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무주선원의 황매와 시

김창집 2012. 4. 15. 19:25

 

토요일 4.3기행으로 잃어버린 영남마을에 갔는데

무주선원(無住禪院)에 너무 고운 꽃들이 피어 있어

들어가 보니, 꼭 죽단화 비슷하게 생겼는데

꽃잎이 겹으로 되어 있지 않은 이 황매를 만났다.

 

황매(黃梅)는 장미과에 속한 낙엽 활엽 관목으로

높이는 2m 정도이며, 가지가 갈라지고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고 긴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겹톱니가 있다.

봄에는 가지 끝에 노란 꽃이 피고 가을에는 견과가 익는데,

절이나 촌락 부근에 심는다.

 

정황이 없이 찍은 사진이라 엉성하나

귀하게 만난 황매이니만치

제주작가 봄호의 시와 곁들여 내보낸다.  

 

 

♧ 헛발 - 김광렬

 

날아가던 새 힘겨워

살짝 발 디딘 게 하필

악어 콧잔등이었네

재수 더럽게도 잡아먹히고 말았네

이 세상에는 헛발 디디기를

기다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큰 아가리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 같네  

 

 

♧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사람의 길 - 김경훈

   - 생명평화결사 제주 도보순례에 부쳐

 

길을 간다

이 길은 생명의 길이다

뭇 살아있는 것들의 근원인 물의 길이다

가장 낮은 자세에서 기인하면서도

가장 깊은 생명을 간직한 삶의 길이다

 

이 길은 평화의 길이다

다 타버린 고목에서 움트는 봄의 길이다

가장 아픈 기억을 간직하면서도

가장 높은 이상을 펼치는 내일의 길이다

 

이 길은 사람의 길이다

늘 부대끼며 어우러지는 꿈의 길이다

가장 좁은 일상의 평등이면서도

가장 넓은 우주로 전하는 희망의 길이다

 

생명의 길은 그대로 평화의 길이다

평화의 길은 그대로 사람의 길이다

사람의 길은 그대로 평화의 길이다

모두 한 길이다

 

몸으로 수놓는 마음의 힘, 바로 그 길이다

더듬고 보듬어 걸어가는 이 길 위에

생명과 평화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우리를 향해 웃으며 팔 벌려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길을 간다  

 

 

♧ 구엄리 소금빌레 - 김성주

 

마지막으로

동쪽 읍내를 등지고

소달구지 하나 덜커덕덜커덕 西로 갔다 하네

 

소금 한 톨 없는 소금빌레

삶이 박제된 한 무리의 석상들

족쇄로 채워져 있네

주상절리와 주상절리 여와 여 사이 버둥거리는

파도의 속내를 알 수가 없네

족쇄를 풀려는지 옥죄려는지

 

아버지 마지막 걸었던 길

지금 나 걷고 있네

읍내 장터로 가는 소금달구지

소금 삶는 가마솥의 연기

아이들 웃음소리에 밟혀 순해지는 파도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동전 한 닢

찾을 수 없네

 

건너편 동양콘도에 관광버스가 들어오네

질펀하게 연애 밭 일구겠네

내 연애, 배춧잎에 뿌려진 소금 같은 것이어서

저 석상들에도 무슨 그런 연애가 있는지

가슴이 저릿저릿하네

 

옛날부터 전해오는 할아버지의 얘기 믿을 수 없네

비오는 밤이면 저 석상들이 깨어난다는 말

세상의 소리들을 깨끗이 쓸고 닦은, 한밤중

소금빌레에 햇볕 들고 소금 굽는다는 말

믿을 수 없네

서럽도록 믿을 수 없네  

 

 

♧ 노루와 허수아비 - 김세홍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수삼일 눈이 퍼부어 내렸다

브로컬리 밭에 허수아비도 궁금했을까

언 땅에 온기를 찍어 내리던

찔레덤불 무성한

소롯길의 소심한 발모가지를,

쓰러지도록 애간장을 졸이는 것은

어깨에 내려선 눈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

그것 때문이었을까

오밤중에 위태위태 걷던 길 따라

개풀알풀, 광대나물, 쇠별꽃 순이 오르는

눈 먼저 녹기 시작하던 거기,

한 번 더 산길을 지워버린

간밤 눈보라에

허수아비가 쓰러지도록

궁금한 것은

초록 푸성귀를 한가득 담고 간

물기서린 눈망울의 안부겠지  

 

