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시조와 수사해당화

김창집 2012. 4. 18. 10:38

 

이 꽃은 어제 한라수목원에서 찍은 것인데,

‘수사해당화’ 또는 ‘서부해당화’라 하는가 하면

‘꽃아그배나무’, ‘아메리카해당화’라 된 곳도 있다.

올해 제주작가 봄호의 시조는 저번에도 올렸으나

남아 있는 것이 있어 이 꽃과 함께 모두 올린다.  

 

 

♧ 올레길 연가 2 - 오영호

 

재기재기 걷지 마라 뾰족 돌에 넘어질라

흙길 자갈길을 닥 걷다보면

담 너머 찔레 향기에 맑아지는 나의 넋.

곧은길은 곧은길대로

굽은 길은 굽은 길대로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걸어갈 길

마주친 아낙의 얼굴

빙색이 웃고 있네.  

 

 

♧ 잃어버린 돌 - 장영춘

 

섣달그믐 해안가에서

주워온 몽돌 하나

 

새해엔 모난 곳 없이

둥글게 살라 하는

누군가 등 뒤로 건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집착으로 돌아선

마음속을 알았을까

  

홀렸는지

그 돌은 오간데 없고

내안의 탐욕덩이 가득한

사방에 모래바람만 휘날리고 있었다

 

채우면 채울수록

마음 한편을 풀무질하던

 

허공 속 날개 짓치던

붉은 눈의 괭이갈매기

수평선 하늘 가까이 날려 보낸 깃털 하나  

 

 

♧ 화순 곶자왈에서 - 이애자

 

태풍 끝에 떨어진 졸갱이 하나 주웠다

참선수행 동자스님 죽비에 혼나셨을까

한참을 어르고 달래도 눈 딱 감는, 요 생떼  

 

 

♧ 영하권 - 이애자

 

시조 먹고 사는 일이 추위보다 더 추울 때

수면 위 물새 한 마리 “풍덩” 제 그림자 껴안는다

한순간 곤두박질이 체감되는 수위  

 

 

 

♧ 12월 까마귀 - 홍경희

 

이제는 도리 없이 올 때까지 밀려와

말년의 팽나무도 관절염을 앓으며

모두가 떠나간 골목 저 혼자서 버틴다.

 

욕심내다 체념하고 다시 또 다 비우고

상처 뒤 울음조차 한 장 달력에 감추는 계절

서늘히 눈빛을 풀며 진눈깨비 날리고…

 

항상 돌아가는 길은 더 멀기 마련이라

하늘끈 거의 풀린 날갯죽지 내리며

인생의 한 접점에서 까마귀가 울고 있다.

     

 

♧ 겨울 햇살 - 홍경희

 

바람 비운 창가에 털신 신고 내려와서

 

뚝 끊긴 월급통장 잔고를 흘낏 보고

 

슬며시 동전통 위에 짠한 위로 놓고 간  

 

 

♧ 시간의 경계 - 김영란

 

빛깔 고운 꽃들은

향기도 아름답다

섬 동백 이운 자리

동박새 날아와서

잊었던 기억을 찾아

부리 깊이 묻고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그도 한참 모자라

꿈 희망 자유 사랑

봄 들판에 다 모여

봄밤을 흔들어 놓네,

이 불면을 어쩐담

 

하르르 말 못할 사연 꽃잎처럼 쏟아져

꽃처럼 살라고 꽃 곁에 앉히셨나

몽롱한 시간의 경계, 창을 가만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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