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골목길을 걷다가 뭔가 환한 것이 보이길래
돌아서서 다시 가본즉 바로 이 매화였다.
제주 서귀포의 벚꽃이 3월 24일에 개화한다는
보도이고 보면, 아직도 2주나 남았겠지만
이 매실나무 꽃을 보건데 바로 필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현실은 거리가 있는 법,
오늘 혹 할미꽃이 피었나 돌미와 뒤굽은이 오름에 가서
살폈지만, 세찬 하늬바람에 앉아서 간식 먹을 자리보기를
걱정해야 할 판이니, 아직도 봄은 요원한 것인가?
하여 한 곳 더 예정되어 있는 오름 답사를 접고
학생문화원에 와서 동양란전시회 난초만 기웃거렸다.
♧ 매화 - 김승기
놀란 눈 치켜뜨지 마세요
삼사월에 꽃 피우고 여름에 열매 익는
봄꽃일 뿐이어요
겨울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걸
몰랐었나요
가슴을 열어 주세요
눈앞에서 진실을 보고 있잖아요
왜곡된 세월 속에서 억지로 그려진 수묵화
그 雪中梅의 전설은 여기 없어요
지금껏 그릇된 줄 모르고 믿어온 일들
어디 한두 가지인가요
눈바람 속에서 홀로 토해내는 외로움보다
다른 꽃 필 때를 기다려 함께 나누는 삶이
더 소중한 거예요
다정스럽게 보아 주세요
때로는 희게 때로는 붉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매 맺어 드릴 게요
오래도록 古梅로 있어 드릴 게요
♧ 매화꽃 피다 - 목필균
세월의 행간을 읽으며
육십 년 뿌리 내린 나무
여기저기 옹이 졌다
가슴에
촛불 하나 밝히고
번잡한 세파 속에
정좌된 마음 만으로
걸어온 길
동반자 없는 길
서럽다 하지 않고
추운 겨울바람
맨살로 견디고도
환하게 피어난 매화
정월 스무 이렛날
그믐달 어둠 속으로
흐르는
충만한 매화 향에
온몸이 젖어드는데
세상살이가
어디 외롭기만 하겠느냐
♧ 매화 풍경 - 박종영
겨울 강을 건너온 매화 꽃잎 한 개
절정을 위해 상큼한 바람 앞에 서서
백옥의 여인이다.
이내 펄럭이는 치맛자락
그때마다 하얀 속살이 좀처럼 인색하게
붉게 퍼진다.
낡은 세월 모두 밀어내는
그대 향기 같아
그 추억의 허리춤을 살며시 당기면,
저절로 안겨오는 그리움을 어쩌랴.
♧ 매화(梅花) - 강수정
죽은 굴뚝나비 날개쪽지 밑에
쓰다버린 詩가 누워있다
푸른 詩를 써서 완두콩 방에 나란히 밀어 넣은 첫사랑
보내지 못한 문장, 그 씨앗 퍼뜨려 까칠한 빈가지 꽃이 열렸나
달음질치며 띄운 편지 소식 없어 至高至純함
겨울 이슬로 꽃몽오리 뒤에 숨었나
얼음집 깨고 눈꽃 열꽃이 피었나
깨어나지 못한 산의 두근거림
바람 달콤하게 살랑거릴 때
솔방울 구르는 빈산 햇살 욕심 것 끌어안는다
옆자리 꾸벅꾸벅 졸며 실눈 틔운 꽃망울
어느 날 산밑 환하게 핀 눈꽃
저 순결한 아침의 꽃 등불
꽃 그늘 아래 눈부신 사랑이 눕는다
낮은 속삭임 속 뒤틀려 울렁거리고
터지는 석류알 저 잘 익은 사랑은 누구의 것인가
어느새 꽃잎 진다 푸른 눈발 철없이 날린다
♧ 매화송(梅花頌) - 조지훈
매화꽃 다 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치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 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비단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
암암한 옛 양자라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보내고 그리는 정은
싫지 않다 하여라.
♧ 매화 피던 날에 - 김경숙
님이 오셨나 보다
잔설(殘雪) 비집고
속삭이는 소리에
더디 오실 줄 알았건만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도 묻기 전
온몸을 휘감던
두꺼운 외투
벗어 놓고서
따사로운 햇살 아래
뽀얗게 미소짓는
곱디고운
단아한 자태
아, 눈부심
한차례 꽃샘바람이 분다
♧ 매화 - 김승동
까칠한 가지에 꽃잎을 열었구나
하얀 눈 물이 묻어
파르르 떨리는 꽃술이나
바람으로 일어나는 향기가 모두 아름답다
홀로 이기에 더욱 목이 시리고
남 보다 일찍 엄동을 밀고 나오느라
에고 또 엔 너의 가슴
땅 속 깊은 너의 아픔을 알겠다마는
사람들이 올 곧지 않아
추워 더욱 따뜻하던 겨울을 마다하고
일러 핀
너의 고고한 죄를 물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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