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꽃샘추위에 매화는

김창집 2012. 3. 11. 15:45

 

어제 골목길을 걷다가 뭔가 환한 것이 보이길래

돌아서서 다시 가본즉 바로 이 매화였다.

제주 서귀포의 벚꽃이 3월 24일에 개화한다는

보도이고 보면, 아직도 2주나 남았겠지만

이 매실나무 꽃을 보건데 바로 필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현실은 거리가 있는 법,

오늘 혹 할미꽃이 피었나 돌미와 뒤굽은이 오름에 가서

살폈지만, 세찬 하늬바람에 앉아서 간식 먹을 자리보기를

걱정해야 할 판이니, 아직도 봄은 요원한 것인가?

하여 한 곳 더 예정되어 있는 오름 답사를 접고

학생문화원에 와서 동양란전시회 난초만 기웃거렸다.

 

 

♧ 매화 - 김승기

 

놀란 눈 치켜뜨지 마세요

삼사월에 꽃 피우고 여름에 열매 익는

봄꽃일 뿐이어요

겨울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걸

몰랐었나요

가슴을 열어 주세요

눈앞에서 진실을 보고 있잖아요

왜곡된 세월 속에서 억지로 그려진 수묵화

그 雪中梅의 전설은 여기 없어요

지금껏 그릇된 줄 모르고 믿어온 일들

어디 한두 가지인가요

눈바람 속에서 홀로 토해내는 외로움보다

다른 꽃 필 때를 기다려 함께 나누는 삶이

더 소중한 거예요

다정스럽게 보아 주세요

때로는 희게 때로는 붉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매 맺어 드릴 게요

오래도록 古梅로 있어 드릴 게요

 

 

♧ 매화꽃 피다 - 목필균

 

세월의 행간을 읽으며

육십 년 뿌리 내린 나무

여기저기 옹이 졌다

 

가슴에

촛불 하나 밝히고

번잡한 세파 속에

정좌된 마음 만으로

걸어온 길

 

동반자 없는 길

서럽다 하지 않고

추운 겨울바람

맨살로 견디고도

환하게 피어난 매화

정월 스무 이렛날

 

그믐달 어둠 속으로

흐르는

충만한 매화 향에

온몸이 젖어드는데

 

세상살이가

어디 외롭기만 하겠느냐

 

 

♧ 매화 풍경 - 박종영

 

겨울 강을 건너온 매화 꽃잎 한 개

절정을 위해 상큼한 바람 앞에 서서

백옥의 여인이다.

 

이내 펄럭이는 치맛자락

그때마다 하얀 속살이 좀처럼 인색하게

붉게 퍼진다.

 

낡은 세월 모두 밀어내는

그대 향기 같아

그 추억의 허리춤을 살며시 당기면,

 

저절로 안겨오는 그리움을 어쩌랴.

 

 

♧ 매화(梅花) - 강수정

 

죽은 굴뚝나비 날개쪽지 밑에

쓰다버린 詩가 누워있다

푸른 詩를 써서 완두콩 방에 나란히 밀어 넣은 첫사랑

보내지 못한 문장, 그 씨앗 퍼뜨려 까칠한 빈가지 꽃이 열렸나

달음질치며 띄운 편지 소식 없어 至高至純함

겨울 이슬로 꽃몽오리 뒤에 숨었나

 

얼음집 깨고 눈꽃 열꽃이 피었나

깨어나지 못한 산의 두근거림

바람 달콤하게 살랑거릴 때

솔방울 구르는 빈산 햇살 욕심 것 끌어안는다

옆자리 꾸벅꾸벅 졸며 실눈 틔운 꽃망울

어느 날 산밑 환하게 핀 눈꽃

저 순결한 아침의 꽃 등불

꽃 그늘 아래 눈부신 사랑이 눕는다

낮은 속삭임 속 뒤틀려 울렁거리고

터지는 석류알 저 잘 익은 사랑은 누구의 것인가

어느새 꽃잎 진다 푸른 눈발 철없이 날린다

 

 

♧ 매화송(梅花頌) - 조지훈

 

매화꽃 다 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치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 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비단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

암암한 옛 양자라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보내고 그리는 정은

싫지 않다 하여라.

 

 

 

♧ 매화 피던 날에 - 김경숙

 

님이 오셨나 보다

 

잔설(殘雪) 비집고

속삭이는 소리에

더디 오실 줄 알았건만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도 묻기 전

 

온몸을 휘감던

두꺼운 외투

벗어 놓고서

 

따사로운 햇살 아래

뽀얗게 미소짓는

곱디고운

단아한 자태

 

아, 눈부심

한차례 꽃샘바람이 분다

 

 

♧ 매화 - 김승동

 

까칠한 가지에 꽃잎을 열었구나

하얀 눈 물이 묻어

파르르 떨리는 꽃술이나

바람으로 일어나는 향기가 모두 아름답다

 

홀로 이기에 더욱 목이 시리고

남 보다 일찍 엄동을 밀고 나오느라

에고 또 엔 너의 가슴

땅 속 깊은 너의 아픔을 알겠다마는

 

사람들이 올 곧지 않아

추워 더욱 따뜻하던 겨울을 마다하고

일러 핀

너의 고고한 죄를 물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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