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분홍노루귀로 맞는 봄

김창집 2012. 3. 10. 00:43

 

   3박 5일간 태국 치앙마이에 다녀 온 이튿날 밖으로 나가다가 화단에 뭔가 지피는 게 있어 다가서 보니, 바로 이 분홍노루귀다. 몇 년 전 산행 중에 노루귀 열매가 보이길래 혹시 하는 생각으로 따다 화단에 뿌려 두었더니, 그 중 세 알이 발아하여 이렇듯 한 포기에 꽃이 여럿 달렸다. 올 유난히 추워서인지 좀 늦을까 했더니, 제 때에 핀 셈이다. 햇빛에 피어 보송보송한 털이 보여야 하는데, 사나흘 후 낮에 다시 찍어야 하겠다.

 

 

  노루귀는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잎은 뿌리에서 나고 세 갈래로 갈라진다. 이른 봄에 흰색 또는 연한 붉은색 꽃이 꽃줄기 끝에 잎에 앞서 한 송이씩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를 맺는다. 3갈래로 나누어진 잎은 토끼풀의 잎과 비슷하며 꽃이 진 다음에 뿌리에서 나오는데, 털이 돋은 잎이 나오는 모습이 노루귀 같다고 해서 이름을 노루귀라고 부른다. 어린잎은 식용하고 전체를 약용한다. 산지의 숲 밑에 자라는데 우리나라 각지에 분포한다.  

 

 

♧ 노루귀 - 김윤현

 

너를 오래 보고 있으면

숨소리는 작은 꽃잎이 될 듯도 싶다

너를 오래오래 보고 있으면

귀는 열려 계곡 너머 돌돌 흐르는 물소리

다 들을 수 있을 듯도 싶다

아, 가지고 싶었던 것 다 가진 듯

내 마음 속에 등불 하나 환히 피어나

밤길을 걸을 듯도 하다

마음으로 잡고 싶었던 것들

이제는 다 놓아줄 것도 같다

너를 보고 있으면   

 

 

♧ 잊지 말아요 - 최원정

 

강물이 풀리고 나면

곧, 피어 날

얼음새꽃이나 노루귀를

남한산성 칠부 능선쯤에서

찾아보고 난 뒤

 

재 너머 주막집에 들러

도토리묵과 파전을 안주로

좁쌀막걸리 한 동이 나누다보면

세상도 취하여

발치에서 흔들리겠지만

 

 

당신 곁에서

늘 함께 웃어 줄 사람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지금처럼 밖에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갈피, 사이사이에도

따뜻한 햇살이 스며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 비밀의 방 - 이정자

 

봄에 피는 노루귀는 흰색의 꽃을 피우기도 하고 분홍의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절제와 격정의 농도를 스스로 조절하면서 자신만의 비밀의 방을 갖는다

흰색이 적멸을 눈앞에 둔 정신의 고지에서 발화하는 빛이라면

분홍의 꽃 속에는 천만 겹의 날개짓과 망설임 그리고 감각의 떨림이 아로새겨져 있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마음과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

이 상반된 두 열망이 이 봄, 내 안에 흰색과 분홍의 노루귀로 피어난다

 

 

♧ 들꽃 - 진장춘

 

풀과 꽃 그리고 나는 모두 이 땅에서 생겼다.

그런데 나는 이 땅의 풀과 꽃을 외면했다.

외로운 것은 풀과 땅이 아니라 나였다.

 

이 땅에서 사는 풀이름을 안 후에는

풀들이 나에게 손짓을 하였고

나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 전에는 잡초라고만 부르던 이름을

나는 달개비, 명아주, 강아지, 방동사니 하고 불러주었다.

 

 

산에 있는 이름 모를 꽃이라 부르던 꽃들의 이름을 안 후에는

꽃들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면 말을 걸어왔다.

양지꽃, 솜다리, 노루귀, 은방울꽃, 금낭화, 찔레꽃 같은 예쁜 이름도 좋고

며느리밑씻개, 노루오줌, 개불알꽃 같은 속된 이름도 좋고

호래비꽃, 상사화, 애기똥풀 같이 사람 냄새가 푹 배어있는 꽃도 좋다.

조상들이 모두 이유가 있어 붙인 이름이다.

 

당귀, 도라지, 익모초, 백리향, 산수유 같은 꽃들은 약 냄새가 나고

조팝나무, 이팝나무, 취나물, 물레나물, 돌나물 같이 눈물나게 하는 꽃도 있고

망초, 개망초, 돼지풀, 아카시아, 미국개기장 같이 식민지 냄새를 풍기는 것도 있다.

 

들꽃은 나에게 살아 온 이야기와 전설을 들려주었다.

이 땅의 풀과 꽃들을 안 후

들과 산이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권경업

 

누구십니까

혹여 키 낮은 풀꽃 아닐런지요

겨우내 아린 꽃물 품어

보아줄 이 있건 없건

조그만 꽃부리 애써 여는 당신은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소리 낮추어 피는 감자난초 족두리풀

듣기에도 어색한 개불알꽃 고슴도치풀

이름 한 번 불릴 일 쉽지 않은 이 땅에

말 없는 노랑제비꽃

연보라 노루귀, 꿩의바람꽃

천덕꾸러기 엉겅퀴 들꽃이라도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무심히 스치는 길섶, 하찮다지만

먼지만한 씨앗으로 세상에 오던 날

하늘에는 바람, 땅에는 비 내렸습니다

척박한 땅 싹 틔워 질긴 뿌리 내리라는

그 가르침

 

당신은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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