 

♧ 오름에 경배하라 - 진하

 

나는 이렇게 들었다

오름은 대지의 오름이니

오름에 오르지 말라

오름은 바람의 오름이요

붉은 해의 솟아오름

억새, 들새의 날아오름이니

오름을 정복하려 들지 말라

오름을 짓밟으려 하지 말라

오름은 다만 들판의 오름

태초의 화산의 오름

모든 삶의 의지의 오름일 뿐

저 하늘 아래 구름 아래

교태로이 누운 관능의 오름

고이 누운 휴식의 오름

공손히 손 모은 겸손의 오름

정성스레 올린 메의 오름이니

오름 앞에 몸을 굽히라

오름에 절하라  

 

 

♧ 친족 - 김문택

 

까마득히 먼 곳에 홀로서 있어도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있는 듯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金海金氏大海派19대손

영혼 속에 늘 함께 살아서 숨쉬는

그 이름 친족(親族)

 

살아가야할 생각이 다르기에

이승과 저승의 삶터에서 따로 살지만,

기쁘고 슬픈 일 있을 적에

먼 길 마다치 않고

단숨에 달려와 가슴으로 쓰러 안는 그 모습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세상이 열 번 바뀌어도

결코 바뀔 수 없는

그 이름, 그 모습이여

 

먼 훗날 내 죽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당신들 오시는 길에

영혼 바쳐 꽃길 닦아 드리오리다  

 

 

♧ 남방항공 - 현택훈

 

휘파람 소리를 연료로 나는 비행기가 있어요

작고 느린 프로펠러 비행기이지요

싸우기 좋은 미워하기 좋은 북반구에선

비행기가 석유를 가득 싣고 비행하지만

남반구를 운항하는 남방항공은

따뜻한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여객기이지요

패스포트도 필요 없어요

휘파람을 불지 못하면 허밍만 하면 되는 걸요

 

신사숙녀 여러분 저희 남방항공을 탑승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본 여객

기는 푸른 섬 파도소리 2호기로써 구름 저편 섬을 경유한 후에 연두빛 평원공항

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비행은 고도 약 미루나무 위 피트를 유지하면서 비행할

예정입니다

 

부드러운 바람 부는 들판 위를 저공비행하지요

때론 이륙은 했으나 착륙하지 못한 채

회항할 곳도 마땅하지 않아 떠다니는 비행기도 있지만

언젠가는 부드럽게 미끄러져 착륙할 날을 위해

남방항공의 조종사는 옥타브를 올리기 위해 애를 쓰지요

기내 서비스로 사과와 음악과 담요가 제공 될 거예요

어쩌다 항로를 이탈해 북반구에 출현하면

낯설고 아름다워서

UFO로 오인받기도 하지요  

 

 

♧ 하롱베이의 섬 - 양원홍

 

가던 차 멈추고 먼 섬들을 바라본다.

파도 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 위에

용이 내뿜은 보석과 구슬들이

에머랄드 그린의 바다 위에 삼천 개의 섬으로 솟아 있다

석회암의 구릉 대지를 바다가 만들어낸 하롱베이의 기암

날카롭게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는 환상의 작은 섬

햇빛 따라 섬의 모습과 빛깔이 제각각이다

오직 신만이 빚을 수 있는 조각의 세계

저저마다 감탄사로 한마디씩 할 때,

오로지 오락기에만 눈을 팔린 아이

저 아름다운 절경들도 아이의 시선은 어쩔 수 없다

때가 묻지 않은 아이

세상이 이처럼 모두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일까?

지치고 힘든 세상을 거칠게 사는 사람은

한 순간 이나마 세상을 잊고 싶은 법

세상의 때를 씻어내는 경치 속에 빠지고 싶은 법

때 묻지 않고 자라기를 바라지만

언젠가 어쩔 수 없이 이곳을 찾을 아이를 위해

섬들을 모아서 카메라 앞에 아이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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