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과 한식, 식목일이 어울려 있는
이삼일 동안 센 바람이 불었다가
그치고 날씨가 조금 맑아져
별도봉과 사라봉에 올라보았더니
벚꽃이 화려하게 피고
개구리갓이나 자주괴불주머니,
살갈퀴, 그리고 이 개복숭아꽃이 피어 있었다.
일찍 핀 꽃들은 그 꽃샘바람에
더러 꽃잎이 상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명이라는 계절은 그걸 치유하고
제법 싱싱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는 날씨도 풀려가고
우리들 찌든 생활도 풀려
움추렸던 어깨를 펴고
용감히 나섰으면 좋겠다.
♧ 청명 - 김경희
폭포져 폭포져 피어나는
싸리꽃 구릉 아래로 가면,
누만 송이 싸리꽃들이
한 송이 싸리꽃도
생각 말게 하는…
싸리꽃의 아름다움!
오늘은 청명
금나비 흰나비 초록 벌레
은빛 나래 나래
강 너머로 붐비어 가고
이내 몸마저 비워지는
눈부심에 하늘이 깊다.
돌아오는 길엔
사탕잠자리
끊어진 허리 하나 주워
풀잎 끝, 서역 천리
불어 보내주고.
꿈속인 듯…
나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한식(寒食) - 이정록
병이 깊으면
뒤뜰이 좋아지나 보다
간경화로 고생 많은 아버지와
할머니가 두런두런 뒤뜰 풀을 뽑는다
항아리로 차오르는 아버지의 배
화톳불 놓을 장작더미도 어루만지고
해묵은 국화며 상사초를 옮겨 심는다
(어머니, 울타리를 다시 허야것슈
뫼느리밑찡개만 무성헌 언덕빼기를 허물구
골담초두 욈겨 심구 두릎남구도 쉼궈야것슈
새끼덜 낭중에 고향집이라고 찾으면
가시 돋친 두릎순을 꺽으며 못난 애비 생각두 허것지유)
장날이면 호두나무며 대추나무 묘목을 사와
울안 구석구석이며 두둑마다
쉬엄쉬엄 구덩이를 파는
아버지는 평생 열매 좋은 나무였을까
(가꾸지 안혀두 크는 남구라야 혀
니네덜 죄다 대처에 살더라두
스러지는 지붕 너머로 혼자서두 열릴것잉께)
마음만 깊은 아버지의 나이테에
빙빙 황사바람이 인다 캄캄한
항아리 속 얼굴을 어루만지는 아버지,
병 깊고 나이 많아지면
기웃거리는 뒤뜰 잔바람이며
울타리 너머 차운 달도 다정한 벗이 되나보다
밥풀꽃 같은 할머니와 아버지가
어둠을 흔들며 모퉁이로 나온다
별이 뜨는 길은
뒤꼍으로 나 있는가
♧ 한식날, 고향집에 가서 - 김경윤
어머니 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다녀와야 한다고
한식날, 고향집에 가서 아이들과 꽃씨를 심었다
살가운 햇살은 아이들의 볼에 보송보송 땀방울로 맺히고
철없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호호 하하 꽃이 피었다
마당귀 멍석만한 텃밭 모롱이 어머니의 꽃밭에서
마른 풀 걷어내고 녹슨 호미로 묵은 땅을 파며
봉숭화 채송화 나팔꽃 해바라기 꽃씨를 심는 동안
나는 자식을 꽃씨처럼 키워온 어머니의 세월을 생각했다
좁쌀만한 이 씨앗들이 어서 자라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날이 오면
어머니의 뜰에도 향기 가득한 봄날이 올까
오랜만에 온 식구가 한 방에 누워 새우잠을 잔
그날 밤, 창 밖의 별빛은 당산나무 가지마다 총총하고
십리 밖 파도소리도 밤새 쟁쟁하였다
♧ 한식 - 장진숙
나주 선산
잡풀 우거진 오솔길 지나
줄지어 오르는 비탈이 세월처럼 가파르다
아주 오래 전에 흙으로 돌아가신 진주 강씨 조상님네들
반갑다고 참꽃 흐드러지게 피워 마중하는 날
서울에서 나주만큼이나 멀고 서먹한 일가붙이들
군데군데 상석 위의 젯상이 차려지는 동안
서로의 안부로 이리저리 어지럽다
무덤 앞, 향로에 한숨처럼 향은 피어오르고
담배 한가치 불붙여 올리자
가랑잎처럼 바스락거리던 소란들이 아연
숨죽여 가라앉는다. 머리 허연 광주 당숙이
옷깃을 여미고 술잔을 올릴 때 그간의
어지러운 속사정을 묵묵히 전하느라
허공처럼 막막해지는 까칠한 얼굴들
나무라듯 등뒤 솔숲에서 문득
박새 한 마리 푸드득 솟구쳐 오르고
비탈에서 놀던 허기진 바람이
음복하러 왔는지 옷소매 자꾸
끌어당기며 보채는 한 낮
무덤자리 만큼 열린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 식목일에 - 박현자
어느 봄날 베란다에
모녀가 쪼그려 앉았다
움직이면 서로
부딪히는 좁은 공간을
햇살이 기웃거리고
화분의 흙을 고르는 손등위로
미끄러지는 아이의 웃음
봉숭아 꽃씨를 묻으며
마음은 벌써
손톱밑에 꽃물을 들이고
창밖에선 간간이
황사바람 일어도
화분속 씨앗 성급하게
만삭의 날 기다리며
마냥 꿈에 젖는다.
♧ 어느 식목일에 - 姜大實
산은 계곡까지 내려와
바람의 족적을 우려내고
바위는 마루에 꿇어앉아
무욕을 채우고 있었다
긴 그림자 어정거리자
노송이 눈길을 흘리다
利己이기의 싹 밟을 수 있다면
풀씨나 한 알 품어 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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