를 타고 올라 이마 끝까지

 

태우는 당신의 불길,

그 회오리에 내 넋 불티 되어도

그 회오리에 내 넋 재가되어도

 

집착은 가고 목숨은 가고

목숨 같은,

사랑만 사랑만 내게 남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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