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양란회에서 제22회 난 전시회를 열었다.
어제와 그제(3월 10~11일) 학생문화원 전시실에서
있었는데, 어떻게나 아름다운지, 오름 다녀 오는 길에
두 번이나 들르게 만들었다.
해마다 3월이 돌아오면 가슴 설레게 하는 난 잔치
어디서 어떻게 자라는지 희안한 난들이 진열되어
나를 황홀경에 빠뜨린다. 위 사진은 올해 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서우효 대회장은 ‘대회사’에서
‘예로부터 군자(君子)란 본래 재질과 덕이 있는 사람으로
매(梅) 란(蘭) 국(菊) 죽(竹) 사군자 모두
군자와 같은 기품을 지녔다고 합니다.
특히 난의 군자상은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잘 드러나 있어 소개해 봅니다.
“난초가 깊은 산속에 나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향기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 도를 닦는데도 이와 같아서
궁하다고 하여 지절(志節)을 고치지
아니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 난초꽃을 보다가 - 임보(林步)
소심(素心)이 참 오랫만에 둬 송이 흰 꽃을 밀어올리기에
창가에 올려 두고 만지며 보았는데, 그 진한 향으로 종일 방
을 흔들어 제법 시끄럽게 했다.
그렇게 하기를 한 열흘쯤 했을까 문득 어느 아침에 녀석의
목이 쉬어 있음을 보았다.그 쉰 목소리가 창에 붙박힌 방충
망에 걸려 찢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렇구나, 우리는 이제껏 갇혀 있었구나, 벌과 나비 그리
고 새들의 즐거운 세상 저 천공의 자유로부터 유폐된 방, 우
리는 포로였었구나.
그렇구나, 네가 뿌린 그 짙은 향은 절규였었구나, 옥중 춘
향이 장탄가로 님을 목메어 부르다 쓰러지듯 너는 코를 저미
여 그렇게 울다 목이 갈라져 이제 주저앉았구나.
오늘밤 잠이 들면, 네 짙은 울음이 묻힌 내 가슴 속에서는
몇 마리 나비가 부화하여 천사처럼 그대에게 가겠구나, 가서
그대 젖은 눈을 닦는 님의 입술이 되고 그리고 드디어 꽃은
지겠구나.
♧ 난蘭 - 이상홍
책상 뒤 창가에
난 화분 두 개가 놓여 있다.
누가 언제 갖다 놓은 것인지 모르지만
아랑곳없이 짙푸른 잎이 쭉쭉 뻗은
꽤 실팍한 춘란 하나와
휘어져 가늘얍실한 동양란 하나가
하루 종일 내 뒤통수를 지켜보고 있다.
다른 동료가 물도 주고 잎도
다듬고 정성을 들이지만
창 열 때나 우연히 눈이나 마주칠까
제대로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무심한 나를 무던히도 지켜주는데
신통하게도 방 여기저기 놓여 있는
다른 분盆보다 늘 꽃이 빠르고 많아서
거참 희한하다는 소리를 하지만
난蘭이 어쩌다 한번 오는 눈길을 위해
꽃대궁을 아프게 밀어 올리고
내가 가끔씩 목이 메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 난 - 김영월
젊어선 서양란으로
날아오르는 새처럼
비상을 꿈꾸고
화려한 패션을 추구한다
늙어선 동양란으로
가라앉은 호수처럼
그윽한 향기를 발하고
낮아지기를 원한다.
♧ 난초 2 - 김시탁
한자리에 났어도
제 갈 길 알고
어우러져 가슴 비벼도
상처주지 않으며
숙이지도 쳐들지도 않는
중용中庸의 검객 하나
바람도 토막내는 날카로운 칼 놀림
허공도 관통하는 비수 같은 창 솜씨.
♧ 난초 - 정호승
난초에 꽃이 피지 않는다고
아버지는 불만이시다
하루는 나더러
물을 안 주고 학대하면
꽃이 핀다고
이제 난초에 물을 그만주라고 하신다
그래도 나는
난초에 물을 자꾸 주었다
아버지 몰래
♧ 난초 - 진명희
창가에 난 화분 하나를 놓았다
하얀 겨울에도 초록을 보고 싶었다
욕심만큼 정성도 담았다
물 주고 햇빛을 주고
바람도 데려다 주었다
삐죽이 나온 꽃대 하나
호들갑을 떵며 식구들을 깨웠다
오늘
그 꽃대 끝에 하늘이 내려와 앉았다
지난 가을, 꽃대를 잘못 잘라 다시는
꽃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소리 치고 간 친구가 원망스럽다
푸른 기운이 거실에 가득하다
향기에 취한
겨울 하늘이 환히 열리고 있었다
♧ 난초 꽃 피던 날 - 장미숙
강한 햇빛 조심하여
창 가까이 난초 화분 두고
묵은 잎 사이 파릇 솟는 새 촉
먹을 갈아 난을 치듯
고른 숨결 나뉘어 오르는
휘어지는 붓 끝
시작점에서 그려 넣고 싶던
꽃대궁
춤을 추다
고요히 내려앉는 학의 자태
차 한잔 함께 할 벗 찾지 못하고
난 꽃과 마주 앉은 침묵
고향 닮은 향 찻잔으로 옮겨
오래 된 벗 하나 곁에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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